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2년 07월 28일 07:54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착각하지 마라. 밸류에이션이 높아졌다고 해서 사업 실력이 느는 것은 아니니."최근 만난 시니어 심사역들은 강도 높은 경고를 던졌다. 단순한 '꼰대'의 지적은 아니다. 이미 20년 전 닷컴버블을 시작으로 각종 파고를 넘어오며 벤처투자의 뼈아픈 경험을 체화한 노장들의 자부심이다.
"기업가치는 장부에만 존재하는 의미 없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업계에서 쉽사리 꺼내기 힘든, 아프고도 강렬한 기억을 꺼냈다. VC 펀드 빈티지에 스크래치를 낸 옐로우모바일이다. 10년도 채 되지 않은, 소위 잉크도 마르지 않은 포트폴리오다.
옐로우모바일은 끊임없는 펀딩과 인수·합병만으로 기업가치를 높였다. 수천억원의 매출, 수백억원의 영업이익이라는 회계장부상 숫자만을 금과옥조로 떠받들며 기업들을 공격적으로 사냥했다. 기업가치 4조원을 넘어서며 국내 2호 유니콘 기업이 됐다. 그러나 영광은 잠시뿐이었다. 이내 돈줄이 막혔고 빠르게 무너져내렸다. 속도 집착의 끝은 사실상의 폐업, '추락한 유니콘'이라는 오명만 남았다.
이제 시장은 냉정해졌다. 올해 상반기 투자는 작년 동기 대비 60% 이상 증가한 7조원을 기록했지만 톱티어에만 자금이 몰렸다. 초기 투자는 줄었고 중·후기 시리즈의 기업의 밸류에이션은 L자 형태로 떨어지고 있다.
통상 8년 뒤 유보된 성적표를 받아보는 벤처투자는 '그때는 틀렸어도 지금만 맞으면' 됐다. 이제는 다르다. '지금도 맞고 앞으로도 맞아야만' 하는 형태로 점차 변하고 있다. 보수적인 시장 속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하며 이제는 사후관리가 핵심이다. 투자본부 심사역 전원이 사후관리에만 전진 배치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한 VC 대표는 피투자기업에 '연소율(Burning rate·회사가 현금으로 지불한 연구개발비·기타 비용의 비율)'을 보수적으로 보라고 자문한단다.
지금부터는 새판을 짜야한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도 좋지만 자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내실을 갖춰야한다. 반복 가능한 매출을 일으켜 유동성 확보도 필요하다. 사후관리 처방의 효과가 벌써 나타나는 곳도 있다. 프롭테크 A사는 감원을 통해 2016년 설립 이래 한 번도 달성하지 못했던 손익분기점(BEP)을 올해 반기 만에 달성했다고 한다.
2019년 '혁신'이라는 단어는 구글 검색에서 경제성장, 지구온난화 같은 말들을 가볍게 제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지금도 우리 사회는 이 단어에 병적으로 집착하고 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문을 열어줄 것이라며 비판의 눈을 감았다. 그러나 이제는 '자생없는 혁신'은 무의미하다. 혁신을 외치는 스타트업들은 지금, 언제든 홀로 설 준비가 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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