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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규 회장의 '한수' [thebell note]

신준혁 기자공개 2022-05-11 08:37:35

이 기사는 2022년 05월 10일 07:51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정몽규 HDC 회장이 지난 3일 기자회견을 하루 앞두고 최고경영진을 불러모았다. 한밤중에 머리를 맞대고 사고대책과 회견문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진다.

HDC는 4일 10시 회견을 2시간여 앞두고 취재협조문을 보냈다. 안전을 총괄하기 위해 영입한 정익희 최고안전책임자(CSO) 부사장이 출장을 이유로 불참했다는 점을 미뤄보면 무언가 급하게 돌아가고 있는 분위기가 엿보였다. 임직원들도 급하게 결정된 회견을 준비하기 위해 새벽 일찍 출근했다는 후문이다.

정 회장은 859자의 짧은 회견문을 낭독했다.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8개동을 모두 부수고 새로 짓기로 했다. 한해 번 돈의 절반인 2000억원을 더 쓰고 6년에 가까운 시간을 더 들여야 한다. 오직 회장만이 내릴 수 있는 과감한 결정이다.

정 회장은 '적당한 날'을 고르기 위해 고심한 듯 보인다. 이날은 5일 어린이날과 샌드위치데이 연휴를 앞두고 있어 대중의 이목이 덜 집중됐다. 반대로 9일과 10일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몰릴터라 주목도가 지나치게 떨어진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4월 29일 사고현장을 방문해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면 기업은 망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은 점도 정 회장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13일 희생자가족협의회가 상경집회를 열면 새정부 출범 직후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된다.

복잡한 계산을 마친 후 정 회장은 '전면 철거 후 재시공' 회견일자를 4일로 잡았다. 더 미룰 수도 더 앞당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의 심경은 회견문 초미에 잘 드러난다. "사고가 일어난지 4개월째…체감할만한 모습을 보이지 못해 죄송하다."

물론 이번 결정은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입주 예정자들은 사고대책을 듣지 못한채 4개월을 흘려보냈다. 그사이 정 회장과 그의 개인회사는 HDC 자사주를 늘려 거센 질타를 받았다. 경영방어 차원이었다지만 사고 희생자의 장례식이 엄수되기도 전이라 비난의 화살을 피하긴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선 이번 결정을 '안전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대응이라고 평가한다. HDC 경영진은 변명이나 회피 없이 자신들이 지은 건물을 직접 부수고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선언했다.

HDC의 사례는 타이레놀 제조사 존슨앤드존슨(J&J)과 결이 닮아 있다. J&J는 1982년 미국 전역을 공포로 몰아간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 직후 용의자를 잡기 위해 현상금을 내걸었고 피해자들에겐 위로 편지를 보냈다. 이미 판매된 타이레놀이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언론에 알렸고 유통 중인 3100만병을 전량 회수했다.

당장 큰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과감한 결정을 내린다면 멀리 볼 때 훨씬 바람직한 결과를 내지 않을까. 타이레놀이 몇달만에 원래의 시장점유율을 회복한 것은 역사의 한 페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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