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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부회장이 끊어낸 삼성의 자동차 악연 삼성자동차 진출 이후 빅딜로 타격…현대차와 전기차 협업으로 보쉬 모델 모색

윤필호 기자공개 2020-05-18 08:07:30

이 기사는 2020년 05월 15일 06:01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에게 자동차는 아픈 기억이다. 과거 완성차 사업 진출을 추진했지만 시기와 환경이 맞지 않았다. 빅딜 과정에서 큰 상처도 입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만남은 삼성에겐 자동차 악연을 끊는 피날레 장면이다. 더이상 완성차 시장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시그널을 확고히 했다. 전기차 배터리를 비롯해 자동차 부품으로 완성차에 버금가는 기업가치를 만든 보쉬 모델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지난 13일 이재용 부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의 만남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차세대 배터리를 통해 현대차의 전기차에 기여하겠다는 것 정도가 알려진 상황이다.

삼성은 전기차 배터리(삼성SDI)를 비롯해 전장부품과 각종 센서, 자동차용 반도체 등 다양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엔진 대신 모터가 투입되는 전기차엔 더 많은 부품을 공급할 수 있다. 5세대(5G) 기반의 자율주행차엔 각종 네트워크 장비와 기술을 접목할 수 있다. 삼성은 자동차 산업의 핵심 플레이어로 부각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맞이했다.

◇삼성의 아픈 손가락 '완성차'

이건희 회장의 자동차 사랑은 유명했다. 이 회장은 1987년 회장 취임 이후 자동차 사업에 진출을 꾸준히 타진했다. 1995년 출범한 삼성자동차는 그 결과물이다.

삼성자동차는 일본의 닛산과 기술제휴 계약을 맺어 부족했던 제조 기술력을 확보했다. 자본금 1000억원을 투입해 부산 신호 공단에 자동차 공장을 세웠고 삼성물산 등 계열사를 동원해 판매와 서비스 업무도 분담했다. 1998년 SM5를 처음으로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2010년까지 연간 150만대 생산 업체로 성장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원대한 계획은 실패로 끝났다. 1998년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터지면서 공식 판매를 시작한지 1년만에 삼성자동차는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결국 1999년 6월 법정 관리를 신청했다. 이듬해 삼성자동차는 닛산자동차의 지분을 가지고 있던 프랑스 자동차 기업 르노가 인수했다.

삼성은 완성차 진출에 실패한 이후 다시는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 회장의 관심과 애정을 근거로 재진출설을 꾸준히 제기했다. 이 같은 의혹은 2012년 이 부회장아 피아트크라이슬러그룹(FCA) 지주사 엑소르(Exor) 사외이사를 맡으면서 더욱 증폭됐다. 같은해 삼성SDI는 독일 보쉬(Bosch)와 합작 설립한 배터리 제조사 SB리모티브 지분의 전량 인수로 독자적 행보에 나서면서 자동차 산업에서의 영향력 확대 기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자동차 산업 재진출설은 완전히 틀린 추측은 아니었다. 삼성은 3년이 지난 2015년 12월 자동차 전장사업팀을 신설하며 새로운 미래먹거리로 내세웠다. 2017년에는 9조2727억원의 자금을 투입해 세계 최대 전장기업 하만(HARMAN)을 인수하면서 대형 빅딜에 성공했다. 자동차 산업에서 전장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늘어가는 상황에서 삼성은 하만의 인수로 단숨에 주도적 지위로 뛰어올랐다. 삼성전자는 하만 인수 후 통합(PMI) 과정을 진행하며 소속 법인을 대거 정리해 효율화를 꾀했다. 지난해 하만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14%, 99% 늘어난 10조711억원, 3223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순이익은 153% 증가한 1045억원으로 집계됐다.


◇車산업 변화 준비…삼성전자 역할 부각

최근 자동차 산업군에서는 두 가지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동력원의 교체다. 기존 내연기관이 전기차나 수소차의 등장으로 배터리 등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EU)의 내연기관 퇴출 정책으로 동력원 전환을 유도하고 있다. 다른 변화는 정보통신기술(ICT)과의 융합이다. 커넥티드, 자율주행 등 미래형 자동차가 도래하면서 전장 부품의 기술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새로워진 자동차 환경에 맞는 핵심 기술을 하나둘 확보해 왔다. 삼성전자는 차량용 반도체 '엑시노스 오토'를 만들어 주요 메이커에 공급하고 있다. 삼성SDI는 전기차 배터리인 리튬이온 2차전지를 제조하고 있다. 2017년 하만 인수에 이어 이듬해 4대 신성장 사업 가운데 하나로 전장부품을 꼽았다.

삼성전자는 자동차 업계가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완성차 사업에 진출하지 않고도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구상을 실현해 왔다.

올초에는 미국에서 개최했던 CES(소비자가전쇼) 2020에서 미래 모빌리티 사업 강화를 예고했다. 하만과 공동으로 개발한 세계 첫 5G(5세대) 차량용 통신장비(TCU) 전시를 비롯해 다양한 커넥티드 카 서비스를 공개했다. 삼성전기의 카메라 모듈 기술이나 전장용 적층세라믹캐패시터(MLCC) 삼성디스플레이의 차량용 디스플레이 등도 전장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이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의 회동은 그간의 삼성전자의 변화가 만들어낸 결과다.

이 자리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최근 삼성전자가 발표한 혁신기술인 '전고체 배터리'가 화두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정 수석부회장은 황성우 삼성종합기술원 사장으로부터 전고체 배터리 기술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다. 양극과 음극 사이에 있는 전해질을 액체에서 고체로 대체해 열과 외부 충격에 대한 저항성을 높여 화재와 같은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는 혁신적 배터리다. 1회 충전으로 주행 가능한 거리가 800㎞에 달하고 안정성과 에너지 효율성이 높아 기존의 리튬이온 배터리를 대체할 것으로 기대가 높다.

삼성 입장에서 현대차를 사업 파트너로 관계를 구축하면 향후 확장하는 전장 사업에서 든든한 지원군을 얻는 셈이다. 삼성은 전기차 시장에서 핵심 부품을 판매·생산하고 있다. 현재 삼성의 현대차를 통한 매출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향후 신규 고객사로 확보할 여지가 높아졌다.

현대차를 토대로 다른 대형 자동차 메이커에 주요 부품을 공급하는 것도 가능하다. 독일의 자동차 부품회사 보쉬는 특정 자동차 메이커에 소속돼 있지 않으면서 글로벌 메이저 자동차 메이커에 부품을 공급한다. 웬만한 자동차 메이커에 비해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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