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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b & Lab]"전 세계 해저케이블 잇는다" LS마린솔루션 세계로호 타보니'대륙과 대륙 연결' 국내 최대 규모 해저광케이블 매설선

거제(경남)=김혜란 기자공개 2023-12-13 11:11:46

[편집자주]

제조업이든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든, 출발점은 Fab(공장)과 Lab(연구소)다. 여기에서 얼마나 고도화된 공정 개발이, 기술 연구가 이뤄지느냐가 최종 제품의 질을 좌우한다. 더벨이 기업의 산실인 제조 공장과 연구·개발(R&D) 센터 현장을 찾았다. 또 Fab과 Lab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와 연구소장, 엔지니어 등을 직접 만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본다.

이 기사는 2023년 12월 11일 14:0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경상남도 거제시 하청면에 있는 거제부두로 들어서니 대형선박 두 척이 나란히 정박해 있었다. 8000톤 규모의 세계로호와 2000톤 규모 미래로호였다. 동행한 LS마린솔루션 관계자가 말했다. "두 배가 나란히 서 있는 광경은 저희도 보기 힘든데 오늘 타이밍이 좋았네요."

지난달 29일 해저케이블 시공업체 LS마린솔루션의 선박기지인 거제부두를 찾았다. 세계로호는 해저에 통신케이블을 포설하거나 매설하는 배다. 미래로호는 전력케이블과 통신케이블 매설 전용 선박이다. 국경을 뛰어넘어 인터넷이 연결되는 것은 해저광케이블이 대륙과 대륙을 서로 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과 미국 사이 태평양에도 수만 킬로미터(km) 길이의 해저케이블이 깔려 있다. 이 광케이블을 바닷속에 깔거나(포설), 깊이 묻는(매설) 작업을 세계로호나 미래로호 같은 특수선박이 책임지고 있다. 이 배를 이끄는 주재옥 선장(세계로호)과 전현빈(미래로호) 선장을 만났다.

경상남도 거제시 LS마린솔루션 거제부두에 정박한 세계로호(왼쪽)과 미래로호(사진=김혜란 기자)

◇세계로호 선장 언론 첫 인터뷰

1956년생 주재옥 선장은 1998년 건조된 해 3항사(말단 항해사)로 세계로호를 타기 시작했다. 선장이 된 건 2012년이다. 2002년 건조된 미래로호의 전 선장은 세계로호 1항사로 주 선장에게 항해를 배운 제자다. 1993년생인 그는 올해 선장이 돼 이제는 혼자 미래로호의 항해를 책임지고 있다.

주 선장이 이끄는 세계로호는 다음날 일본 인근 태평양을 향해 출항한다고 했다. 기존에 매설된 해저케이블이 고장 나 보수하러 가는 것이다. 주 선장은 "일본 요코하마에 들려 해저케이블과 수리 장비 등을 싣고 작업 지점에 도착하기까지 일주일 정도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미래로호는 완도와 제주도를 잇는 해저전력케이블을 매설한 뒤 전날 부두로 들어왔다고 했다.
주재옥 선장(왼쪽)과 전현빈 선장
5대양 바다 깊은 곳에는 해저케이블이 마치 거미줄처럼 6대륙을 잇고 있다. 대륙과 대륙 간 거리가 워낙 멀기 때문에 시공업체 하나가 다 연결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미국까지 해저케이블을 설치한다면, 전 세계 여러 통신회사가 펀드를 조성해 컨소시엄을 이룬다. 각 구간을 맡고 출자하는 만큼 지분율도 가져간다.

해저케이블 시공업체는 통신사가 발주를 내면 해저케이블 제조업체와 먼저 계약을 한다. 아시아에서 해저케이블 제조는 일본 NEC가 독점하기 때문에 NEC와 계약한다. 전기를 끌어다 주는 전력케이블의 경우 모회사 LS전선과 함께 한국전력공사 등 에너지 회사와 계약하는 구조다.

세계로호에 오르니 LS마린솔루션의 오영식 프로텍트수행부문 시설팀 팀장이 "이 배가 세계일주를 한 배에요. 2000년도에는 프랑스로 가서 케이블을 싣고 수에즈운하와 파나마운하를 통과해 미국 하와이까지 한 번에 간 적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주 선장은 3항사로 이 배에 탔다.

세계로호도, 주 선장도, 배가 건조된 1998년부터 지금까지 25년여간 안 가본 바다가 없다. 주 선장은 "일 년 중 많게는 300일간 배를 타는 해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평양으로 횡단해 해저케이블을 깔았는데, 3개월이 걸렸다"며 "해저케이블이 너무 길다 보니 우리가 다 연결하지는 못하고 중간에 (케이블을) 놔두면 다른 회사가 와서 결합해 다시 잇는 식으로 이뤄진다"고 말했다.

그는 "기상 걱정을 했는데 운이 좋아 3개월 만에 작업을 마쳤다. 7월에 한국에서 출발해 10월 중순에 돌아왔다"며 "오가는 데 한 달이 걸렸고 작업하는 데는 두 달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세계로호는 60명이 탈 수 있게 설계됐다. 선원 45명과 LS마린솔루션 엔지니어 10여명, 감독관 5명 등 60명이 3개월간의 항해를 마쳤다. 3개월간 세계로호 선장과 선원들은 땅을 밟을 시간이 없었다.

선장은 다른 선박과의 충돌을 피하고 무엇보다 파도와 싸워야 한다. 주 선장은 "날씨가 나쁘면 속도를 조정하기도 하고, 파도를 제일 적게 받는 방향으로 견디다가 작업을 다시 시작하기도 한다. 폭풍이 온다는 예보가 있으면 케이블을 끊고 작업을 중단하고 다시 돌아가기도 한다. 여러 변수가 많다"고 말했다.

주 선장과 함께 배를 타는 오 팀장은 "파도와 싸우다 죽을 고비도 넘겼다"고 회고했다. 주 선장은 "북태평양에서 작업하던 중 폭풍우가 몰아쳤는데, 하루 종일 배가 90도로 기울 정도로 심하게 흔들렸다. 그저 견딜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선원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선장은 당시를 회고하다 눈시울을 붉혔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에도 LS마린솔루션(옛 KT서브마린)은 원전 폭발 여파로 끊긴 해저케이블을 보수하러 배를 몰았다.

세계로호 조타실 전경(사진=김혜란 기자)

◇무인잠수정 활용해 대륙과 대륙 연결망 잇는다

세계로호는 어떻게 바다에 해저케이블을 포설하거나 매설할까. 세계로호는 'T800'이라는 무인잠수정(ROV)을 싣고 있다. T800은 고압으로 물을 분사해 깊게는 3m골을 만들며 해저케이블을 파묻어 준다. 컨트롤룸에서 엔지니어들이 장비에 달린 카메라와 센서로 조정한다.

바다 밑에는 돌도, 바위도 있다. 매설이 안 되는 딱딱한 지반에선 땅을 파지 못한다. 그럴 때는 케이블에 보호기구를 단 뒤 그냥 올려둔다. 나머지는 매설한다. 세계로호에는 T800 말고도 포설만 가능한 장비 'MD3-XT PLOUGH'도 있다. 이 장비는 마치 쟁기를 끄는 것처럼 배가 앞으로 나가면서 해저에 광케이블을 깔아놓는다.

수심이 1000m 이상 깊이 들어가면 어로 작업 등에 의해 케이블이 손상을 입을 염려가 없기 때문에 해저면에 그대로 쭉 깔아놓으면 된다. 주 선장은 "제일 깊은 수심으로는 9000m까지 깔아봤다"고 설명했다. 이 장비는 보통 시간당 10Km를 간다고 한다. 10시간이면 100km 포설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세계로호에 있는 무인잠수정 T800.

세계로호는 국내에서 가장 큰 해저케이블 시공 선박이다. 특수선박의 수명은 40여년 정도라고 한다. 앞으로 20여년은 거뜬하게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한 시간여에 걸쳐 배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LS마린솔루션 정우근 프로젝트 수행부문 시설팀 차장이 말했다. "주 선장님같이 특수선박을 운항할 수 있는 분이 우리나라에 몇 분 없습니다." 그리고 주 선장의 뒤를 이어 전 세계 바닷속 해저케이블 지도를 계속 그려나갈 전 선장이 있었다.

미래로호와 전 선장은 며칠 뒤 태국 바다로 다시 길을 떠난다. 중국과 일본, 태국, 베트남을 잇는 해저케이블 '아시아다이렉트케이블(Asia Direct Cable·ADC) 매설 작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전 선장은 "(바다 곳곳을 다니며 포설 작업을 해야 하는 만큼) 15개월 동안 땅 한 번도 못 밟아본 적도 있다"며 "(힘들어도) 이것이 저의 업이니까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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