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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 뿐인 자본, 신종자본증권]대한항공은 영구채 1조를 어떻게 털었나⑦금융사 대비 약한 자본성, 재무 불안요소,…9년 만에 올해 첫 '제로' 상태

고진영 기자공개 2022-12-01 09:58:08

[편집자주]

흥국생명이 2009년 우리은행 사례 이후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를 결정하면서 자본시장에 예상치 못한 후폭풍이 불었다. 금융당국까지 나서면서 사태를 진화했고 결국 흥국생명은 입장을 번복해 콜옵션을 행사했다.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30년 혹은 그 이상이고, 발행사가 자기 의지대로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도록 설계돼 그 특징을 토대로 자본으로 인정받는다. 다만 흥국생명 사태 이후 신종자본증권을 진정 자본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THE CFO가 조명하고자 하는 곳도 이 지점이다. 더불어 금융사보다 발행 규정이 느슨한 비금융사의 신종자본증권은 취지대로 발행되고 운용되고 있는지도 함께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2년 11월 24일 14:38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비금융사 가운데 신종자본증권 시장을 가장 자주찾는 업종으로 항공업계가 꼽힌다. 항공기 리스료가 부채로 잡히다 보니 영구채를 활발히 찍어서 자본을 확충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기업 영구채는 금융사보다도 자본 색채가 옅다는 점에서 기업재무의 ‘민낯’을 가린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있었다.

대한항공 역시 한때 1조원이 넘게 보유했던 신종자본증권이 적잖은 골칫거리였다. 부채비율을 낮추는 효과는 있었지만 경영권 분쟁 당시 공격의 빌미로도 작용했다. 언젠간 해소해야 할 리스크였던 셈이다.

◇사실상 만기 2년, '대주주 변경시'에도 금리 가산

대한항공이 처음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것은 2013년이다. 해외 신용평가사로부터 등급 하향 압박을 받으면서 그해 6월 2100억원 규모의 영구채를 6.40%의 금리로 사모 발행했다. 2015년에는 부채비율이 1050%까지 올라 기한이익 상실 위기에 몰리자 다시 영구채 3억달러치(공모)를 찍어 상실 사유를 벗어났다.

이후로도 2017년 6월 3400억원, 2018년 11월 1600억원, 2019년 5월 2000억원, 2019년 9월 1800억원, 2020년 6월 3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기존 영구채를 차환하고 부채비율을 조정했다.


주목할 부분은 신종자본증권의 발행 조건이다. 2018년부터는 모두 발행일로부터 2년 뒤에 2.50%의 가산금리, 그리고 조정금리(2년후 국고채 금리 - 발행시 국고채 금리)가 추가로 붙는 스텝업(Step-up) 조항이 포함됐다.

금융사와 비교해보면 보험사의 경우에도 스텝업 조항을 붙일 수 있지만 발행일로부터 10년이 지나야 적용이 가능하고 가산 범위에도 제한이 있다. 또 내년부터 적용되는 킥스(K-ICS· 신지급여력기준) 체제에서는 스텝업이 있으면 아예 자본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기업의 경우 이런 제한이 없다. 대한항공이 발행한 영구채는 사실상 고금리 이자(배당)를 꼬박꼬박 줘야하는 만기 2년짜리 채권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셈이다.

게다가 2018년 이후 발행한 영구채들에는 스텝업과 별개로 ‘대주주 변경시 이자율은 직전이자율에 2.5%를 가산한다'는 조건까지 추가됐다. 당시 고(故) 조양호 회장의 배우자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의 갑질 논란으로 2대주주 국민연금이 공개서한을 발송하는 등 오너리스크가 불거진 점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같은해 말에는 KCGI가 한진칼 주주로 등판해 대대적 경영권 다툼이 시작되면서 불확실성이 계속됐다.


우선순위 측면에서도 대한항공은 지금껏 찍은 모든 신종자본증권을 ‘선순위(무보증사채와 동순위)’ 조건으로 계약했다. 비금융기업의 경우 규제가 헐거워서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받기 위해 꼭 청산 시 상환순위가 후순위가 아니어도 되기 때문이다. 신종자본증권에 자본성이 부여되는 근거 중 하나가 후순위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사는 대부분 지급여력(RBC) 비율 등 규제 기준을 지키기 위해서 영구채를 찍지만 비금융기업들은 부채비율 개선 등 자발적인 목적이 크다”며 “따라서 비금융기업은 은행보다 다양한 형태로, 자본적 특성이 낮은 신종자본증권 발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대한항공은 신종자본증권을 자본으로 회계처리한 근거를 두고 “원금의 상환과 이자의 지급을 회피할 무조권적인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고 했는데 어디까지나 명목상의 권리였다고 볼 수 있다.

◇재무 '아킬레스건'…10년 만에 해소

이처럼 자본성이 약한 모습으로 영구채를 발행하다 보니 KCGI와의 경영권 분쟁 당시 아킬레스건이 되기도 했다. 다툼이 한창이던 2020년 2월 강성부 KCGI 대표는 "신종자본증권은 회계상 자본으로 분류돼 있지만 고금리 차입금으로 보는 게 맞다"며 "대한항공은 총체적인 경영 실패로 부채비율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강하게 지적했다.

실제 2019년 말 기준 대한항공의 신종자본증권 규모는 1조793억원에 달했다. 평균 이자율은 5.67%였으며 그 해 541억원을 배당(이자)으로 지급했다. 만약 영구채를 부채로 인식할 경우 자본은 2조7808억원에서 1조7015억원으로 줄고, 부채는 24조2333억원에서 25조3126억원으로 증가하는 구조였다. 부채비율을 계산하면 871.5%에서 1487.7%로 오른다.


KCGI 측이 구체적인 부채비율까지 내세워 오너일가 퇴진을 압박한 만큼 대한항공으로선 영구채 해소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았을 것이란 평가다. 설상가상 2020년 대한항공은 금리 스텝업을 피하기 위해 총 7200억원 규모의 영구채를 갚아야 했다. 각각 2017년 6월, 2018년 6월과 11월 발행한 영구채들로 이자율이 6.88%, 5.40%, 5.40%에 달했다. 문제는 추가 채권 발행이 녹록지 않았다는 점이다.

숨통을 틔운 것은 정부 지원이다. 우선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2020년 6월 3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인수하며 차환 발행을 지원해줬다. 전환사채(CB) 형태인데, 발행금리도 연 2.28%로 기존 대비 크게 낮았다. 대한항공은 이를 통해 약 2100억원어치의 기존 신종자본증권을 상환했다.

또 같은 해 5월 대한항공의 화물노선 자산유동화증권(ABS) 7000억원을 정부가 인수했고 채권단인 산업은행 등으로부터 운영자금 2000억원도 차입했다. 영구채 지원을 포함해 대한항공이 수령한 긴급자금지원은 1조2000억원에 이른다. 자금 여력이 생긴 대한항공은 그해 말 5000억원, 2021년에는 스텝업이 임박한 3800억원 규모의 영구채를 추가로 갚았다.

덕분에 올 초 남은 신종자본증권 잔액은 앞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인수한 3000억원에 불과했다. 이자는 연 69억원 수준. 2020년을 마지막으로 신종자본증권을 찍지 않고 상환만 하면서 2년간 규모가 8000억원 가까이 축소된 셈이다.

대한항공은 이 3000억원에 대해 올해 5월 콜옵션(조기상환권)을 행사했다. 6월 예정된 금리 스텝업을 앞두고 내렸던 결정이다. 다만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대한항공 지분을 보유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해 주식 전환을 결정했고, 2039만9836주(5.5%)가 보통주로 바뀌었다. 이제 대한항공이 보유한 신종자본증권은 2013년 이후 처음으로 '제로(0)' 상태다.

대한항공은 현재로선 추가적인 신종자본증권 발행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영구채를 찍는 것은 부채비율 개선이 목적인데 3분기 기준 200%대로 개선돼 발행이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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