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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기고 싶어도 '맡길수 없는' 퇴직연금 [thebell note]

김진현 기자공개 2021-12-15 07:26:58

이 기사는 2021년 12월 13일 07:38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퇴직연금 가입자 상당수는 단 한번도 포트폴리오를 교체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다고 한다. 당장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니까 별 신경을 안 쓰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퇴직연금 관리를 어떻게 할지 몰라 안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연금 관리도 일종의 투자행위이기 때문에 꾸준한 정보수집과 공부는 필수다. 직장생활, 여가활동 등을 하면서 연금관리를 위한 투자공부까지 하기엔 버거울 수 있다. 그래서 때때로 누군가 내 연금을 대신 관리해줬으면 하곤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법적으론 퇴직연금은 남에게 맡기고 싶어도 맡길 수 없는 돈이다. 투자일임 계약을 맺고 퇴직연금 운용을 맡기는 게 불법이기 때문이다.

최근 개정된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에서도 투자일임계약 도입 내용은 없었다. 일부 의원 발의안에는 포함돼 있었지만 최종안에선 사라졌다.

투자일임계약 도입 반대 의견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금융회사는 수익성에만 몰두하기 때문에 원금 손실이 발생해도 수수료만 챙기면 그만이고 성실한 자산운용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거다.

기대 수익률이 높더라도 원금손실 위험이 큰 투자일임 계약을 허용하면 안된다는 논리에 또 한번 발목이 잡혔다. 사적연금의 또 하나의 축인 개인연금은 투자일임계약 체결이 가능하다는 점에 비춰볼 때 이중잣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연금은 맞고 퇴직연금은 틀리다. 두 연금 모두 공적연금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부분을 메워주기 위한 노후자산축적 목적이라는 점에선 같지만 다른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회사가 퇴직연금을 관리해주는 DB형 가입자가 압도적이었다면 점차 DC형으로 전환해 직접 연금관리를 하는 개인이 늘고 있다. 여윳돈을 적극적으로 운용해 높은 운용 성과를 쌓으려 한다.

전문가들은 퇴직연금 수익률을 좌우하는 핵심은 운용기간 동안의 지속적인 관심과 리밸런싱이라고 입을 모은다. 개인이 직접 공부해 시장 변화에 잘 대처해가며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퇴직연금을 잘 관리한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도 있고 남에게 맡기고자 하는 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단순히 금융회사들의 탐욕이 걱정돼 일임을 반대하는 거라면 저렴한 비용으로 연금관리를 도와주는 로보어드바이저와 같은 대안도 있다. 이미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금융 선진국에서는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한 퇴직연금 일임 관리가 보편화해 있다.

투자일임 계약을 맺는 일은 선택 사항이기 때문에 이를 허용한다고 하더라도 전체 근로자의 퇴직연금에 피해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남에게 맡기길 원하는 이들조차 남에게 맡기지 못하는 역설을 해결해주는 일이 디폴트옵션 제도를 도입한 것만큼 필요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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