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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지표에 갇힌 신용평가, 유연함 필요하다 [크레딧 애널의 수다]⑤금감원 통제 강화, 사라진 자율성…평정 능력, 글로벌 못지 않아

피혜림 기자공개 2019-06-13 14:47:16

[편집자주]

'크레딧 애널리스트 3명이 모이면 지구가 망한다' 자본시장에 떠도는 우스갯소리다. 그만큼 보수적이고 비판적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그들의 수다는 어둡다. 그러나 통찰이 있다.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 자본시장 내 불안요소가 드러난다. 더벨이 그들을 만났다. 참여 애널리스트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위해 소속과 실명은 밝히지 않기로 했다.

이 기사는 2019년 06월 11일 16:5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13년 동양그룹 사태는 국내 신용평가업계에 큰 상처를 준 사건이었다. 등급 의뢰 기업과 신용평가사 간 뒷거래가 처음으로 발각되며 신평사의 신뢰도에 금이 갔다. 이후 금융감독원의 특별검사 아래에서 신용평가사는 자율성을 잃어갔다. '아트의 영역'으로 불렸던 신용평가는 이제 재무 지표라는 절대 기준에 갇힌 신세가 됐다.

크레딧 애널리스트들은 이같은 현상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반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후 공개되는 재무제표만으로 상환 능력을 평가하는 건 역부족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융통성 역시 일정 기준이 있을 때 발휘될 수 있다며 판단의 유연성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글로벌 신평사와 국내 신평사 간 합작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차이가 드러났다. 국내 신평사의 평정 능력을 평가하는 관점에 따라 글로벌 신평사의 선진 기법 도입에 대한 의견이 갈렸다.

B: 신평사가 동양사태로 감독을 강하게 받은 후 바뀐 것 중 하나가 등급 평정 시 왜 해당 등급이 나왔는지에 대한 논리를 설명한다는 거다. 이전엔 포워드 루킹(Forward Looking)이라고 해서 자기들 전망치를 많이 반영 했는데 이제 신평사 자체의 전망만 가지고 판단하기에 부담이 된 것이다.

지금은 자를 대놓고 재무가 이 수준이면 이 등급을 줘야한다는 인식이 많이 깔려 어떻게 보면 신용등급이 포커스에 맞춰 표면적으로 움직인다. 신평사도 믿을 수 있는 재무제표와 확정적인 단서 등이 나와야만 등급을 조정하고 액션을 취할 수 있게 되다보니 이런 현상 나오는 듯하다.

C: 감독원 신평사 담당 검사팀원이 4~5명 되는데 평가 3사(NICE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만 감독을 하다보니 만날 앉아서 등급만 공부한단다. 그래서 지금 평가사 직원보다 더 잘 안다고. 진짜로.

감독원에서 약간 핀트가 엇나가거나 기준에 맞춰서 등급을 주지 않으면 문제 삼으니까 미래를 보기 보단 현재에 맞춰서 등급을 주는 상황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 감독원에서 신평사 담당하는 분들에게 다른 쪽 신용정보사나 다른 업체 등을 붙여서 일을 늘려줘야 할 듯 싶다.

B: 원래 심사의 가장 큰 메인인 등급이나 신용평가는 아트의 영역이다. 기준점을 설정해 맞추기 보단 동물적인 감각과 장래에 대한 신평사의 판단이 중요하다. 은행은 담보가 있기 때문에 담보평가만 하면 되는 심사라면, 종금사는 밑도 끝도 없이 다 신용으로 보니까 장래를 다룬 포워드 루킹 쪽을 많이 본다. 숫자와 더불어 숨겨져 있는 재무적 융통성 등을 찾아내는 게 전부 일이다. 그걸 해야되는데 신평사는 오히려 거꾸로 가는 모습이다.

C: 진짜 오랜만에 듣네. 아트의 영역이란 말. 옛날엔 진짜 아트의 영역이라고 대놓고 했다. 동양사태 이후 그렇게 못 한다. 아트는 무슨 아트야.

B: 이제 '기준 가져와봐 기준, 기준에 맞춰' 이런 식.

A: 감독원에서 워낙 오류를 잘 발견해서 심지어 그때 담당자를 포상 형태로 유학 보내주기도 했다더라. 그만큼 잘 하고 있는 부분도 많다고 보는 게, 신용평가사는 담당자가 매년 바뀌다보니 일년전 잡아놓은 트리거와 올해 잡은 게 틀린 경우가 있다. 심지어 전에 잡아놓은 트리거를 엉뚱한 산업에 끌고 와서 적용하는 부분도 있고.

그리고 아트는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다. 아트의 영역이란 것도 기본적으로 참조점(reference point)을 잡고 있을 때 핵심 기준 같은 부분들에 대한 개념이다. 물론 최근 도입하기 시작한 우리나라보다 무디스나 S&P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가 더 유연하게 적용하긴 한다. Debt to EBITDA 이런 것도 간소하게 하고 있고 '향후 몇 년' 이런 부분도 over the next couple of years와 같이 재량적으로. 향후 2~3년 정도는 이 수준의 재무지표 유지할 거 같다는 식이다. 근데 아무 것도 없이 그냥 등급을 그러면 곤란하다.

B: 우리나라 기업이 망할지 안 망할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긴 하다. 최종적으로 망할지 아닌지는 은행이 결정한다. 은행 여신을 끊냐 아니냐가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하다.

A: 딱보면 빨갱이네 식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B: 실무적으로 남들보다 먼저 회수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있는 사람들은 비재무적 요소에 자주 접근하는 경향을 띤다. 이론적으로 나오는 재무제표 숫자 자체는 표면적이기 때문이다. 4월에 나온 결산 재무제표로 판단하면 이미 반 년 이상 지난 현상을 가지고 보는 셈이다.

반면 실제 돈이 말리고 안 말리고는 지금 결정된다. 실제로 자금팀과 얘기해보면 그쪽은 자금판 3개월치, 6개월치를 다 꿰고 있다. 그 이외에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른다. 자금팀 사람 자주 바뀐다? 그럼 굉장히 위험하다. 땅굴 들어갈 때 불순물 나오면 바로 죽는 카나리아 새를 항상 가져가는 것처럼 밤에 갑자기 술 마시다 10시쯤 전화했는데 재무팀이 사무실에서 바쁘게 일을 하고 있다, 그러면 뭔가 심각한 거다. 자금팀이 은행 문 닫았는데 열심이 일한다는 거니까.

Q: 지난해 신용평가사 인력유출이 활발했다. 인력 부족 등으로 인한 누수는 없는가.

C: 신평사는 지금도 인력 유출 중이다.

B: 활동성은 많이 느껴진다. 신평사 꼬집어서 말하는 게 아니라 확실히 사람이 많이 나가고 한기평도 구조조정하고 윗사람이 많이 바뀌면서 그때 보고서 양이나 활동량 등이 떨어졌다. 한신평도 핵심 인력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점점 빠져나가는 모습 보이면서 비슷해졌고. 그나마 유독 나이스만 그런 게 안 보였는데 나이스는 CERCG로 타격을 받았다.

A: 위에서 아무 말도 안한다고 하더라. 사람들이 계속 나가고 하니까 위에서 보고서 내용 부실하다고 해도 그냥 마음으로 안아주는 분위기가 됐다고. 모든 걸 사랑으로 다 용서하는 분위기.

B: 좀 불만인 게 신평사들이 신뢰도 높이기 위해 글로벌 신평사와 지분 관계 있지 않나. 하지만 지분만 있지 실질적으로 협력관계나 선진평가 기법 들여와서 발전시킨다 이런건 없더라.

A: 선진이 어딨나. 그런 거 없다.

B: 그래도 한신평에 무디스 들어왔을때 이런 부분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있었다. 사실 우리나라는 IMF 겪으면서 국제 신평사에 환상을 갖고 있었다. 나이스는 지분 관계는 없지만 S&P와 협약 맺은 정도의 수준이고. 그런데 막상 들어와서는 있는 데나 없는 데나 다 똑같다.

A: 글로벌 배움 이런 건 없다.

C: 신평사도 물론 글로벌 신평사 방법론을 공부할 때가 있다. 옛날에 금융업종 평가 안 하다 하게 됐을 때 등 신규로 평가해야 하는 분야들이다. 이렇게 맨땅에 헤딩해야 될 땐 방법론 가져다 쓰는데 지금 하던 것들은 다 나름의 지식이 쌓여있고 하기 때문에 별반 차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도 별반 차이가 없다.

A: 글로벌로 봤을 때 소위 크레딧 마켓이 살아있는 나라가 아시아에서 어딨는가. 우리나라 수출과 기업대출이 생각보다 많다. 지금 일본 산업 뭐가 있나. 도요타 하나 남았다. 우리로 치면 삼성전자 급은 아닌 미쓰비시, 가와사키 이런데들은 은행이 빌어서 회사채 10억 찍어주는 거다. 그러다보니 스프레드도 거의 다 똑같이 붙어있다.

한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크레딧 마켓이 굉장히 큰 나라다. 산업에 대해 뎁(Debt) 의존도로 끌고 나가는 나라가 생각보다 없다. 무디스나 S&P가 크레딧 마켓에 있긴 해도 그들이 기본적으로 많이 하는 건 금융 분야(banking sector)와 소버린(sovereign)이다. 기업 인덱스 방법론 적용 등에 대한 실무 활용 능력은 한국이 뛰어나다.

솔직히 무디스는 잘한다. 근데 한신평보다 좋다곤 못 한다. S&P보다는 한국이 훨씬 낫다. 무디스는 같이 놀고 S&P는 나이스에서 먼산 쳐다보듯 무시하는 편. 한기평은 주주긴 하지만 대놓고 무시하고 있다.

C: 우리나라 신평사가 잘 한다. 우리나라 기업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평가사 등급이 글로벌 레이팅보다 정확하다. 물론 필요할 땐 배낀다. 처음하는 건 큰형님이 하는 거 봐가면서 해야 되니까. 기술하는 건 잘하니까. 사실 지금 국내 신평사 능력도 별 문제 없다고 생각한다. 국내 평가사 퀄리티는 예전에 비하면 굉장히 좋아졌다.

A : 무디스나 S&P 제휴한 나라들 보면 방식이나 방법론 적용하는 게 압도적이다. 한국에선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껴서 안 하는 거다.

C: S&P나 무디스 등이 한국에 들어오려면 결국 합작 형태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 지금 평가사 세우려면 요건이 까다롭다. 회계사 몇 명 써야되고. 이걸 걔네가 한국에 들어와서 맨땅에 하기엔 위험부담이 있어 어렵다. 여기서 장사하려면 자기네가 들어와서 우리나라 등급 스케일로 해야 한다. 국제등급 스케일과 다르다. 이거에 대한 부담도 있을 거다.

계속 서로 간에 하려고 하는 건 꾸준했는데 약간 안맞는 부분들이 있어서 못하고 있는 거다. 실제로 기업 팔 때 실사하고 자료 받고 한다. 이걸 S&P가 나이스걸 받고 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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