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5월 27일 07시43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우연히 읽은 적이 있다. 읽기 전에는 높이를 나타내는 고도(高度) 같은 건 줄 알았는데 다 읽고 나서도 고도가 무엇인지 아리송했다. 등장인물이 기다리던 고도(Godot)가 끝끝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IPO(기업공개) 데드라인을 앞둔 기업을 들여다 보다 갑자기 이 희곡이 생각났다.2010년대 후반 저금리가 익숙하던 시기 신사업 육성 혹은 지배구조 재편을 이유로 많은 대기업이 사모펀드(PEF) 운용사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새롭게 사업부를 떼어내 키운 뒤 상장시켜 기업가치를 높이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사업이 성장하지 않았고 증시 환경도 빅딜에 우호적이지 않아 계획대로 상장이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 재무적투자자(FI)와 풋옵션 조항을 놓고 분쟁을 펼치고 있는 SSG닷컴이 대표 사례다.
투자를 받은 대가로 IPO 데드라인을 만들어뒀는데 이를 충족시키기 어려워져 대부분 연장을 논의했거나 논의할 예정이다. 그래서 언제 상장할 예정인지 물어보면 크게 답이 두갈래로 나뉜다.
먼저 금리 인하파다. 2022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에서 시작된 글로벌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해 투자 심리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LG에너지솔루션 이후 조 단위 기업가치가 기대되는 IPO를 찾아볼 수 없었다. 최근 시가총액 4조원에 육박하는 규모로 HD현대마린솔루션이 증시에 입성하긴 했으나 여전히 "IPO를 위해선 금리 인하가 급선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금리 인하를 말하는 사람들은 사정이 낫다. 내실이 다져진 상황에서 목표하는 시가총액을 위한 우호적 환경을 바라는 셈이다.
하지만 실적 개선파는 상황이 약간 다르다. 분사시켜 만든 실적이 여전히 적자를 기록하고 있어 아직 상장에 도전하기 어렵다. 이런 경우 “수익성이 개선될 때까지 상장 시점을 기다린다”고 하는 게 일반적이다. 투자할 때 이미 높아진 가치를 인정했던 FI도 회수를 위해선 흑자 전환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라면 투자할 때 받았던 드래그앤콜(Drag & Call)이나 풋옵션 같은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2020년대 초반 대기업 계열사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기만 하면 이른바 '따상'을 기록하던 때가 있었다. 바이오나 IT 플랫폼, 이차전지 기업이라면 무조건 흥행이었다. 어찌 보면 공모주 투자 광풍이라는 타이밍이 진짜 '고도'인 것 같아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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