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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계열 벤처캐피탈의 한계

민경문 기자공개 2011-10-06 11:09:44

이 기사는 2011년 10월 06일 11:0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벤처캐피탈(VC)은 투자 속성 면에서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순수 ROI(Return on Investment)만을 추구하는 독립형 VC가 있는가 하면 수익보다 모기업과의 비즈니스 기회 창출을 중시하는 VC가 있다.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Coporate Venture Capital)은 후자의 경우를 지칭한다.

벤처캐피탈의 본고장인 미국에선 두 형태가 철저히 구분된다. 엑셀파트너스, 세콰이어캐피탈, 그레이록파트너스 등으로 대변되는 독립 벤처캐피탈은 연기금이나 재단 등 외부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조달한다. 추가적인 펀딩을 위해선 일정 수준 이상의 투자 수익률로 '눈도장'을 찍어야 한다.

CVC는 좀 다르다. 수익률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기업의 향후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가 우선이다. 구글 자회사인 구글벤처스가 인터넷과 상관없는 태양광 사업이나 날씨보험 등에도 거액을 투자하고 있는 이유다.

인텔캐피탈의 경우 철저히 모기업 비즈니스와 연관되는 회사를 중심으로 투자한다. 국내에서는 반도체소자업체 크루셜텍과 소프트웨어 제조사인 투비소프트의 지분을 매입하기도 했다. 피투자 기업은 인텔의 다양한 R&D 관련 지적 재산을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활용할 수 있다.

CVC는 전주(錢主)가 다름 아닌 모기업이다. 그만큼 외부 펀딩의 부담이 거의 없을 뿐더러 설사 투자를 실패하더라도 눈치봐야 할 유한책임투자자(LP)도 존재하지 않는다. 투자 결정 역시 제3자가 개입할 여지가 적다.

모기업 대다수가 과거 벤처캐피탈에 힘입어 성장한 만큼 이들의 벤처투자는 '빚'을 갚는다는 취지가 다분하다. 이 같은 선순환 구조는 실리콘밸리가 지금의 명성을 얻게된 주된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 역시 대기업에 속해 있는 벤처캐피탈이 적지 않다. 삼성벤처투자, CJ창업투자, 네오플럭스(두산), 한화기술금융, 코오롱인베스트먼트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대교인베스트먼트가 신규 설립되기도 했다. 금융그룹 자회사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아진다.

하지만 이들을 전부 CVC의 범주에 포함시킬 지는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삼성그룹이 전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삼성벤처투자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금융기관 펀딩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모기업이 펀드의 유한책임사원(LP)으로서 일부 지원한다고는 하지만 10%미만에 그친다. 그나마도 점차 줄여나가는 추세다. 그러다보니 여타 벤처캐피탈과 마찬가지로 금융기관의 펀드 운용사 선정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수익률 관리도 병행돼야 한다.

사실 그룹 오너 입장에서 벤처캐피탈은 수익 모델이 아니다. 수조원에 이르는 그룹 매출과 비교하면 이들의 실적은 보잘 것 없는 수준이다. 겉으로는 모기업의 비즈니스 기회 창출을 위한 '첨병'이라는 점을 내세우지만 명분에 그치곤 한다.

한 벤처캐피탈 관계자는 "다른 오너들이 벤처캐피탈을 갖고 있으니깐 우리도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했던 경우가 많다"며 "대표이사 등이 그룹 인사를 통해 정기적으로 바뀌다보니 자율적 경영 역시 불가능하다"고 했다.

해당 벤처캐피탈로선 신규 업체를 찾기보다 모기업에 납품중인 업체를 소개받아 투자를 집행하는 것이 안전하다. '땅 짚고 헤엄치기'는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모기업과 외형상 분리됐다고 해도 사실 '끈'을 놓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과적으로 CVC도 독립형 VC도 아니라는 얘기다.

대기업과 벤처캐피탈 간 어두운 단면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한 벤처캐피탈 사장은 대출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자금줄을 댔던 대기업의 오너가 보증을 서기도 했다. 그룹 비자금 관리 차원이 아니냐는 얘기가 돌았다. 결국 대표는 주가 조작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모럴해저드'에 발목 잡힌 해당 벤처캐피탈은 업계에서 발을 붙이기 어렵게 됐다.

한 때 경제지면을 달구었던 대기업과 중소기업과 상생 혹은 동반성장 이슈의 해결책으로 대기업의 벤처캐피탈 활용을 떠올린 적이 있다. 이익 공유제라는 극단적인 방법보다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형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그와 같은 훈훈한 스토리는 불가능한 얘기인 것 같다. CVC가 아닌 '재벌형' 벤처캐피탈의 한계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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