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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영풍과 헤어질 결심]마음은 굳혔다, 현실화 가능성은'영풍 리스크' 부담 크지만…현재로선 계열분리까지 요원

조은아 기자공개 2024-03-26 08:20:33

이 기사는 2024년 03월 25일 17:1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고려아연을 놓고 갈등 중인 영풍그룹 두 집안이 '동업의 상징' 서린상사로 전선을 확대했다. 그간 지분 확보에 집중하며 '후일을 도모하던' 최씨 일가가 먼저 '액션'에 나섰다는 점에서 최씨 측이 완전히 헤어질 결심을 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실 영원한 아군도 적군도 없다는 말처럼 두 집안의 결별은 어느 정도는 예견된 수순이었다. 그간 양쪽의 사이가 나쁘지 않다는 점이 둘의 행복한 동행을 점치는 근거였는데 바꿔말하면 '사이'에 의존할 만큼 느슨한 동업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의미다.

◇마음 굳힌 고려아연과 못 보낸다는 영풍

두 집안의 입장은 명확하다. 현재 고려아연을 이끌고 있는 최씨 일가는 독립 쪽으로 완전히 마음을 먹은 모양새다. 영풍과의 불편한 동거를 이어갈 필요가 굳이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영풍이 최근 신주발행 무효소송을 제기하는 등 경영 방침에 제대로 딴지를 걸면서 더욱 마음을 굳힌 모습이다. 신사업에 속도를 내야하는 상황에서 언제든 장씨 측이 태클을 걸어올지 모르는 리스크를 안고 경영을 이어갈 순 없다는게 고려아연측의 판단이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고려아연은 영풍과 완전히 갈라서서 경쟁자가 되려고 한다"며 "영풍의 부진한 실적과 더불어 최근 경영 간섭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고려아연 경영에 대한 권리도 처음부터 자신들에게 있었다는 게 최씨 측 입장이다. 동업을 시작한 이래로 고유 영역을 설정하고 각자 체제로 운영해왔기 때문이다. 현재 최씨가 영풍 경영에 개입하지 않듯이 장씨의 고려아연 개입 역시 월권이라는 얘기다.

장씨 측 목소리 역시 분명하다. 고려아연을 '이대로 놔줄 순 없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서로간 합의에 따라 경영을 최씨가 해왔을 뿐인데 몇 년 사이 회사가 커지고 잘나간다고 이제와서 합의를 깨고 나가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요지다.

문제의 시작을 찾자면 고려아연이 최근 몇 년 사이 너무 커졌다는 데 있다. 과거 최씨(고려아연)와 장씨(영풍 및 영풍 계열)가 각각 경영하는 회사들의 실적이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춰가며 비슷하게 성장해왔는데 어느새 격차가 큰 폭으로 벌어졌다. 영풍은 최근 몇 년 사이 적자를 이어가는 중이다. 시가총액은 25일 종가 기준 8805억원으로 고려아연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고려아연과 영풍의 규모가 비슷하고 실적 역시 둘 다 좋았다면 지금과 같은 갈등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갈라서더라도 의견 조율을 통해 각각의 회사를 들고 독립하면 된다.

◇순환출자 해소하며 장씨 측 지분율 확대…균열의 씨앗

영풍그룹은 국내 주요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한 지붕 두 가족' 경영체제를 유지해왔다. 계열분리 가능성은 물론 당위성도 다른 어느 그룹보다 높았다. 둘의 갈등이 드러나기 전에도 언젠가는 최씨 일가가 고려아연을 들고 영풍그룹에서 독립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했던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영풍그룹은 1949년 고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공동으로 설립한 영풍기업사를 모태로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경영권 분쟁 한 번 없이 안정적 경영을 이어왔다. 서로의 영역에 간섭하지 않았던 점이 비결로 꼽힌다.


한때 지분구조 역시 단순했다. 고려아연의 최대주주이자 지배구조 최정점에 있던 영풍 지분을 두 집안이 비슷하게 나눠 보유했다. 그러나 그룹이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장씨 일가가 개인뿐만 아니라 개인회사를 통해 영풍 지분을 사들이면서 균형이 깨졌다.

장씨 일가의 지분율이 10%포인트 이상 높아진 반면 최씨 일가의 지분율은 그만큼 떨어졌다. 장씨 일가가 직간접적으로 보유한 영풍 지분율은 50%를 훌쩍 넘지만 최씨 일가가 보유한 영풍 지분은 10%대 수준에 그친다. 영풍은 고려아연의 최대주주다. 두 집안의 사이가 예전처럼 좋았다면 별 문제가 안됐겠지만 지금에 와서보니 고려아연을 소유한 곳(장씨)과 경영하는 곳(최씨)이 달라지면서 갈등의 씨앗이 됐다.

최씨 일가는 이에 대응해 최근 1~2년 사이 말 그대로 무서운 기세로 고려아연 지분율을 높여왔다. 현재 고려아연 지분율은 최씨가 32.10%, 장씨가 31.57%다. 어느덧 최씨가 장씨를 따라잡았다.

재계 관계자는 "언젠가는 결별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영풍 지분을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했어야 하는데 이 점을 간과했다"며 "최씨 측에선 최근 몇 년 사이 지분을 있는 대로 끌어모으는 과정에서 뼈저리게 후회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류상으로 간단하지만 현실화 가능성은

사실 두 집안의 분리는 서류상으로는 그리 복잡하진 않다. 장씨 일가의 고려아연 지분을 3% 미만으로 줄이고 임원 겸임을 없애야 한다. 더 간단하게는 영풍이 보유하고 있는 고려아연 지분 32%를 최씨 일가가 넘겨받으면 해결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지분가치가 너무 높을 뿐 아니라 장씨 일가가 내줄 리도 없기 때문이다. 고려아연 시가총액은 25일 종가 기준으로 9조5000억원대에 이른다. 최씨가 받으려면 3조원이 필요하다.

장씨 일가로선 고려아연이 떨어져 나가는 건 반드시 막아야 한다. 고려아연은 홀로 영풍그룹 전체 매출의 50% 이상, 영업이익의 8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씨 측이 고려아연 지분율을 아무리 높인다고 하더라도 계열분리의 키를 장씨 측이 쥐고 있는 만큼 현재로선 '완전한 독립'은 요원해보인다"며 "양쪽이 당분간은 지금과 비슷하게 지분율을 높이기 위한 '치킨게임'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계열분리가 순조롭게 이뤄졌거나 이뤄지고 있는 곳을 살펴보면 최씨 측의 꿈은 한층 멀어진다. 두 집안의 평화로운 합의는 둘째치고 사전에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가장 최근의 효성그룹만 하더라도 그간 꾸준히 부인해오면서도 물밑에선 계열분리를 우선순위에 뒀다. 조현준 회장과 조현상 부회장은 그룹에 몸담기 시작한 직후부터 내부에서 맡아왔던 사업 분야가 다르다. 조 회장은 섬유PG장을 맡았고 조 부회장은 산업자재PG장을 맡았다. 둘 사이에서 사업영역을 놓고 개입이 이뤄진 적은 없다.

이후 효성그룹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섬유PG는 효성티앤씨로, 산업자재PG는 효성첨단소재로 각각 출범했다. 당시 지분 정리도 어느 정도 마쳤다. 조 회장은 효성첨단소재와 효성티앤씨의 지분을 각각 14.59%씩 들고 있었는데 지주사 지분율을 높이기 위해 효성첨단소재 지분 전량을 ㈜효성에 넘겼다.

조현상 부회장 역시 두 회사 지분을 12.21%씩 들고 있었는데 효성티앤씨 지분을 ㈜효성에 모두 넘겼다. 둘 모두 상대의 주축이 될 수 있는 회사로부터 손을 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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