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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파나마 운하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3-11-15 09:00:13

이 기사는 2023년 11월 15일 08:5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프랑스는 1880년에 파나마 운하를 착공했다. 1889년에 실패로 끝내고 1904년에 미국이 사업을 인수해 1914년 8월에 완공했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최단 거리로 이어 주는 82km 파나마 운하는 미국이 운영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1999년부터 파나마 정부가 단독 관리한다. 통과 소요 시간은 약 12시간이다. 연간 약 1만 5,000척이 통과한다. 파나마에는 약 2조 원 규모의 수입이 생긴다.

파나마 운하가 건설되기 전에는 태평양 연안의 아카풀코와 카리브해 연안의 베라크루즈를 연결하는 교역로가 중미의 지협을 극복하는 루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 지역은 거리도 거리였지만 정글을 통과해야 하는 험한 코스였다. 그래서 폭이 가장 좁은 파나마 지협이 점차 주목을 받았는데 문제는 평지가 아닌 산지라는 점이었다. 말라리아와 황열병으로 작업이 어려운 지역이기도 했다. 9년 동안 2만 명이 넘는 사망자를 기록하고 프랑스는 결국 두 손을 들었다.

미국이 이 사업에 손을 댄 것은 당시 서부 지역의 발전 상황이 괄목할 만했던 데다가 스페인 전쟁으로 필리핀과 괌을 손에 넣는 등 태평양 세력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서는 대륙을 횡단하는 물류보다는 바다로 동서를 이어야 할 필요가 컸다. 미국은 프랑스에 4,000만 달러를 주고 사업권을 양도받았다. 그리고 콜롬비아에게 폭 16km의 땅을 99년간 임대하겠다며 1,000만 달러를 제안했다. 완공 후 임대료로는 연 25만 달러를 제안했다. 거절당하자 1903년 미국은 콜롬비아 내 파나마 독립 세력을 사주해 반란을 일으키게 했고 하루만에 파나마공화국 독립이 선포되어 5일 만에 파나마가 탄생했다.

파나마 운하(1904~1914 건설)와 그 좌우 토지로 형성된 폭 16km의 운하 지역은 미국에 영구 할양되었다. 미국은 해당 지역의 모든 토지를 매입해 운하를 건설하고 운영했다. 그러나 미국은 프랑스가 포기했던 이유와 마찬가지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진척이 더뎠다. 그래서 우선 모기를 박멸했다. 그리고 컨셉을 바꾸었다. 도저히 뚫을 수 없는 산맥과 씨름하지 말고 아예 배를 산으로 올리자는 착상을 했다. 댐으로 차그레스강을 호수로 만들고 양측에 3단의 갑문을 설치했다. 6,000명의 사망자를 기록했지만 결국 10년 만에 공사가 끝났다. 운하와 그 유역은 1979년까지 미국이 관리했다.

파나마 운하는 1977년 파나마운하조약에 의해 중립지역으로 규정되어 세계 모든 나라의 상선이 자유 통항할 수 있다. 수에즈 운하보다 폭이 좁아 조선산업을 규정짓는다.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 큰 배들은 양쪽 30cm를 남기고 운하를 통과하는데 조선사들은 여기에 맞추어서 선박을 건조한다. 파나맥스급 선박이라고 부른다. 초기에 폭이 33.5m였다. 이보다 큰 배들은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없어서 시장에서 거래되기 어렵다. 미 해군 군함 미주리호는 폭이 32.96m여서 통과했다. 2016년에 운하 폭이 확장되어서 거기에 맞춘 배들은 뉴파나맥스급이라고 한다.

미국을 뒷배로 집권했던 마누엘 노리에가는 1980년대에 독재자가 된다. 마약과 무기 거래 등 범죄행위를 일삼던 노리에가는 1988년에 미국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레이건 행정부는 노리에가와 사임 협상을 했고 실패했다. 1989년 총선에서 패배한 노리에가는 총선 무효를 선언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파나마 운하 일대의 경비를 강화했고 한 해병대 병사가 사망하자 파나마 침공을 결정했다. 짧은 전쟁에서 314명의 군인을 포함한 516명의 파나마인이 사망했고 미국 측은 3인의 민간인과 23명의 미군이 사망했다. UN총회는 미국의 파나마 침공을 국제법 위반 행위로 규탄했다. 노리에가는 교황청 대사관에 망명하려다가 체포된다. 1990년에 미국에 송환되어 40년 형을 선고받았다.

파나마 운하는 건설할 때 거대한 댐을 지어서 인공 운하의 길이를 줄였다.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가툰호수다. 1913년에 찰스강을 막아 지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인공 호수였다. 해발 26m 정도의 수위를 유지하는데 운하의 총연장 82km 중 33km를 담당한다. 운하 전체가 사용하는 물 공급원이고 파나마시티의 식수원이다. 호수 주변 지역은 아직도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우림지역이어서 자연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고 무엇보다 운하 통항을 안전하게 지켜준다.

파나마 운하는 계단식으로 되어 있어서 선박이 통할할 때마다 막대한 양의 담수를 바다로 방류하게 된다. 운하가 확장된 이후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 최근 가뭄으로 가툰호의 수위가 급격히 낮아져서 통항 선박 수가 통제되고 있고 따라서 통항 요금이 상승하고 있다. 카툰호수는 인공 호수지만 조성된 이래 백 년이 지나면서 그에 맞추어 생태계가 형성되었고 지금은 자연호수와 마찬가지 기능을 한다. 파나마 운하의 대안이 필요하다는 말이 다시 나오는 이유다.

애당초 미국은 19세기에 니카라과에 운하를 건설할 구상을 했다가 파나마 운하 사업을 인수하면서 계획을 폐기했다. 산 후안 강과 니카라과 호수를 활용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길이는 259.4km다. 동서를 연결해야 하는 육상의 거리가 파나마의 1/3이라는 장점이 있었다.

이 구상은 100년도 더 지난 2013년에 다시 떠올라 오르테가 정권이 홍콩의 한 회사(HKND)에 100년간의 양허계약을 승인했다. 혁명의 연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곧 발생한 홍콩의 금융위기로 사업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HKND는 사라졌다. 니카라과 정부도 이 사업을 지원할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운하는 공사비가 파나마 운하에 비해 거의 10배까지 클 것이고 환경영향평가는 정부 지원으로 통과된다고 해도 환경단체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문제가 있다. 거의 전적으로 기존의 강과 호수를 사용하는 루트여서다. 니카라과 호수에 바닷물이 유입되는 참사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니카라과 운하 프로젝트는 만일 실현된다면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파나마의 파나마 운하에 큰 타격을 주게 될 것이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항행 일수를 줄여주는 대안 운하가 경쟁자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잇는 동선이 무려 800km나 단축된다. 니카라과는 반미 국가여서 러시아와 중국의 자본이나 기술이 운하 건설에 참여하고 완공 후 일정한 지분을 가진다면 지정학 차원에서도 새로운 상황이 조성된다. 유럽은 그 와중에서 표정 관리만 하면 된다.

복병이 하나 있다. 만일 니카라과 운하가 등장해서 텍사스의 셰일가스가 아시아나 다른 지역으로 운송되는 거리가 줄게 되면 LNG선 수요가 줄어들어서 우리나라 조선사들로서는 별로 달갑지 않은 상황이 된다. 또, 파나마 운하는 폭 때문에 LNG선들이 대형화되는 데 장애가 있지만 니카라과 운하는 그 문제가 없다. 즉, 조선사들이 초대형 LNG선을 더 주문받게 되고 그 결과 건조할 배의 척 수는 줄어드는 문제가 생긴다. 물론 성사된다고 해도 아주 먼 훗날의 이야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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