이 기사는 2022년 10월 21일 08시20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난데없이 적자 사업부로 인사발령이 났다. 줄곧 일해왔던 연구원이 아닌 경영자로 변신해야 했다. 게다가 대학 후배가 상사로 왔다. 사표를 쓰라는 무언의 신호로 다가왔다. 부하 직원들의 만류로 마음을 다잡았다. 이후 8년간 후배에게 사업 보고를 해야만 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고문이 저서 ‘초격차’에서 밝혔던 시스템 LSI사업부 재직 시절 스토리다.당시 심리적 압박에 시달린 것은 물론 자존심에도 상처를 입었다고 고백했다. 직장인으로서 견디기 힘든 큰 고통이다. 하지만 인고의 시간은 자산이자 실력이 됐다. 시련을 통해 성장했다. 권 고문도 난관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분발했다고 회고했다. 결국 삼성전자 대표이사 회장까지 올랐다.
사모펀드(PEF) 업계도 시련의 시간이 시작됐다. 체감되는 분위기는 흉흉하다. 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은 전반적으로 비슷하다. “신생 프라이빗에쿼티(PE)가 개점휴업 상태다.” “몸값 비싼 운용역을 기껏 뽑았는데, 포트폴리오가 몇 개월 사이 다 망가졌다.” 투심이 위축된 모습이 역력하다. 전략적 관망을 택한 하우스도 적지 않다.
분명한 점은 어떻게 시련을 기회로 승화하는지가 하우스의 '에지(Edge)'를 만들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려운 외부환경을 극복한 만큼 PE는 역량을 입증한 셈이기 때문이다. 시장의 봄은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 다음 활황기에는 냉각기에 경쟁력을 입증해낸 PE가 더 많은 기회를 잡는다.
프로젝트펀드 자금줄이 사실상 막혔다지만 하우스들의 분투는 계속된다. 한 관계자는 "요즘 투자자(LP)가 돈이 없다고 하지만 좋은 딜에는 여전히 지갑을 연다"고 말했다.
다올PE는 골프용품 브랜드 '슈퍼스트로크' 인수를 최근 종결했다. 슈퍼스트로크는 퍼터 그립 분야 세계 1위 기업이다. 글로벌 네트워크로 알짜 매물을 발 빠르게 확보했다. 프로젝트펀드 조성은 쉽지 않았지만 기어이 LP를 설득했다. 금리급등 전 인수금융 막차를 타는 운도 따랐다. 부지런한 딜 소싱과 좋은 매물, 적절한 타이밍이 삼박자를 이룬 투자였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트랙레코드를 확보한 신생 PE도 있다. 설립 1년을 갓 넘긴 오아시스에쿼티파트너스(오아시스PE)는 거버넌스 투자라는 틈새시장을 발굴했다. 얼마 전 코스닥 상장사 '엔켐'에 프로젝트펀드로 320억원을 투자했다. 엔켐 창업주가 최대주주로 올라설 수 있도록 백기사로 나섰다. 거버넌스 이슈를 레버리지로 삼아 다운사이드 프로텍션까지 마련했다. 명분뿐만 아니라 실리까지 챙긴 셈이다.
현 시점에서 어느 포지션이 옳은지 정답은 알 수 없다. 굴지의 PE도 펀드레이징을 하지 못해 애를 먹는 상황이다. 투자는 결과론이다. 오늘의 투자가 내일의 엑시트까지 보장하진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크든 작든 차이를 만들어낸다. 앞으로 시장에 더 많은 에지가 나타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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