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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펙사벡은 틀리지 않았다" 신라젠, 같은 균주 고집하는 이유 실험으로 최적 균주 선택한 결과…실패 분석해 적극적 개선

정새임 기자공개 2023-12-18 11:39:47

이 기사는 2023년 12월 14일 09:4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19년 8월 신라젠이 항암바이러스 신약 '펙사벡' 3상 임상시험을 중단하자 코스닥 시가총액 2위였던 회사가 한순간에 존폐 위기에 몰렸다. 한때 '꿈의 항암제'로 불렸던 펙사벡은 임상 실패로 '물약'과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다.

펙사벡은 정말 물약에 불과했을까. 신라젠은 펙사벡의 근본 가치 만큼은 변함이 없다는 믿음을 보인다. 후속 개발에서 펙사벡과 같은 균주를 고집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자체 개발 플랫폼도 와이어스 선택…"실험 결과 최적의 균주"

신라젠은 기사회생 후 자체 개발한 항암바이러스 플랫폼 'SJ-600' 시리즈에 중점을 두고 있다. 오근희 연구소장 주도로 정맥주사로도 항암바이러스 효과를 충분히 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다 CD55 수용체를 활용해 개선을 꾀했다.

신라젠 SJ-600시리즈 특징

SJ-600 시리즈의 핵심은 CD55이지만 그 근원은 펙사벡과 같다. 펙사벡과 같은 바이러스 균주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시니아 바이러스의 여러 균주 중 와이어스 균주를 쓰고 있다.

펙사벡이 시장의 외면을 받은 상황에서 동일한 균주를 사용하는 건 일종의 모험과 같다. 회사도 다른 여러 균주를 테스트해보며 고민을 거듭했다. 결론은 '그래도 와이어스 균주'였다. 테스트 결과 와이어스만큼 인체에서 잘 반응하는 균주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해 로슈에 항암바이러스 플랫폼을 기술수출한 칼리비르는 백시니아 바이러스 중 WR 균주를 사용했다. 칼리비르는 펙사벡 원개발사로 신라젠에 인수됐던 미국 제네렉스 출신 연구원들이 주축으로 있어 와이어스 균주를 쓰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 소장은 더벨과 인터뷰에서 "첫 개발 단계에서 가장 먼저 실험한 것이 와이어스와 WR 균주를 비교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와이어스가 훨씬 우수하다고 결론내렸다. 정맥투여 시 WR 균주는 체내 면역반응으로 10% 정도밖에 살아남지 못하는 것에 비해 와이어스 균주는 20~30% 살아남는다"고 펙사벡과 같은 균주를 택한 배경을 밝혔다.

여기에 신라젠이 자체 고안한 CD55를 붙이니 체내 생존하는 비율을 80%까지 높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신라젠과 전임상 실험을 함께 진행 중인 이동섭 서울대 의대 교수는 "만약 CD55를 현재 시판 중인 항암바이러스 치료제 '임리직'에 적용한다고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며 "백시니아 바이러스, 그 중에서도 와이어스 균주를 사용해 CD55와 결합한 신라젠의 플랫폼이 굉장히 우수하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펙사벡은 유효했지만 임상 설계가 문제…실패 교훈삼아 발전

신라젠은 펙사벡의 실패를 철저히 분석했다. 지난해 가산 아부알파 미국 메모리얼슬로언케터링 암센터 교수가 시작한 펙사벡 3상 실패 원인 분석 연구에 협조하기도 했다. 새로 개발된 SJ-600 시리즈는 펙사벡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밑바탕 삼고 있다.

펙사벡 3상은 간암 환자를 대상으로 당시 1차 치료제였던 넥사바(성분명 소라페닙)와 병용해 넥사바 단독군과 비교한 임상이다. 459명 환자들을 두 군으로 무작위 분류해 한쪽에 펙사벡 투여 후 소라페닙을 투여했다. 대조군에는 넥사바 단독을 투여했다.

신라젠은 임상을 미처 끝내지 못한 채 조기 종료 했다. 1차 무용성 평가에서 대조군과 유의한 개선을 보이지 못해 임상을 진행해도 실익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후 공개된 최종 결과분석 논문에 따르면 펙사벡군의 전체생존기간(OS)은 12.7개월로 대조군 14개월보다 짧았다. 무진행생존기간(PFS), 객관적반응률(ORR)에서도 펙사벡은 유의한 개선을 보이지 못했다.

오 소장은 펙사벡의 기전을 고려하지 못한 병용약제 선택이 문제라고 봤다. 펙사벡을 더한 치료 원리는 펙사벡이 먼저 체내 주입돼 암세포를 죽이고 주변 면역세포를 모아 활성화함으로써 이후 투입되는 약제의 종양 살상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수만 가지의 키나아제(활성효소)를 필요로 한다.

그는 "당시 임상에서 1차 치료에 쓸 수 있는 약제는 넥사바 뿐이었다. 그런데 넥사바는 기전상 키나아제 기능을 억제하는 효과를 지녀 펙사벡의 효과가 이어지지 못했다. 이 때문에 임상에서 넥사바 단독 대비 좋은 효과를 내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간암은 펙사벡의 효과를 크게 보지 못하는 적응증이었다. 이 교수는 "간암은 간이 돌덩이처럼 딱딱해져 바이러스가 이를 뚫고 전진하기 쉽지 않다. 미충족 수요가 높은데 약제 개발이 쉽지 않은 이유"라며 "결국 우리나라 바이오텍의 경험 부족이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로 이어진 사례"라고 말했다.

실패 원인을 분석하고 개선하기 위한 고민을 거듭한 끝에 SJ-600 시리즈로 발전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아직 개발 초기단계여서 이후 개발방향에 대해서도 신중한 모습이다. 경험과 자금이 한정적인 신라젠이 독자적으로 글로벌 임상을 진행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보고 있다. 적극적으로 글로벌 파트너사를 찾고 있는 배경이다.

오 소장은 "임상에서 어떤 적응증을 먼저 타깃할지, 어떤 항암물질(페이로드)를 붙일 것인지 논의하는 단계"라며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고 어떤 시점에서든 글로벌사와 협업할 여지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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