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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수수료 경쟁은 없다 [thebell note]

황원지 기자공개 2024-05-10 08:14:54

이 기사는 2024년 05월 03일 07:0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위가 수수료 인하 경쟁에 나서는 건 다 죽으라는 것이다.” 최근 만난 한 자산운용사 ETF 본부장은 불만을 토로했다. 삼성자산운용이 쏘아올린 보수 인하 경쟁 이야기였다.

지난달 말 삼성자산운용은 미국 S&P500과 나스닥100 지수를 추종하는 ETF 4종의 보수를 연 0.05%에서 0.0099%로 인하한다고 밝혔다. 1억원을 넣어도 투자자가 부담하는 비용이 1만원도 안되는 업계 최저 수준이다.

수수료 인하 경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KB자산운용은 다수의 ETF 수수료를 업계 최저 수준으로 내렸다. 후발주자로 점유율을 확장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한국투자신탁운용도 지난해 미국30년국채선물레버리지 보수를 업계 최저 수준으로 맞추면서 점유율 확대를 노렸다.

ETF 수수료 인하는 운용사마다 때되면 한번씩 나오는 흔한 마케팅 전략이지만 업계가 유독 이번 인하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 주인공이 업계 1위인 삼성자산운용이기 때문이다. 또다른 운용사의 ETF 운용역은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간판 상품 ETF 운용보수가 1억원에 9000원 수준이 된 것”이라며 “결국 타 운용사의 보수도 이를 기준삼아 아래로 줄세우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지금의 경쟁은 창의적인 상품을 유도하기보단 제살 깎아먹기에 가깝다. 이미 한국 ETF 시장의 활동성은 압도적이다. 현재 한국 ETF 시장의 규모는 120조원, 그 안의 상품 수는 거의 800개에 달한다. 규모가 700조원에 가까운 일본 ETF 시장의 상품 개수가 300개도 안되는 점을 고려하면 훨씬 다양한 상품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오히려 상품 수가 너무 많아져 보수 외에는 차별점을 두기 어려워졌다.

장기적으로 운용업의 기반 자체가 훼손될 우려도 있다.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투입된 인원과 자금에 비해 수익이 나야 한다. 100억원을 유치해봤자 매년 90만원을 버는 시장이라면 비즈니스적 관점에서는 외려 시작하지 않는 게 낫다. 이미 지난해 자산운용사들의 수익성 가늠자인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1.1%로 전년 대비 반토막이 났다.

업계에서는 완전히 시장 자율에 맡기기보단 개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단순히 보수를 낮추는 경쟁이 아닌 특색있는 상품을 만들기 위한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방안으로 거론되는 건 ETP 신상품 보호제도나 액티브 ETF 활성화다. ETP 신상품 보호제도는 독창적인 구조의 ETF라면 6개월동안 베끼기 상품이 없도록 보호해주는 방안이다. 이외에도 단순히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ETF가 아닌 운용역의 역량이 들어간 액티브 ETF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유통, 카드, 코인거래소까지 수수료 전쟁이 일어난 업권은 많다. 하지만 차별화가 아닌 단순히 더 싸게 주는 경쟁이 붙은 업권은 장기적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산업의 성장성이 떨어져 추가 투자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더 좋은 투자상품을 만들어낸다는 운용업의 본질을 키우는 방식으로 경쟁의 모습이 바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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