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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재벌시스템]삼성의 CEO 육성…오너를 대신할수 있을까③2005년부터 차기 중역 양성 SLP과정 운영…중장기 과제 수행 시스템 구축 숙제

김은 기자공개 2020-06-24 07:05:27

[편집자주]

세계 최대 농업·식품회사인 카길은 비상장이고 가족지배 기업이지만 현재 가족이 경영하지 않는다. 세계적 플랫폼 기업 구글도 창업자들이 1선에서 모두 퇴진, 인도 출신 순다르 피차이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소유·경영의 분리 사례다. 자본시장의 역사가 짧은 한국 기업은 태생적으로 소유·경영의 융합모델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고도 성장과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너경영 3·4세 시대에 접어들며 변화를 요구받는다. 국내 대표 기업 삼성이 그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 지배구조 뿐 아니라 이사회·내부통제·조직구성에 까지 영향을 줄 사안이다. '포스트 이재용 선언'은 곧 '포스트 재벌시스템'이다. 이재용 선언 이후의 재벌시스템, 나아가 4차산업혁명 이후의 재벌시스템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6월 19일 07:23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미국 GE는 교과서적인 경영권 승계 프로그램으로 잘 알려져 있다. GE는 토머스 에디슨이 1878년 세운 전기 조명 회사가 모체로 지금은 전력 항공 금융 헬스케어 등 다방면으로 사업을 확장한 '재벌' 중 하나다.

GE는 오너가 없다. 대부분 지분이 분산돼 있고 60% 이상의 지분은 펀드들이 보유하고 있다. '재벌'이지만 오너없이 전문 경영인 체제로 100년 넘게 변신을 거듭했다.

GE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CEO는 잭 웰치다. 중성자 잭이라 불리던 그는 혹독한 구조조정으로 GE의 가치를 4000% 올린 전설적인 경영자로 불린다. 하지만 잭 웰치 후임으로 선발된 제프리 이멜트는 실패한 경영자로 손꼽히고 있다. 이멜트 재임 기간 동안 다우지수는 1만대 초반에서 2만5000까지 상승했지만 GE 주가는 27% 하락했다.(김화진 교수 책 '소유와 경영' 발췌)

GE의 사례를 언급하는 것은 삼성의 포스트재벌 시스템을 고민할 때 가장 중요한 문제가 경영권 승계이기 때문이다. 오너 체제를 대신해 삼성의 주요 의사 결정을 할 주체는 이사회와 이를 이끄는 CEO들이다.

삼성은 지금도 혹독한 테스트를 거쳐 CEO를 선발한다. 다만 전문 경영인들의 결정을 최종 재가하는 것은 오너의 몫으로 남겨두고 있다. 포스트 재벌 시스템 하에서 삼성은 이같은 최종 의사 결정까지 전문 경영인이 담당해야 한다. 이들에 대한 교육과 승계 프로그램은 더욱 중요해진다. 전문 경영인이 단기 성과에 머무르지 않고 중장기적인 성과를 추구할 수 있는 성과시스템과 보상 체계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1~2%만 참여…비밀에 쌓인 SLP 과정

삼성의 임원은 '별'이라 불린다. 직원 100명 당 1명 정도가 임원이 된다. 삼성전자의 전체 임직원수는 10만명이 조금 넘는데 임원 수는 1000명 수준이다. 이중 'C '레벨에 오르는 인물은 또 1%~2%의 확률이다. 직원으로 입사해 C레벨 임원에 오르는 확률은 1만분의 1 확률이다. 여기서 CEO까지 오르는 것은 단 1~2명에 불과하다.

삼성의 CEO 육성 프로그램은 SLP 과정이라 불린다. SLP(Samsung Leadership Program) 최고경영자 양성과정은 1만분의 1 확률을 거친 임원들에게 주어지는 자리다. 단 4주간에 걸쳐 진행되는 코스지만 들어가는 확률도,이를 통과하는 확률도 희박하다.

SLP과정은 경영전략, 리더십, 글로벌역량 등 차세대 대표이사에게 요구되는 종합 경영역량을 배양할 수 있도록 기본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SLP 프로그램은 2005년 처음으로 신설됐다. 역량이 뛰어난 상무보 이상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으로 향후 보다 큰 조직을 이끌 수 있는 소양을 미리 키워주는 것이 신설 목적이다.

삼성은 과거 고위 임원을 위한 교육과정을 운영했으나 외환 위기 이후 폐지했다. 2004년 SLP 커리큘럼을 만들고 이듬해부터 이를 본격 가동했다.

도입 초창기의 경우 전 계열사에 걸쳐 1000명이 넘는 임원들 중 상위 1~2%이내에 해당하는 소수 인원에 기회가 주어졌다. 이후 계층별 교육이 분화되고 프로그램이 매년 변경 및 강화되면서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으로 자리를 잡았다. 매년 한자릿수 임원이 SLP 과정을 거친다. 지난해에는 7명의 후보군들이 SLP 과정을 거쳤다.

SLP과정에 대해선 구체적인 내용이 외부에 노출된 것은 없다. 테스트 과정이 혹독하다는 것 정도만 알려져 있다. 현재 삼성을 이끄는 CEO들은 모두 SLP과정을 거쳤다.

이재용 부회장 이후 포스트 오너 체제 하에선 SLP 과정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CEO의 역할이 전문 경영인 수준을 넘어서 오너의 책임까지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사회 권한 강화…독립적 경영확립

삼성 이재용 부회장은 오너 승계를 더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삼성은 전문 경영인 중심의 이사회가 최고 의사결정 기구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미 삼성은 미래전략실을 해체하면서 이사회의 역할과 권한을 강화해왔다.

현재 삼성전자는 이사회 산하에 경영위원회, 내부거래위원회, 보상위원회, 거버넌스위원회, 감사위원회,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등 6개 위원회를 마련했다. 주요 위원회별로 삼성의 주요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구조다. 이자리에서 핵심역할을 하는 인사들은 SLP 과정을 거친 최고 임원 후보들이다.

특히 경영위원회는 중·장기 경영전략을 비롯해 사업계획 및 사업구조조정, 주요 자산취득 처분, 재무에 관한 주요사항 등 삼성전자의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모두 의결하고 있다. 실제 메모리반도체 투자 건, 해외법인 설립 및 청산의 건 등 주요 굵직한 경영현안에 대해 최종 결정을 한다.


삼성전자는 2018년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분리했다. 이어 올해 주주총회에서는 처음으로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상으로 선임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사회의 독립성과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이사회 중심의 책임경영에 더욱 속도를 내기 위한 삼성전자의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향후 중요도가 더 높아질 곳은 거버넌스와 보상위원회다. 각 계열사에 특화되어있는 전문경영인이 삼성 전체를 아우르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사실상 힘든 실정이다. 미국의 전장 전문기업 하만 사례와 같은 대규모 인수합병(M&A)이나 천문학적인 손실이 따르는 갤럭시노트7의 단종 등의 결정을 내리기에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포스트 재벌 시스템에선 이사회와 전문경영인이 이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이들이 단기 성과에만 집중할 경우 자칫 GE 이멜트 체제 같은 우를 범할 수 있다. CEO와 이사회가 단기 성과에 머물지 않고 중장기 성과를 목표로 하려면 그에 걸맞는 보상와 중장기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거버넌스 위원회와 보상 위원회가 시스템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한 과제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주요 계열사들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유지하고 있지만, 갈수록 어려워지는 글로벌 경영환경 속에서 그룹 전반에 걸친 핵심 사안을 결정하는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며 "이를 새롭게 재정립하는 것디 포스트재벌 시스템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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