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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다리의 지정학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3-10-04 09:00:57

이 기사는 2023년 10월 04일 08:1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통나무 다리와 징검다리에서 시작된 지구상의 무수한 다리는 각기 이런저런 사연을 안고 있다. 오래되었을수록 더 그렇다. 다리가 조명될 때가 전쟁이나 재난 때여서도 그렇고 다리는 물길로 나누어진 두 장소를 이어주는 드라마틱하고 낭만적인 구조물이어서도 그렇다. 견우와 직녀도 오작교에서 만난다. 사람의 이동을 도와서 정치적인 의미도 가진다. 브릿지라는 단어는 사회적, 인간적 단절의 복원도 의미한다.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아 준다”는 말도 있다.

다리는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해 주는 인프라다. 분리된 두 경제 단위를 연결해서 시너지를 창출한다. 모빌리티의 궁극적 도달점은 자동차의 이용이 가장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자동차는 행동반경이 가장 넓고 지형지물 극복 차원에서 가장 효율적이다. 도로라는 인프라가 필요하지만 사실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어디든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자동차는 강과 바다는 극복할 수 없다. 다리가 그 문제를 해결해 준다.

다리는 지정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인프라다. 전시에는 군사 전략적인 초점이 되기도 한다. 2차 대전 때 히틀러는 레마겐의 철교를 지키지 못한 독일군 장교들을 모두 총살했다. 푸틴이 개통식 때 참관 정도가 아니라 아예 트럭을 직접 몰고 건넜던 크림대교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상징하며 따라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핵심적 의미를 가진다.

미관 차원에서는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로 대표되는 현수교가 가장 뛰어나다. 그러나 튀르키예의 1915차나칼레대교가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다. 10km다. 고대 트로이가 통행세를 받던 다다넬즈해협의 차나칼레 북서쪽이다. 2022년 3월 18일에 에르도안 대통령이 개통했다. 1915년은 1차 대전 중 오토만 해군이 갈리폴리에서 영국, 프랑스 해군을 격파했던 해다. 튀르키예로서는 의미가 크다. 27억 달러짜리인 이 다리는 한국기업들이 그 설계와 시공에 참여했다.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좋은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는 월경지다. 크로아티아의 국토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양분하고 있어서다. 보스니아 입장에서도 답답한 것이 크로아티아가 아주 길게 아드리아해를 가로막고 있다. 네움이 있는 좁은 일부로만 바다와 연결 된다. 그런데 그 때문에 크로아티아는 나라가 둘로 나누어져 버렸다.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가는데 세관 두 곳을 지나야 한다. 번거롭고 네움을 통과해야 해서 시간도 많이 잡아먹는다.

보스니아의 짧은 해안선은 크로아티아 영토인 긴 반도가 가로막고 있다. 펠레샤츠반도다. 꼭 섬같이 생겼는데 섬이 아니다. 그래서 크로아티아는 EU 지원을 받아 5억 5,000만 유로를 들여서 이 반도 북쪽과 위쪽 영토를 잇는 다리 펠레샤츠대교를 만들었다. 길이가 2,404m이고 2022년 7월에 개통했다. 이제 두 크로아티아 영토는 육로로 연결되고 보스니아를 통과하지 않아도 된다.

크로아티아는 문제를 해결했는데 보스니아는 이 다리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좁고 불편하게 바다로 나가서 펠레샤츠반도 위까지 빙 돌아 겨우 아드리아해로 가는데 바다로 진출하는 입구에 여러 개의 교각을 가진 이 다리까지 생겼다. 지속적으로 문제 를 제기했고 해양법 위반 주장도 펼쳤지만 다리가 완전히 크로아티아의 영해 내에 있어서 이렇다 할 대책이 없다.

보스니아는 네움이 있어서 지정학상 최악인 내륙국 신세는 면했지만 네움은 사실 지형 때문에 항구로 쓰기에 전혀 적합하지 않은 곳이다. 말만 그렇게 할 뿐이다. 구글에서 사진을 찾아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그만저만한 해변 휴양지 정도로 쓰이고 있다. 보스니아는 오히 려 네움 북쪽 10km 거리에 있는 크로아티아의 플로체를 무역항으로 쓰고 있다. 플로체는 네움보다 훨씬 편리하게 바다로 나갈 수 있고 사라예보와도 잘 연결된다.

다리가 지어지기 전까지는 크로아티아가 네움에 집착했었다. 드브로브니크의 월경지 신세를 면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보스니아에게는 어림도 없는 얘기였다. 다리가 지어지면 크로아티아가 좀 쿨해질 것이어서 보스니아 내부에서는 다리에 이의를 제기하지 말자는 분위 기도 형성되었다. 특히 보스니아 내 스릅스카공화국이 다리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내 존재감을 드러냈다. 스릅스카는 보스니아 북쪽의 자치 공화국인데 세르비아인들이 산다. 분리 독립해서 세르비아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EU가 막고 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인 네움이 보스니아의 영토인 이유는 1699년에 맺어진 카를로비츠조약 때문이다. 베네치아에서 독립했던 라구사공화국은 튀르크전쟁으로 다시 베네치아로부터 안보를 위협받게 되자 오스만에게 안전을 지켜달라는 의미에서 해안 도시 두 곳을 양도했다. 그 중 하나가 네움이다. 네움은 오스만의 영토였던 보스니아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그런데 네움 주민의 거의 90%는 크로아티아인이다.

펠레샤츠대교는 중국 건설사가 지었다. 국영기업인 CRBC다. 입찰가격이 덤핑 수준이라고 경쟁 오스트리아 기업이 이의도 제기했다. 중국 기술이 지은 EU 최초의 다리다. 크로아티아는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일찌감치 참여한 나라인데 다리의 개통은 중국의 EU 내 존재감도 부각시켰다. 리커창 당시 총리가 개통식 때 영상으로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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