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1년 05월 11일 07:5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아무리 좋은 칼이라도 범죄에 쓰면 나쁜 칼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데 쓰면 좋은 칼이 되는 것이죠. 기초는 잡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고용노동부에서 퇴직연금 정책을 총괄하던 과장급 공무원이 최근 다른 행정부처로 파견 명령을 받았다. 그는 2019년 2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2년 넘는 기간동안 디폴트옵션 제도와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등을 도입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의 손을 거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퇴직연금법) 개정안은 이번 21대 국회 문턱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개정안의 핵심은 디폴트옵션 제도의 도입이다. 퇴직연금 가입자가 사전에 운용 방식을 지정해 놓으면 그에 맞춰 퇴직연금이 운용된다. 따로 운용 방식을 지시해 놓지 않아도 된다. 지난해 말 255조원 퇴직연금 적립금의 평균 수익률은 연 2.6% 수준. 가입자들의 무관심이 낮은 수익률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다양한 금융상품이 디폴트로 깔리면서 수익률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디폴트옵션 제도 도입을 두고 가입자와 사업자 사이 이견이 팽팽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투자업계가 디폴트옵션 제도 도입을 촉구하면 고용부는 원금 손실이 일어나면 어떻게 책임지겠느냐 따지는 식이다. 이 공무원의 성과 중 하나가 그 의견 차를 메운 것이다. "그의 숨은 노력 없이는 개정안은 없었을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했다.
그는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디폴트옵션 제도 도입이 (본인에게 남은) 마지막 숙제였는데 잘 합의가 이뤄진 상태에서 떠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초적인 제도를 마련한 것일 뿐 앞으로 어떻게 이행할지가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디폴트옵션 제도 도입이 가입자들의 투자 인식을 단숨에 개선하진 못할 것이다. 수익률에 따라 투자자들의 인식이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할 뿐이다.
이렇게 보면 현재 디폴트옵션 구성상품에 원리금보장상품을 넣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뚜렷해진다. 은행과 보험업권은 가입자 선택권 보장 차원에서 원리금보장상품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디폴트옵션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투자상품을 소개하고 가입자 인식을 전환시켜 수익률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
우리은행은 개인형 퇴직연금(IRP) 계좌에서 ETF 거래를 할 수 있도록 실시간 거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삼성증권은 확정기여(DC)형 운용상품 선택에 제한이 없도록 시스템 업그레이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공무원은 "향후 10년 간 퇴직연금 시장 기틀을 잡았다"고 말했다. 성장의 토대가 마련된 만큼 퇴직연금 시장 플레이어들의 질적 성장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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