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8월 10일 07시55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울타리라는 뜻에서 파생된 헤지(hedge)는 자본시장에서 외부 위험으로부터 자산을 지키기 위한 거래 행위를 뜻한다. 환율, 금리, 원자재 등 예측 불가능한 가격 변동 상황에서 다양한 전략을 활용해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허용된 곳이 헤지펀드 시장이다.2011년 개화한 한국형 헤지펀드 성장 속도에 비해 역사는 짧은 편이다. 1조원에 불과했던 규모는 2019년 35조원을 웃돌며 폭발적으로 커졌다. 이는 정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준 규제 사각지대 덕분이다. 공모펀드와 달리 투자내역을 공개하지 않아도 되고 자산 유형이나 비중 제한도 없다. 현물·선물을 결합하거나 공매도를 활용한 실험적 상품들이 쏟아졌고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토종 운용사들이 곳곳에서 나왔다.
올해 상반기 한국형 헤지펀드 시장은 42조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라임·옵티머스 사태 여파로 20조원대로 주저앉은지 불과 2년만이다. 빠른 회복세에 도전과 성장 분위기를 물씬 풍길만 하지만 기류가 사뭇 다르다. 2019년 이전보다 단조로워진 상품 라인업과 일편화된 헤지 전략 영향이다. 양적 성장을 이루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질적으로는 후퇴했다는 평가다.
현재 국내 헤지펀드에서 코스닥벤처와 공모주 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탁사와 판매사가 잘 걸어주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시장성이 높고 구조와 전략이 단순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 여기에 소득공제와 기업공개(IPO) 물량을 우선 배정하는 조세특례 혜택을 고려하면 안정적인 판매가 가능하다.
문제는 ‘잘 팔리는 펀드’가 우선적으로 출시되기 시작하면서 하우스 차별성과 변별력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상품 구조와 전략이 똑같으니 펀드 수익률도 비슷할 수 밖에 없다. 운용사들은 “금융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하지만 애초 ‘헤지’가 가지는 의미를 되새긴다면 궤변에 불과하다.
라임·옵티머스 사태 이후 신뢰 회복과 제도적 허점 보완이라는 의도로 수탁사와 판매사에 사모운용사 관리·감독 의무를 강화하는 자본시장법이 개정된지 2년이 지났다. 그러나 현장에서 겪는 혼란은 여전하다. ‘다양한 모험자본 공급’이라는 시장 기능은 약화됐고 ‘외부 환경과 무관한 절대 수익 추구’라는 헤지펀드 의미는 퇴색됐다.
규제 도입 목적이 타당했을지라도 정체성을 흔들고 고사시킨다면 방법에 대한 재고민이 필요하다. 지금이라도 운용사와 수탁사, 판매사가 시장 조성 목적에 맞게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환경과 시스템을 조성하는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 숫자에 속아 바로잡을 시기를 놓쳐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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