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Talk]'초심' 돌아간 CJ ENM의 <패스트 라이브즈>'선택'과 '인연' 다룬 작가주의 영화 …"수요 맞춘 제작 아니라 작품 가치에 집중"
고진영 기자공개 2024-03-04 11:21:41
이 기사는 2024년 02월 29일 07:4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인연(因緣)은 불교로부터 나왔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에서 주인공 ‘노라’는 이야기한다. “팔천 번의 전생에서 팔천 겹의 인연을 쌓아야 부부가 될 수 있는 거래.” 인연이란 말은 마치 영화를 관통하는 철학처럼 반복적으로 사용된다.노라는 12살에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주하면서 첫사랑 해성과 헤어졌다. 원래 ‘나영’이었던 이름도 바꾼 이민자의 삶이다. 12년 만에 해성을 찾았지만 또 끊어낸다. “금방이야. 그냥 잠깐 쉬는 거야.” 노라는 극작가가 되기 위해 뉴욕으로 다시 건너가고, 짧아야 했던 이별은 결국 두 사람의 길을 갈라놓는다.
만남과 헤어짐을 전부 인연으로 설명하는 것은 게으른 문법이다. 그러나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인연이 내포하는 의미는 그렇게 단순치 않다. 과거의 삶을 미래로 이동하게 하는 것은 언제나 선택이며, 선택은 다른 미래와의 단절을 뜻한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그 선택이 옳았음을 인정하면서도 가지 못한 길에 대해 남는 아쉬움. 잃어버린 인연을 상실로 받아들이는 노라와 해성의 체념을 담았다. 체념은 후회가 아닌 수용이자 성장으로 그려진다.
◇셀린 송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 할 것"
이 영화를 연출한 셀린 송 감독과 배우 유태오 씨, 고경범 CJ ENM 영화사업부장을 28일 언론배급시사회에서 만났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송 감독의 데뷔작으로 시나리오 역시 직접 썼다.
송 감독은 12살에 캐나다로 이민했다가 뉴욕으로 건너가 10년간 연극작가로 활동했다. 극중 노라의 배경과 닮아 있다. 첫 영화를 자전적 이야기로 쓴 이유에 대해 송 감독은 “극작가를 오래 했는데 개인적인 부분에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와닿는 각본”이라며 “한 명의 사람으로서 글이나 영화를 만든다면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그는 “데뷔작이 노미트네이트 된 것이 신기하고 영광”이라며 “이번 영화 촬영은 감독으로서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배우는 과정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CJ ENM "영화 제작, 초심으로 돌아갈 것"
<패스트 라이브즈>는 CJ ENM과 미국 할리우드 제작사 A24가 공동제작했다. A24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와 <문라이트>, <미나리>를 제작한 곳이기도 하다.
과거 홍콩 영화제에서 CJ ENM 측이 A24 측을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인연을 맺었다. 이 때부터 두 회사간 협업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프로젝트를 물색하던 도중 A24 측에서 먼저 <패스트 라이브즈>를 제안했다.
고경범 사업부장은 “영화 <기생충> 뒤로 한국 영화의 노하우와 자산을 가지고 어떻게 글로벌 시장 진출을 확대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이었고, A24 역시 아시아 중심으로 인프라와 브랜드를 구축하고 있다 보니 양쪽이 같이 참여하게 됐다”고 부연했다.
또<패스트 라이브즈> 제작을 결정한 배경으로 아시아, 한국적인 정서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어하는 작가적 치열함이 있다는 점을 꼽았다.
CJ ENM은 최근 상업영화 흥행이 줄줄이 실패하면서 영화 투자를 접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전략에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추후 영화제작 방향을 두고 고경범 사업부장은 “예전에는 관객 수요를 먼저 예측하고 여기에 맞춰 영화를 만들었지만 이런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본다”고 평했다.
그는 “과거 성공했던 비즈니스 모델의 연장선에서 무언가를 하기보다 작품 자체의 가치를 어떻게 확산시킬 수 있을지, 60년대 처음 영화를 시작했을 때처럼 초심으로 돌아가 접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런 시도의 일환이 <패스트 라이브즈>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3월 열리는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됐다. 또 전미비평가협회(NSFC) 작품상, 독립영화상인 '필름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에서 최우수 장편영화상과 감독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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