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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b & Lab]1200℃서 태어난 산업 핏줄 '전선' 제조현장 가보니대한전선 당진공장, 고온 용해로부터 VCV 타워 클린룸까지

당진(충남)=이민우 기자공개 2023-05-11 13: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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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이든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든, 출발점은 Fab(공장)과 Lab(연구소)다. 여기에서 얼마나 고도화된 공정 개발이, 기술 연구가 이뤄지느냐가 최종 제품의 질을 좌우한다. 더벨이 기업의 산실인 제조 공장과 연구·개발(R&D) 센터 현장을 찾았다. 또 Fab과 Lab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와 연구소장, 엔지니어 등을 직접 만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5월 08일 14:4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초고압케이블 등 전선은 가정과 공장 설비의 혈액인 전류를 나르는 산업의 핏줄이다. 특히 최근 신재생에너지의 대두로 글로벌 전선시장이 확대되는 가운데 새로운 도약기를 맞이하고 있는 대한전선은 국내 충청남도 당진공장을 필두로 글로벌 시장에 '대한'이란 이름을 다시 한번 각인시키고 있다.

지난달 26일 찾은 대한전선 당진공장은 최근 지속된 수주 호조를 반영한 듯 거대한 드럼들이 부지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성인 남자의 몸통 크기만한 드럼부터 전선을 묶는 곳의 너비만 사람 2명은 너끈히 들어갈 드럼까지 각양각색이다. 특히 굵고 긴 초고압케이블 때문인지 거대한 드럼이 공장 안팎에 다수 존재했는데 이들 사이를 걸어 다니니 거인국의 실타래에 둘러싸인 소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한전선 당진공장 내 배치된 드럼

◇1200도 고온서 태어나는 전선의 기초, 연 26만톤 생산

처음 발을 디딘 당진공장 내부의 공기에선 후추를 뿌린 듯 매콤한 향기가 감돌았다. 소재 공정으로 붉게 달아오른 구리선이 흩뿌리는 냄새다. 눈을 앞으로 두자 은은한 주황색 광채의 구리선이 앞으로 천천히 몸을 옮기고 있었다. 1200℃ 고온의 용해로에서 빠져나온 구리가 소재 공정을 거쳐 둥근 단면의 구리 로드(Wire Rod, 선재)로 가공되는 순간이다.

용해로를 탈출한 구리 로드는 위치를 옮기며 달아오른 몸을 식혀나갔다. 이동하고 있는 구리 로드의 표면 온도에 대해 질문하니 900℃정도에서 점차 낮아진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온도가 낮아지면서 구리 로드에는 산화피막이 형성되는데 고온에서 붉은빛을 뿜던 구리 로드가 점점 달군 몸을 식히면서 본연의 구릿빛 색깔을 찾는 모습은 해질녘 석양의 느낌과도 비슷했다.

당진공장은 연속 및 자동화 공정으로 99.9%의 고순도 구리 로드를 생산한다. 이 가운데 20~30%가 대한전선에서 제조하는 케이블에 사용되며 다음 공정을 거쳐 초고압케이블 등 전선 제품으로 만들어진다. 전선 제조공정을 사람의 일생에 비유한다면 소재 공정은 처음 걸음마를 떼는 과정인 셈이다.

케이블 생산에는 주로 8㎜가 사용되지만 방문한 당일 당진공장에서는 좀 더 굵은 20㎜ 두께의 로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는 당진공장 생산량에서 1~2% 정도만 차지하는 물량으로 대한전선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생산법인 엠텍(M-tec)에 납품할 전차선용이다. 당진공장은 구리 로드를 연간 26만톤, 시간당으로 약 40톤을 만들어낼 수 있다.

용해로를 빠져나온 구리가 공정을 거치며 이동하고 있다

100m서 절연 옷 입는 전선, 먼지 없는 클린룸 눈길

소재 공정에서 뽑아진 구리 로드는 신선·연선 공정으로 향한다. 신선 공정은 일정한 굵기를 가진 소선으로 가공하기 위한 과정이다. 가공된 소선은 연선 공전을 통해 부채꼴 모양의 단면으로 꼬아진다. 이를 집합 공정을 통해 4~6개로 묶어주면 지중, 해저케이블을 수직으로 자른 모습에서 흔히 보게 되는 원형 도체가 등장한다.

당진공장 관계자는 "연선 공정에서는 통상 소선 61~91개를 바이스 등 장비를 통해 열과 압력을 가해 꼬아 만든다"며 "이런 부채꼴 형태는 한 번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소선을 꼬아 점점 커지게 생산한다"고 설명했다.

만들어진 도체는 이어 가장 중요한 공정 중 하나로 분류되는 절연을 위해 당진공장의 가장 높은 곳으로 솟구친다. 당진공장은 160.5m 높이의 수직 연속압출시스텝(VCV) 타워를 보유하고 있는데 제조된 도체는 1층부터 22층까지 올라간 뒤 다시 내려와 21층에 위치한 운전실·클린룸 내 절연설비를 거쳐 옷을 입는다. 대한전선은 현재 2~4호기 총 3대의 절연설비를 운용 중이다.

방문 당일에는 미국 등에 납품될 초고압케이블이 작업을 거치고 있었는데, 흰색 멸균작업복을 입고 근무하는 현장은 반도체 공장 등을 방불케하는 삼엄한 분위기를 풍겼다. 생산되는 전선이 초고압의 전류를 운반하고 국가 규모의 중요설비에 들어가는 만큼 작은 이물질이나 먼지가 케이블 특성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조치다.

신선, 연선 공정을 거치기 이전의 구리 로드

◇연간 매출 2조원 복귀, 초고압·해저케이블 경쟁력 가속

식지 않는 소재 공장의 후끈한 열기와 24시간 쉼 없이 돌아가며 가동 중인 설비에서 보듯 대한전선의 올해 연초 기준 수주잔고는 3만8000메트릭톤(M/T)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수주 국가 역시 미국과 유럽을 비롯해 각 대륙으로 광범위한 만큼 글로벌 전역에서 제품 및 생산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대한전선은 초고압케이블 수주 지속 및 제품 경쟁력 강화를 통해 신재생에너지 부상 등으로 확대되고 있는 글로벌 전선시장에 대응해 나갈 방침이다. 지난해 12월 500킬로볼트(KV) 전류형 가교폴리에틸렌(XLPE) 초고압직류송전(HVDC) 육상 케이블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국제 공인인증을 획득하는 등 기술력 강화에도 매진 중이다.

이에 힘입어 대한전선은 지난해 2조4519억원의 매출을 올려 2014년 이후 8년만에 연 2조원대 매출 복귀에 성공했다. 인플레이션 및 구리 가격 상승 등 글로벌 경영 환경 악화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 역시 482억원을 기록해 2021년 대비 22% 증가했다.

올해 하반기 당진공장 인근에 배치된 해저케이블 임해공장의 준공도 앞둔 만큼 업계에선 추후 대한전선의 수주확대에 많은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임해공장은 인근 부두와 200m 이내에 위치하는 등 해저케이블 생산 및 운반에 최적화된 입지조건을 보유하고 있다.

대한전선 당진공장 부지 내 전경과 160.5m 높이의 VCV 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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