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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NRDO의 재발견]큐리언트, 개발중심 정체성 고수하는 뚝심⑤파스퇴르연구소에서 스핀오프…아토피·결핵 치료제 개발

조영갑 기자공개 2019-09-23 08:16:48

[편집자주]

개발전문 바이오 벤처인 NRDO가 조명을 받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융성하던 NRDO의 생태계가 국내에도 확산될 전망이다. 신약 개발에만 올인하던 바이오 산업이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뜨고 있는 한국 NRDO 업체를 조망해 한국 바이오 산업의 지형도를 그려 본다.

이 기사는 2019년 09월 17일 08:07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큐리언트임원
남기연 대표(왼쪽)와 최기원 부사장.
스위스 로잔에 본사를 둔 데비오팜(Debiopharm)은 여러모로 독특한 회사다. 모토는 "환자를 위해 개발한다(We develope for patients)"고 돼 있다. 1979년 설립 당시부터 개발(development)중심 바이오팜이라는 점을 천명하고 있다. 500여 명의 임직원이 근무하는 대형 바이오텍으로 성장하고도 이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데비오팜은 내부 임상조직이 갖춰져 있어 초기 R&D부터 초기개발(통상 임상2상까지) 단계까지 진척시켜 기술이전(LO)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현재 디스커버리 단계부터 임상2상까지 15개의 파이프라인을 개발하고 있다. 두경부암 치료제부터 비소세포폐암(NSCLC) 치료제, 급성 세균성 피부 및 연조직 감염치료제(ABSSSI), 골관절감염 치료제 등 개발 프로젝트의 종류도 다양하다. 2018년 기준 2조8969억원 규모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큐리언트는 명실상부한 국내 NRDO 1세대다. 2008년 한국파스퇴르연구소(파스퇴르연)에서 분사한 '스핀오프' 기업이자 NRDO 업태로 상장한 첫 사례다. 노바티스, 머크(Merck), 파스퇴르연 등에서 연구, 개발파트를 두루 경험한 남기연 박사가 대표를 맡고 있다. 남 대표는 "2008년 당시는 NRDO 혹은 버추얼 바이오텍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시기라 투자자들을 설득하는 자체가 어려웠다"면서 "이미 버추얼텍으로 명성을 자랑하던 데비오팜 모델을 많이 참조했다"고 밝혔다.

큐리언트는 데비오팜의 '개발 중심' 철학을 채택하고 있다. 2016년 코스닥에 상장하면서 시가총액이 현재 기준 2000억원 수준으로 성장했지만, 조직을 확장하지 않고 그동안 집중했던 초기 R&D와 개발에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현재 20명 남짓이다. 남 대표는 "자체신약을 출시해 대형 제약사로 성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면서 "빅파마의 방식이 무너지면서 VIPCO(또는 NRDO)가 탄생했는데 우리는 VIPCO의 정체성을 끝까지 유지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NRDO 분야는 자본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를 받고 있다. 자체 신약 물질 후보로 항암제 개발에 나서는 기업이야 말로 진짜 기술력이 있는 기업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NRDO 업태를 띠면서도 자신들은 NRDO가 아니라고 항변하는 회사도 여럿 있다. 하지만 NRDO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40년을 이끌어온 스위스 데비오팜에 대해 기술력이 없다고 폄훼할 사람은 별로 없다. 큐리언트의 NRDO 정체성 고수는 그래서 더 높은 자신감으로 비춰진다.

◇ 한계 부닥친 빅파마 모델 탈피 ‘날렵한' 개발 바이오텍 지향

큐리언트의 대표 파이프라인인 다제내성결핵치료제(텔라세벡 · Q203)는 파스퇴르연에서 도입한 물질이다. LDC에서는 항암제(Q702), 선택적 CDK7 저해제 등을 도입해 개발하고 있다. 유망한 물질을 도입해 빠르게 개발하는 데서 성패가 좌우되는 NRDO 입장에서 초기 ‘사이언스'가 탄탄하면 그만큼 개발의 리스크도 줄어드는 셈이다. 남 대표는 "세계적인 연구기관에서 스핀오프 했다는 것은 그만큼 초기 사이언스가 견고(solid)하다는 의미"라면서 "버추얼텍 입장에서 시행착오를 줄이고 우수한 물질을 도입할 수 있는 배경"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큐리언트가 개발하고 있는 파이프라인은 총 5가지다. 개발 진도가 가장 앞서 있는 프로젝트는 아토피성 피부염 치료제(Q301)와 다제내성 결핵치료제(Q203)이다. 두 파이프라인 모두 현재 미국 임상2상을 진행 중이다. Q301의 경우 큐리언트 자체 발굴 신약으로, 아토피의 주요 원인 물질 중 하나인 류코트리엔의 생성을 저해하는 물질이다. 유사 기전이 없다는 점에서 혁신신약(first-in-class)계열이다. 24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2b상을 진행 중이다. 경쟁 약물 대비 염증완화 효과와 더불어 가려움증 해결에 뛰어나며, 이미 천식치료제로 출시된 원료의약품(질루톤)을 사용해 적은 비용으로 생산이 가능하다.

다제내성 결핵치료제인 Q203(텔라세벡) 역시 새로운 기전의 혁신신약이다. 파스퇴르연에서 도입한 신약 후보물질이다. 결핵균의 에너지 대사에 관여하는 ‘시토크롬 bc1' 복합체를 막아 결핵균의 성장을 억제하는 기전이다. 얀센의 ‘서튜러'(2012)와 오츠카의 ‘델타비'(2014)가 출시됐지만 결핵 치료제 특유의 독성을 해결하지 못한 반면 텔라세벡은 결핵균에만 작용해 부작용을 최소화했고, 잠복결핵균 사멸화가 매우 높다. 현재 미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2a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텔라세벡의 경우 미국 FDA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돼 우선심사권(PRV)도 부여받았다. 임상을 거쳐 품목허가를 받으면 개발사가 우선심사권을 사용할 수 있다. 해당 신약 외에 타 의약품 허가기간을 6개월로 단축할 수 있다. 획득한 PRV로 다른 회사와 거래도 할 수 있다. 2007년 희귀질환에 대한 신약개발을 독려하기 위해 FDA가 만든 특전의 일종이다. 남 대표는 "2009년 개발에 착수해 10년 걸렸다. 이제는 파이프라인이 익어 결실을 거둘 때"라고 말했다.

큐리언트PIP
큐리언트는 현재 아토피 치료제와 다제내성결핵 치료제 2종의 글로벌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 각 단계 실무진에 최대한 권한 주는 수평적 의사결정 구조

큐리언트의 조직문화는 수평적이라고 평가 받는다. 그 중심에 이른바 QPMS(Qurient Project management System)가 있다. 큐리언트 내부 IT팀에서 회사의 사정에 맞춰 개발한 시스템으로, 프로젝트 매니징의 모든 데이터를 공유하고, 의사결정을 전 레벨에서 이뤄지게 했다. 대표나 임원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각 실무단계에서 빠르게 결정을 내린다. 글로벌 임상 2상을 2종 보유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꼽힌다.

여기에는 빅파마의 운영원리와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바이오텍의 논리는 달라야 한다는 남 대표의 의지가 반영됐다. 큐리언트는 ‘empowerment(위임)'을 내부 강령으로 한다. 남 대표는 "바이오텍이 빅파마보다 나은 것은 실무선에서 빠르게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런 토대만 만들어지면 스스로 프로젝트에 대한 애착이 생긴다"면서 "기초연구, 개발, 시판 등 모든 것을 인하우스에서 하던 빅파마 모델이 이제는 무너졌다. 우리는 버추얼텍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지분구성도 매우 다양하다. 각 이해관계자들이 균형을 이루면서 회사의 개발을 지지하고 있다. 쿼드자산운용 12%, 파스퇴르연 10%, 알펜루트자산운용 6%, 더블유자산운용 5%, 국민연금 3%, 남기연 2%, 경기도청 1% 등 비영리 집단도 다수 들어와 있다. 남 대표는 "그동안 개발 스케줄에 맞춰 파이프라인을 실질적으로 진척시켰다는 게 주주들에게도 신뢰감을 줬고, 상장까지 이어진 원동력이었다"면서 "앞으로는 각각의 파이프라인에 결부된 리스크를 적절히 관리하면서 실질적인 수익을 내는 데 집중하려 한다"고 밝혔다.

핵심인력은 남기연 대표를 비롯해 최기원 부사장(CFO, COO), 김재승 연구소장 등이다. 남 대표는 고려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Rutgers Medical School 전산화학 박사, 뉴욕대 MBA 등에서 수학한 후 노바티스, 머크 연구원 및 프로젝트 매니저를 역임했다. 최 부사장은 고려대 유전공학과를 졸업하고 CJ헬스케어 제약사업부 사업개발팀, 해외사업팀을 거쳐 사업전략팀장으로 일했다. 지난해 큐리언트에 합류했다.

큐리언트는 글로벌 네트워크에도 강점을 갖고 있다. 모기업인 파스퇴르연구소를 통해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와도 제휴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파스퇴르연은 과기부의 지원으로 2004년 파리 파스퇴르연구소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협력으로 설립된 비영리 종합연구기관이다. 중개연구를 통해 후보물질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바이오텍을 지원하고 있다. 막스플랑크는 1911년 설립된 독일 비영리 연구기관이다. 노벨상 수상자만 32명 배출했다. 큐리언트는 막스플랑크 산하 초기발굴센터인 LDC 측과 10년 이상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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