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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desk]KT&G가 쏘아올린 '릴 하이브리드'

길진홍 산업3부장 공개 2023-03-09 08:26:13

이 기사는 2023년 03월 03일 07:5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14년은 수세기 역사를 가진 연초 담배 역사의 한획을 그은 해로 꼽힌다. 글로벌 담배시장에서 절대강자로 군림해온 필립모리스가 더는 연초를 생산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담배를 생산하지 않겠다는 담배회사의 선언은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그럼에도 필립모리스의 행보는 당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엄밀히 말하면 흡연가들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 말보로가 없어진다고 해도 세상에는 이를 대신할 연초가 넘쳤다.

필립모리스는 그해 차세대 궐련형 전자담배(HNB)를 선보인다. 수십년간 연구 끝에 담배 스틱을 태우지 않고 가열하는 전자담배기기를 상용화했다. 천문학적인 자금을 들여 무연기술 특허를 획득하고 전자 증기 등 각종 판매 계약을 따냈다.

이렇게 탄생한 '아이코스'는 2014년 말 일본과 이탈리아에 첫 상륙한다. 국내에는 2017년 들어왔으며 이후 40여개국으로 확대됐다. 시장성이 증명되기까지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첫 출시 후 해마다 판매가 급증하면서 연초 담배시장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필립모리스가 글로벌 담배시장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시작한 베팅이 적중한 셈이다.

뒤늦게 경쟁사들이 뛰어들었으나 필립모리스가 깔아둔 이중삼중의 특허권으로 틈새를 파고들기 쉽지 않았다. 일본기업이 선보인 아이코스 전용 디바이스인 '죠즈(Jouz)'의 경우 특허권에 걸려 판매가 금지되기도 했다. 경쟁사인 BAT도 가열식 전자담배를 내놨으나 따라잡기는 역부족이었다.

당장 차세대 담배시장에서 필립모리스의 아성을 깨뜨릴 자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콧대 높은 필립모리스의 최고경영진이 2019년께 직접 한국을 찾아 KT&G를 붙잡고 협업을 제안한다. 선제적으로 확보한 궐련형 전자담배의 특허를 풀어줄테니 디바이스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했다.

필립모리스의 해외 유통망을 이용한 공동판매도 제안해 왔다. 필립모리스가 글로벌시장에서 브랜드가 열위한 로컬기업을 직접 찾아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연초 담배의 종말을 고하고 아이코스를 출시한 필립모리스의 당초 계산에도 없던 일이었다.

판을 깨뜨린 것은 KT&G가 만든 디바이스 '릴 하이브리드'다. 2018년 출시된 릴 하이브리드는 기존 궐련형 전자담배 스틱에 액상을 추가해 연무감을 늘렸다. 풍부한 연무감과 아이코스 특유의 찐맛을 없앤 장점으로 인기를 누렸다. 국내에서 어느 순간 아이코스와 판매실적이 역전됐다. 스틱과 액상을 결합한 구조에 특허권이 설정돼 경쟁사의 진입도 쉽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체결된 게 KT&G와 필립모리스간 글로벌 컬래버레이션이다. 이제는 해외에서 필립모리스 유통망을 통해 '릴 인트로듀스 바이 아이코스'가 표기된 KT&G의 제품을 만날 수 있다. 2020년 3년간 협업키로 첫 계약을 맺었으며 올 1월 말 15년으로 기간이 연장됐다.

이번 협약식에는 '야첵 올자크' 필립모리스 최고경영자가 한국을 찾았다. KT&G는 향후 15년간 디바이스와 스틱의 연평균 매출 증가율이 20%를 넘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부에서 해외 독자 판매를 해야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는 현실을 모르고 하는 얘기다. 일본의 경우 전자담배시장에서 아이코스의 점유율이 무려 80%에 달한다.

릴 하이브리드 돌풍은 사실상 기적과 다름없다. KT&G가 전자담배사업을 시작한 2016년 실무부서에 5명 안팎의 직원들이 전부였다. 우여곡절 끝에 디바이스를 만들었으나 별도의 스틱 생산설비를 들여오는 데만 수년이 걸렸다.

급한대로 국내 기존 설비를 계량해 수작업으로 스틱을 만들었다. 그러던 중 스틱에 액상을 결합해보자는 아이디어에 착안해 릴 하이브리드가 탄생했다. 필립모리스가 수십년에 걸쳐 이룬 사업의 틈을 불과 수년만에 비집고 들어갔다. KT&G의 전자담배사업을 총괄하는 임왕섭 전무(본부장)는 발상의 전환과 유연한 사고를 장려하는 기업문화가 히트상품을 만들어냈다고 회고한다.

KT&G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신사업 문을 두드릴 예정이다. 릴 디바이스는 니코틴 뿐만 아니라 유익한 제품을 탑재할 수 있는 무한한 확장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전자담배사업부를 'NGP(Next Generation Products)사업본부'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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