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2년 11월 24일 07시52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사관(史官)이 알게 하지 말라." 태종이 사냥을 나갔다가 말에서 떨어지자 좌우의 신하들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사관에게 알리지 말라는 명령마저 기록됐다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다.이는 시사점을 준다. 사관의 끈질김도 그렇지만 태종도 어떤 왕으로 기록될지 무척 신경을 썼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어떤 왕으로 기억될 것인가’는 아무리 권력의 정점에 선 제왕이라도 신경 쓰이는 문제였던 모양이다.
비단 왕에게만 한정된 고민은 아닌 것 같다. 나재철 한국금융투자협회 제 5대 회장도 어떤 협회장으로 남을지 깊게 고민했다. 관건은 연임이었다.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 도입 △ATS(대체거래소)의 기틀 도입 △금융투자 교육플랫폼 개발 △내부 조직 혁신 등 성과를 앞세워 ‘사상 최초로 연임에 성공’했다는 타이틀을 얻고 못 다한 과업의 끝을 보고 싶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 나 회장의 야심을 업계는 일찌감치 짐작해왔다. 올 7월 기자간담회에서 연임에 도전할지 기자가 묻자 그는 “할 일이 많아 주어진 일만 해결해도 촉박하다”며 “모든 CEO는 주어진 임기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하는 게 의무”라며 말을 아꼈다. 2019년 12월 76.3%의 압도적 득표율을 올리며 회장에 당선될 때까지만 해도 단임을 약속했던 것과 대비된다.
나 회장의 침묵은 길어졌다. 9월 중순부터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의 전 CEO들이 잇달아 출사표를 던지는 가운데서도 그는 침묵했다. 현역 회장로서 그의 연임 여부가 선거 판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서도 그랬다.
이런 와중에 자본시장은 중대한 위기를 맞았다. 레고랜드 발 PF 사태로 단기자금 시장이 경색되면서 회사채 등 자금조달 시장이 위축된 것은 물론 주요 회원사인 증권사마저 직격탄을 맞았다.
나 회장은 금투협을 대표해 앞장서서 미래에셋증권과 NH투자증권 등 대형사가 중소형사의 ABCP를 소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업계의 평가는 갈렸다. “뒤늦게 약한 존재감을 보완하려 한다”는 혹평이 나오는가 하면 “중대형사는 주요 회원사인데, 대의를 위해 표심을 양보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융당국이 이런 합의를 이루도록 금투협에 개입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며 곤욕을 치렀다.
결국 11월 1일 나 회장은 “그동안 회원사 CEO가 재출마를 권유했지만 새로운 회장이 자본시장을 이끌어야 한다고 최종 판단했다”며 연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약 한 달이 지나면 나 회장은 5대 금투협 회장으로서 임기에 마침표를 찍는다.
한동안 불면증에 시달렸던 나 회장은 연임을 내려놓고 숙면을 취한다고 한다. 이제 공은 후대에 맡겨졌다. 과연 나 회장은 어떤 협회장으로 기억될까. 나 회장의 그림자가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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