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2년 12월 05일 08:0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물 시장에 관치(官治)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단기 자금시장 경색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금융당국은 지난 10월 말 금융사들을 불러 모아 가능하면 국내보다는 해외로 나가 채권을 발행할 것을 주문했다. 당시 시장 악화로 이미 복수의 AA급 공기업들마저 외화 조달 일정을 연기한 상황이었던지라 금융사들이 바로 발행에 나서기는 어려울 거란 지적이 이어졌다.
며칠 뒤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 선언으로 한국물 시장이 한바탕 출렁이자 해당 주문은 금세 무색해졌다. 다음 날 금융위원회는 보도자료를 내고 '합리적인 선택'이었다는 의견을 밝혔으나 일주일 뒤 다시 입장을 번복했다. 결국 주요 시중은행들이 흥국생명의 RP 매입에 투입되는 방식으로 금융당국의 그림이 완성됐다.
흥국생명 사태는 여차저차 일단락됐지만 이로 인해 해외 투자자들의 한국물에 대한 투심이 급격히 악화한 나머지 올해 더 이상의 공모 외화채 발행은 어려울 거란 관측이 주를 이뤘다.
예상은 빗나갔다. 신한은행은 흥국생명이 기존 계획대로 콜옵션을 행사하겠다고 밝힌 지 하루 만에 호주 시장을 찾아 195bp의 가산금리를 지급하고 캥거루본드를 발행했다. 금융당국이 높은 금리에라도 해당 발행을 꼭 성사시킬 것을 주문했다는 후문이다. 신한은행 입장에서는 한국물 시장을 다시 열었다는 명분은 얻었지만 실리는 놓친 셈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신한은행의 캥거루본드 발행 다음 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흥국생명이 어쨌든 이날 콜옵션 행사를 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해결이 됐고, 신한은행도 4억호주달러 채권 발행에 성공했다"는 평을 남겼다. 한국물 시장에 대한 금융당국의 '감'이 어느 수준인지 추측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이번에는 금융감독원이 나서서 금융사들의 외화채권 발행을 자제시킨다는 소문까지 돈다. 한국물 시장에는 이미 기획재정부의 '윈도우(Window)' 제도가 자리 잡고 있어 관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타 기관들의 으름장까지 뒤섞이며 연이은 엇박자가 나고 있다.
이로 인한 피해는 결국 발행사들의 몫이다.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자금 조달 계획을 짜고 있을 발행사들의 스텝이 금융당국의 말 한마디에 동전 뒤집히듯 바뀌는 건 한국물 시장 전체에도 손해다.
20여 년 전 카드채 사태 당시 모 금융관료의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명언(?!)이 겹쳐 보이는 건 우연일까. 금융당국의 지나친 간섭은 한국물 시장에 불필요한 잡음만 더할 뿐이다. 내년 올해보다 더 많은 외화채 만기가 돌아오는 상황에서 발행사들이 누구의 눈치를 봐야 할지조차 혼란스러워하는 상황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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