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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부부관계, 미리 준비하면 끝까지 행복하다 [WM라운지]

곽재혁 KB WM투자자문부 수석전문위원공개 2021-09-15 08:26:24
60세로 정년을 맞은 토요하라는 퇴임식이 끝나자 백화점에 들러 아내를 위한 반지를 산다. 그 다음 하와이 부부동반 해외여행 준비를 하려고 영어학원을 등록한다. 저녁에 귀가한 그가 가족들과의 저녁자리에서 해외여행을 이야기하자 기뻐하기는 커녕 되레 얼굴이 굳어가는 아내 요코가 폭탄선언을 한다.

“나도 당신에게 오늘 할 말이 있었어요. 이혼해 주세요.”

2005년 방영된 일본 아사히TV의 인기 드라마 ‘황혼이혼’의 한 장면이다. 드라마는 가족과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은퇴 후 아내와 사회의 냉대에 대한 남편의 배신감과 좌절감을, 한 편으로는 가사와 육아는 거들떠 보지도 않으면서 지적(?)만 해대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분노를 적절히 대비하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는 데 성공했다. 물론 황혼이혼이 빠르게 증가하는 시대적 배경도 드라마의 흥행을 이끄는 요인이 됐다.

은퇴 후 노년 부부의 황혼이혼은 세계 최고의 고령화 대국 일본의 경우 장기간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35년 이상 혼인한 부부의 이혼건수는 1995년~2019년까지 무려 3.5배 가량 급증했다. 2000년대 들어 '노부부가 막내 아들의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보낸 후 나리타 공항에서 갈라선다'는 나리타 이혼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한데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30년 이상 혼인한 부부의 이혼건수는 1만 6600건으로 10년 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 연령대의 이혼건수는 되레 소폭 감소한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변화는 결코 간과할 수 없다. 황혼이혼의 급증이 자칫 여러가지 고령자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부부가, 그것도 상호 의존이 절실히 필요한 황혼기에 이런 극단적 결심을 하게 하는 원인으로는 우선 은퇴로 인해 가정 내 리더십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경제적 능력은 상실되는 반면 집안 일에는 서투르다보니 가정 내 리더십도 남편에서 아내로 옮겨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자녀들 또한 아버지보다 어머니와 커뮤니케이션을 더 많이 한다.

하지만 유교문화가 뿌리깊던 과거에 어린시절을 보낸 대다수의 장년, 노년 남성들은 이러한 변화에 대해 둔감한 경우가 많다. 이미 바깥 세상은 자신의 가치를 더 이상 높게 평가하지 않는 만큼 그 상실감의 반작용으로 과거 만만했던(?) 아내에게 되레 자존심을 더 내세우고 사사건건 지적질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내의 입장은 미칠 지경이다. 과거에도 짜증은 났지만 그래도 집에 있는 시간이 적어서 살만했는데 이제는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막내 아들의 결혼 이후 황혼이혼을 결심한 67세의 K씨는 공무원이었던 남편이 퇴직하고 나서 스트레스가 급증했다며 괴로움을 토로했다. ‘그 동안 벌어놓은 거 다 어디로 갔느냐? 돈이 얼마나 되는냐?’며 계속 간섭하고 외출 좀 하려면 번번이 취조하듯 행선지와 만나는 사람들을 캐묻더니 어느 날은 확인전화까지 하는 것을 보고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남편이 퇴직하기 전까지는 아침, 저녁에 잠깐만 보면 되었고 아이들도 있어서 참고 살았지만 퇴직 후에는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가 되레 더 심해져 자칫 화병으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에 이혼을 결심했다고 했다. 어차피 이혼을 해도 결혼생활 중에 형성된 재산과 남편의 공무원 연금은 분할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큰 데미지가 없는 만큼 굳이 참고 살아야 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진행되는 신체적, 정신적 노화는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윤대현 교수는 “나이가 들면 되레 사소한 일에도 감정이 상하고 상대방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며 자기 고집이 강하고 잔소리가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젊었을 때는 그렇지 않던 부부도 노년기에는 잦은 의견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배경인데 따라서 경각심을 가지고 이런 인생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계속 뒤돌아봐야 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이혼을 해야 두 사람 모두 행복한 경우도 있겠지만 부부감정의 훼손으로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황혼이혼은 노년에 부양가능한 가족단위의 붕괴와 주변과의 고립에 따른 노인문제를 유발하게 된다. 특히 “혼자 살면 남자는 이가 서 말이고 여자는 쌀이 써 말이더라”라는 속담처럼 가사나 가족간의 커뮤니케이션에 서투른 남자들에게 황혼이혼은 더욱 치명적이다.

그럼 은퇴 후 닥칠 수 있는 부부관계의 위기, 미리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배우자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황혼이혼의 사유 중 가장 핵심포인트가 여기에 해당된다. 남편의 경우 본인은 가족 부양을 위해 노력했으니 은퇴 후에 삼시 세끼 따뜻한 밥상 받으며 살 권리가 있다는 생각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내 역시 방식만 달랐을 뿐, 가사와 육아로 부양에 최선을 다하기는 마찬가지다. 많은 아내들이 은퇴 후 남편에게 불만을 표출하는 배경은 바로 아내의 노고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물론 이와 반대로 은퇴 후 아내와 자녀들이 그림자 취급을 하는 데 대한 배신감과 상실감을 토로하며 이혼청구를 하는 남자들의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돈을 많이 벌었던 적게 벌었던 가장의 본분에 충실한 남편의 노력은 존중해 줘야 한다.

여하튼 노후문제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한 상호 존중의 일환으로 아내도 일에서 독립을 시켜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내가 정년퇴직한 그날부터 아내도 전업주부직에서 정년퇴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가 집안 일을 공평하게 나누면서 서로가 충분한 자유시간을 누리게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은퇴 전부터 부부간에 함께 하는 시간을 꾸준히 늘릴 필요가 있다. 사실 모든 인간관계는 존중에 앞서 친밀감이 전제돼야 하는데 은퇴하기 전까지는 남편과 아내가 각자의 역할 때문에 같이 하는 시간이 너무 적은 것이 문제의 출발점이다. 전문가들은 거창한 취미활동이 아닌, 시간을 내서 종종 같이 주변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취약해진 부부간의 유대감을 재형성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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