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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재벌시스템]롯데 지배구조 선진화, 정당성 vs 폐쇄성 '딜레마'②신동빈 원톱 구축 차원…분쟁 야기 日 주주구성, 투명성 확보 한계

최은진 기자공개 2020-07-14 07:45:05

[편집자주]

세계 최대 농업·식품회사인 카길은 비상장이고 가족지배 기업이지만 현재 가족이 경영하지 않는다. 세계적 플랫폼 기업 구글도 창업자들이 1선에서 모두 퇴진, 인도 출신 순다르 피차이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소유·경영의 분리 사례다. 자본시장의 역사가 짧은 한국 기업은 태생적으로 소유·경영의 융합모델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고도 성장과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너경영 3·4세 시대에 접어들며 변화를 요구받는다. 국내 대표 기업 삼성이 그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 지배구조 뿐 아니라 이사회·내부통제·조직구성에 까지 영향을 줄 사안이다. '포스트 이재용 선언'은 곧 '포스트 재벌시스템'이다. 이재용 선언 이후의 재벌시스템, 나아가 4차산업혁명 이후의 재벌시스템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7월 08일 15:21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신동주는 일본어만 할 줄 알고 신동빈은 어눌하지만 한국어를 꽤 잘한다"

우스갯거리로나 삼을 이 얘기가 2015년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의 승패를 갈랐다. 누가 더 한국정서에 맞느냐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면서 진지하게 논의됐다.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느냐가 대그룹 수장으로서의 '자격'처럼 여겨지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압승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첫 국내언론 인터뷰에서 일본어만 구사했던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은 부친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참패했다.
경영권 분쟁 당시 신동주(좌)-신동빈(우) 인터뷰 장면
인간의 합리성에 기댄 경제학 논리로 볼 때 기업총수가 구사하는 언어나 국적을 문제 삼았다는 점은 꽤 부당하고도 부적절해 보인다. 롯데그룹의 국적논란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왜 하필 그 때 언어가 문제됐을까'라는 의문도 남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롯데그룹에 국민정서를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고 그게 합리성에 기댄 선택이 아닌 감정에 의한 불편함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그 불편한 국민감정은 은둔의 경영자로서 일반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도 됐던 창업주 고 신격호 명예회장의 시절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재계 분위기가 급변한 오늘날엔 그룹 전반을 흔드는 중대한 리스크가 됐다.

신동빈 회장이 분쟁 당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순환출자 해소, 지배구조 개편, 계열사 상장, 지주사 전환 등을 약속한 것도 롯데그룹에 대한 불편한 정서를 잠재우겠다는 전략이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또박또박 한국어로 투명한 경영시스템을 논하는 그에게 경영자로서의 지지가 이어졌다. 신동주 회장과 얼마 차이나지 않는 지분율에도 불구하고 신동빈 회장이 압승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다.

◇분쟁 통해 승계, 기업 '투명화'로 정당성 확보…지배구조 개편 속도

신동빈 회장이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한 것은 폐쇄성 및 비밀주의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과 다름없다. 반 강제적으로 그룹을 승계한 태생적 한계를 정당성으로 이겨내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그래서 신동빈 회장은 필연적으로 투명성을 과업으로 안고 있다. 형제분쟁이 종식되자마자 발빠르게 지주사 전환을 단행하고 지배구조 개편 및 주주친화정책을 발표한 것도 이의 일환이다.

롯데그룹이 지주사 전환한 후 밝힌 지배구조 투명화 및 경영효율화 방안

실제로 롯데그룹은 형제분쟁 이전과 이후가 확 달라졌다. 여전히 과거 불투명한 지배구조의 한계 속에서 미스터리로 남는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상당부분 해소하는 데 힘을 쏟았다.

롯데지주를 중심으로 계열사를 수직화 시켰고 일본 롯데그룹과의 지분관계도 하나 둘 정리하고 있다. 주주친화정책의 일환으로 40여년간 황제주로 무거운 몸값을 지켰던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음료 주식을 액면분할 했고 애널리스트 및 기관투자가들을 불러 기업설명회(IR)도 정기적으로 열었다.

투명경영을 위해 신동빈 회장 직속의 준법경영위원회를 설치했고 황제식 경영을 뒷받침 했던 컨트롤타워 역할의 정책본부 권한도 대폭 줄였다. 호텔롯데 외 코리아세븐, 롯데정보통신, 롯데리아 등의 상장도 검토했다.


지배구조 개편의 마지막 퍼즐인 호텔롯데 상장이 아직 과제로 남아있지만 420여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가진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떠올리면 불과 3년여만에 환골탈태 수준의 혁신을 이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아직 신동빈 회장 중심의 의사결정 시스템이 그룹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지만 이 역시도 시대적 요구에 따라 서서히 변화를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동빈 회장이 박근혜 정권과의 유착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데 따른 결과로 일부 계열사의 사내이사직을 내려놓으면서 비자발적으로나마 계열사의 독립성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분쟁 계속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 소유-경영 분리 어려운 배경

롯데그룹이 지배구조 선진화를 이루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선진화가 본질적으로 경영의 선진화로 이어질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로 남는다.

신동빈 회장이 현재 처해있는 상황이나 롯데그룹이 가지고 있는 폐쇄적 가문경영의 속성이 맞물리면서 지배구조 개편이 또 다른 1인 경영의 기반을 마련하는 작업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신동빈 회장은 아직도 신동주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그룹 지배구조를 신동빈 회장 중심으로 재설계하는 전략이 수반돼야 하는 이유다. 한국과 일본의 롯데그룹이 여전히 지분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일본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상 정점에 있는 광윤사나 실질적 일본 롯데그룹의 경영주체인 롯데홀딩스의 종업원 지주회라는 주주의 존재는 큰 불확실성으로 남는다. 이는 신동빈 회장이 쉽게 끊기 어려운 지점이기도 하다.

오늘날 포스트 재벌시스템으로 소유와 경영의 단절까지도 논의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분쟁의 위협을 끊을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가 남아있는 한 1인 경영 체제를 버리기 어려울 수 있다는 평가다. 구조적으로 1세대 시절보다도 더 강력한 폐쇄성이 마련될 여지가 있다.

현대경영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이런 말을 남겼다. "가족이 회사를 우선할 때 회사와 가족 모두 성공한다. 회사가 가족을 위해 경영될 때 회사와 가족 모두 실패한다" 같은 경영작업이라도 어디에 주안점을 두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신동빈 회장이 추진하고 있는 지배구조 개편의 목적이 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는 사실이 기저에 깔려있는 한 지배구조 선진화 작업의 본질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 오히려 새로운 '신동빈 가문'이라는 폐쇄성을 낳는 아이러니로 이어질 수 있는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선진화 작업이 신동빈 회장의 확실한 1인 체제를 구축하는 게 근본적인 이유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포스트 재벌 시스템과는 거리가 멀다"며 "분쟁위협이 계속되는 한 신동빈 회장 중심의 폐쇄성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지배구조 개편이 활용되는 여지가 있고 이는 또 다른 과거를 만드는 일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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