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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더 현장투어]'소음·대기·수질' 중공업 환경고민 해결하는 엔알텍[르포] 경남 김해 소재, 파장으로 페인트 말리고·덧씌워 소음 줄이고

김해(경남)=허인혜 기자공개 2024-02-28 09:08:02

[편집자주]

기업은 홀로 움직이지 않는다. 국내 굴지의 제조기업들은 수백·수천 곳의 납품사와 공생하지 않으면 하나의 제품도 내놓기 어렵다. 완제품과 최종 제조사의 성과를 받치는 협력사들의 현황을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벤더사의 주력 제품과 현황, 연구개발 방향은 곧 국내 제조산업의 흐름을 보여주는 생생한 지표다. 더벨이 벤더사의 주요 현장을 직접 방문해 탐방하고 사람들을 만나 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2월 26일 16:3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제조업체의 공정 과정은 보통사람 눈에 몹시 생경하다. 자동차처럼 일상생활에 접할 법한 물건이라면 부품을 보고 쓰임을 짐작이나마 할 수 있지만 중공업 부품은 그렇지 않다. 발전 장비나 선박 등 중공업 산업생산에 사용할 장치들은 눈 앞에 두고 있어도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라는 고민에 빠지기 마련이다.

경남 김해에 위치한 엔알텍 공장 부지에서는 더 생소한 풍경이 펼쳐졌다. 한 편에 마련된 도장 시설에서는 공장이라면 으레 있어야할 제조 설비들은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놓인 물건들은 페인트가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부품들 뿐이다.

텅 빈 공간인줄 알았지만 비밀은 천장에 있었다. 형광등을 닮은 설비가 천장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페인트 도장을 건조시키는 원적외선 설비다. 뜨거운 공기로 페인트를 말릴 때보다 에너지 비용이 반 밖에 들지 않는다고 남경훈 엔알텍 대표는 설명했다. 23일 찾은 엔알텍 공장 부지에는 탄소저감뿐 아니라 소음 공해, 수질 오염을 줄이는 장비들이 즐비했다.
도장 시설 천장에 빼곡히 달린 원적외선 복사파 건조설비.

◇'3대 환경' 주력사 엔알텍, 3대 중공업·글로벌사 고객으로

엔알텍은 2002년 설립됐다. 소음과 진동, 수질과 대기 환경 등을 조절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곳이다. 두산에너빌리티와 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과 가와사키중공업, 미국의 GE 파워, 중국의 RMS 마린 서비스 그룹 등 글로벌 기업에도 납품한다.

경남 김해 진영역에 내려 다시 6km 이상을 들어가면 엔알텍 공장이 나온다. 4만3000㎡의 부지에 13개동의 공장을 운영 중이다. 생산공장 면적은 2만㎡이다. 숫자로 듣는 것과 눈으로 보고 발로 걷는 체험은 다르다. 예상보다 규모가 상당했다. 둘러보는 데만 한시간여가 소요됐다.
엔알텍 공장 부지 전경.

용접과 제작, 가공을 맡은 A·B·C동은 다른 공장 대비 2~3배의 규모다. 조립과 도장 공정의 D동과 1~8호 공장, 쇼트 블라스팅(Shot Blasting) 전용 공장을 따로 운영 중이다.

엔알텍의 주요 제품들은 3대 환경과 관련이 깊다. 소음과 대기, 수질이다. 공장 내에서 가장 자주 눈에 띈 제품들은 소음기다. 엔알텍은 소음저감 기술로 출발한 기업이다. 두산에너빌리티와 삼성중공업에서 소음진동을 연구하고 소음진동기술사까지 취득한 남경훈 엔알텍 대표의 연혁 덕이다.

◇'텅빈 컨테이너' 씌우면…조용한 중공업 가능해진다

엔알텍의 공장은 사무동을 중심으로 오른편에는 조립 시설이, 왼편에는 용접 등 제작 전 과정의 시설이 갖춰져 있다. 공장 앞 터와 공장 내부에는 갓 조립된 대형 제품과 제조를 앞둔 부품들, 재료들이 빽빽히 쌓여있었다.

남 대표는 "다른 기업 공장은 깔끔하기도 할텐데, 중공업 제조 공장들은 좀 어지러운 편"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말이 그렇지, 그렇게 놓인 제품들은 깔끔한 도장과 포장을 마치고 각각 새 주인을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공장 곳곳에는 독일 해운사 하팍로이드나 일본의 케이라인 컨테이너가 세워져 있었다.

매출 비중 중 상당수가 두산에너빌리티,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에서 발생한다. 지난해 연매출은 446억원이다. 가장 오래 인연을 맺은 협력사 중 하나인 두산에너빌리티가 현재는 매출 비중이 가장 높은 편이다. 두산에너빌리티 수주 현황과 비례해 매출액이 성장할 정도다.
조립 과정 중인 소음 저감 장치들.

가장 먼저 맞닥뜨린 제품은 엔알텍의 정체성을 만든 산업 플랜트용 소음기다. '소음공해'라는 말처럼 소음도 환경오염으로 분류된다. 이 소리를 줄여주는 게 엔알텍이 보유한 원천 기술이다.

에어배출 소음기와 증기배출 소음기 등을 둘러봤다. 고압이나 고온의 가스나 증기가 대기 중으로 배출될 때 발생하는 유동·충격 소음을 줄이기 위한 장치다. 해군 함정용 발전기나 산업용 발전기 등에 설치된다.

공장들 가운데에는 '미니 공장'처럼 생긴 컨테이너 건물이 눈에 띄었다. 다른 공장 대비 규모가 마치 창고처럼 보이는 공간이었는데 안이 또 비어있었다. 필요에 따라 크기도 다양하다는 게 남 대표의 설명이다. 건물이 아닌 음향을 가두는 장치로 그 속을 채우는 건 출고된 뒤다.

가스터빈 등을 외부에서 덧씌워 소음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음향 차폐 시스템으로 부른다. 장치를 씌우기 전 소리의 크기는 110 데시벨 정도다. 장치를 덧입힌 뒤에는 외부 측정 기준 85 데시벨 이하로 소리가 줄어든다. 규정치 이하로 데시벨을 낮춰주는 셈이다. 남 대표는 "조용한 곳에서 일하고 싶은 건 누구나의 욕구"라고 했다. 그 조용함을 만들기 위한 공장은 공정 소리로 시끌시끌했다.
제작 중인 음향 차폐 시스템.

◇파장으로 페인트 말리고, 시간당 수천톤 정화

대기업의 변화는 협력사의 변화를 이끈다. 반대로 협력사의 발전도 대기업에게는 활로를 열어준다. 엔알텍은 대기와 수질까지 영역을 넓혔다. 최근 주력 제품으로 내세운 게 앞서 설명한 원적외선 복사파 건조설비다. 엔알텍은 가로 20m, 세로 10m, 높이 10m 규모의 실증 설비를 설치해 뒀다.

흔히 페인트 도장을 말리는 설비는 보일러로 데운 열풍을 이용한다. 필연적으로 연소가스가 발생하는데 엔알텍은 이 열 에너지를 원적외선 복사파로 바꿨다. 열풍 건조 방식 대비 최소 50% 이상 에너지비용을 줄인다.

통상 도장 건조에 걸리는 기간이 일주일이라면 이 방식으로는 일 단위를 시간으로 바꾼다. 남 대표는 "습도가 85%가 넘으면 도장 수축·변형 등의 이유로 공정이 불가능하지만 원적외선 복사파 방식은 비가 와도 건조가 가능하다"며 "마르는 속도가 3~4배까지 빨라 납기 단축에도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사무동 로비에는 형광등을 닮은 복사파 발생장치 1대를 설치해 시현해두고 있다. 로비에 축소 모형으로 설치해 둔 설비들은 엔알텍의 주력 기술들인데 이중 하나가 아쿠아스타의 수질 정화 장치다. 2019년 선박평형수처리시스템(BWMS) 개발회사 아쿠아스타를 사들여 관련 기술을 개발 중이다. 정화 장치의 크기에 따라 시간당 수천톤의 물을 정화할 수 있다.

남 대표가 꿈꾸는 미래 재원은 역시 환경이다. 그중에서도 수소를 낙점했다. 남 대표는 "수소 발생장치와 저장탱크 시스템 등의 개발과 연구를 진행 중"이라며 "또 발전용 구조물 같은 대형 도장 건조시설에 최적화된 원적외선 도장 건조설비를 갖출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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