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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 파킹 제동]관행이란 이름 아래 묵인된 위법, 개선될까①'자본법 위반' 자전거래, 사각지대서 합법으로 둔갑

윤기쁨 기자공개 2023-06-14 08:24:08

[편집자주]

KB증권과 하나증권간 채권 거래에서 촉발된 이른바 '돌려막기' 이슈가 업계 전반으로 다시 번지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오랜 기간 지속된 관행이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당국은 증권사별로 순차 검사를 진행하는 등 불법성 여부를 따져묻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은 불건전 행위를 바로잡기 위한 움직임에 찬성하면서도 자칫 시장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더벨은 뿌리 깊게 박힌 과거 채권 거래 관행들과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6월 09일 11:0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자전거래와 파킹은 자본시장에서 원칙적으로 금지된 행위지만 관행이란 명목으로 암암리에 이뤄져 왔다. 오랜 기간을 거쳐 랩어카운트(Wrap)와 신탁 상품을 운용하는 증권사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시장이 형성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해관계자들의 암묵적인 동의가 바탕이 됐다. 대내외 금융환경과 상관없이 (파킹 기간 동안) 동일한 금리를 유지하고, 계약서 없이도 구두 합의가 가능한 수준의 신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시장 참여자(증권사)들은 원활하게 자금을 유치하고, 투자자(고객)는 시중 금리보다 높은 수익을 거둔다.

순조롭게 굴러가던 세상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저금리 시기에는 풍부한 유동성과 높은 채권 가격으로 손해를 보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금리가 급등하면서 채권 가격이 폭락, 증권사들의 평가손실이 불가피해졌다. 일부 증권사들이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자전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수면 아래 있던 채권 거래 관행들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불건전 영업행위' 자전거래·파킹, 높은 수익률·자금 유치 목적 활용

자전거래는 동일한 기관(주로 증권사·자산운용사)이 같은 주식이나 채권 등을 똑같은 가격과 수량으로 매도·매수 주문을 내 거래를 다시 체결하는 행위다. 자본시장법 제85조, 제98조, 제108조 등에 따라 금융투자업자의 자전거래를 불건전 영업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고객 상품 수익률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시장 교란 행위를 막기 위함이다.

다수 증권사가 자전거래를 담합하면 통정매매(연계 자전거래)가 된다. 한 증권사가 랩어카운트·신탁 등을 통해 받은 고객 자금을 다른 증권사에 일정 기간 동안 맡기고(파킹), 시장 상황과 상관없이 처음 맡겼을 당시와 동일한 가격에 되찾는 식이다. 연계 자전거래와 파킹은 주로 '만기 미스매칭' 전략을 목적으로 활용돼왔다.

파킹하게 되면 증권사 등 거래 당사자는 매수한 채권을 장부에 곧바로 기록하지 않고 다른 증권사나 중개인에게 맡긴 뒤 이를 직접 매수하거나 다른 곳에 매도한다. 다만 사전 구두 합의에 따라 당사자(채권 매수자)가 아닌 파킹을 도와준 증권사(중개인) 명의로 채권을 매수하고 나중에 결제하는 식으로 자전거래 형태를 숨긴다. 채권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매수·결제 절차를 밟는다는 점에서 무차입 공매도와 유사하다.

일반적으로 금리는 만기가 길수록 높다. 가령 A 증권사가 3년 만기 CP(금리 5%)를 사들인 후, 고객에게 1년 만기 CP(금리 3%) 상품을 4% 이자 수익률을 내세워 판매한다. 계약 기간인 1년이 만료되면 증권사는 3년 만기 CP를 매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증권사에 협의 하에(2년 뒤 금리 5%로 그대로 돌려받는 조건) 파킹한다. 다른 재원(이른바 '채권 돌려막기')으로 환매를 마치면 다음 고객을 유치해 나간다.

2015년 현대증권(현 KB증권) 고객자산운용본부장, 신탁부장 등 임직원들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대거 기소된 사례가 전형적인 자전거래·파킹 유형이다. 이들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약 800여회 넘게 우정사업본부와 고용노동부 등 연기금 등을 대상으로 높은 수익률을 약정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상품 만기보다 긴 CP를 사들이며 적극적인 만기 미스매칭 전략을 펼쳤다. 이는 위법으로 인정돼 벌금형 등을 선고받았다.


◇법망 피해 합법으로 둔갑한 예외조항 "단기간 자정 힘들 듯"

그럼에도 법망을 피해 관행으로 굳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예외조항이 큰 역할을 했다. 자전거래 자체는 위법이지만 일부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예외를 두고 있다. 자본시법 제99조 시행령 등에 따르면 △수익자 요구에 따라 동일한 수익자의 투자일임 재산 간 거래하는 경우 △동일한 수익자의 서로 다른 계좌(금융사)간 매매 시 △수익자 이익을 해칠 염려가 없을 때 등 사례에 한해 자전거래를 일부 허용하고 있다.

문제는 증권사들이 이를 일반 조항처럼 해석하면서 자전거래를 관행적으로 해왔다는 점이다. 실제 금융감독원의 첫 조사 대상이 된 KB증권 등은 예외조항을 근거로 절차상 문제가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동일한 수익자의 서로 다른 계좌 간(KB증권-하나증권) 거래라는 점', '일부 수익자들이 유동성 공급(채권거래)을 직접 요청했다는 점' 등이 대표적이다.

파킹 과정에서 일어난 '만기 미스매칭' 전략도 고객이 충분히 인지하고 동의했다는 점에서 위법 여부를 가리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1년 만기 CP 상품을 팔면서 3년 만기 자산을 편입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증권사가 상품 가입시 배부한 설명서에 따르면 '운용자산과 신탁계약의 만기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설명이 충분히 고지돼 있다.

그럼에도 만기 미스매칭은 인위적으로 시세를 조종하는 행위인 만큼 자본시장의 잠재 불안 요인으로 꼽혀왔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역시 단기성 상품인 요구불예금(입출금이 자유로운 예금)을 만기가 긴 미국 장기채에 투자하면서 발생했다. 금리 인상기 △채권 가격 하락 △기업들의 실적 악화 △현금 유동화 실패 등이 겹치면서 결국 파산을 맞이한다.

현재 금융감독원은 파킹·자전거래 등 채권 시장 불건전 영업행위를 전반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사실상 업계 전수조사인 셈이다. 오랜 기간 위법과 합법 사이에서 뿌리를 내린 관행인 만큼 단기간 내 구체적인 해결 방안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터질 게 터졌다'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전반적으로 금융 당국의 적극적인 조사 의지에 환영의 뜻을 밝히고 있다. 증권사 신탁·랩어카운트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중지를 모으는 모습이다. 다만 일부는 시장 축소와 기업 조달 시장 경색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관행이라고 하지만 결국 시세를 조종해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교란 행위에 불과하다"며 "잠재 리스크가 더 커지기 전에 이를 바로잡고 지금이라도 올바른 해결책을 찾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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