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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 아트]미술계 '패트런' 범현대그룹의 분업화된 후원사업'현대커미션''슈퍼콘서트'…현대미술부터 대중문화예술, 큐레이터 양성까지

서은내 기자공개 2024-03-04 11:19:17

[편집자주]

기업과 예술은 자주 공생관계에 있다. 예술은 성장을 위해 자본이 필요하고 기업은 예술품에 투자함으로써 마케팅 효과를 얻는다. 오너일가의 개인적 선호가 드러나는 분야이기도 하다. 특히 문화예술 지원을 통해 사회에 공헌한다는 점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성격도 갖고 있다. 기업이 운영하는 예술 관련 법인의 운영현황과 지배구조, 소장품, 전시 성향 등을 더벨이 짚어봤다.

이 기사는 2024년 02월 28일 14:1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범현대 계열 기업 산하에는 현재 삼성의 리움미술관 같은 미술관은 없다. 금호그룹 산하의 금호미술관, SK의 아트선재나비, 포스코의 포스코미술관, 롯데의 롯데뮤지엄, 대림의 대림미술관, 코오롱의 스페이스K 등이 미술관을 기반으로 미술계와 접점을 맺고 작가들을 후원해 나가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미술계의 취재를 종합해보면 현대차, 현대카드, 현대백화점 등 현대 계열의 기업들은 미술관이 필요없다는 말이 나올만큼 각각 독자적으로 예술 후원을 폭넓게 전개하며 영향력을 펼쳐가고 있다. 국내 미술계를 끌어가는 진정한 패트런(경제적 지원자)은 현대 일가라는 평가도 나온다.

대부분 국내 대기업 산하 미술관은 미술 애호가인 오너가 수집한 미술품, 혹은 기업이 가진 소장품을 토대로 설립되는 배경을 두고 있다. 현대 계열 기업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설립한 미술관은 아직까지 없으나 대신 세계 유수의 미술관들을 후원하며 한국 미술의 위상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 세계 유수 미술관 한복판의 '현대커미션'

현대차는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 미국 뉴욕 휘트니미술관, LA 카운티 미술관들과 관계를 맺고 미술관의 다양한 문화 사업들을 지원하고 있다. 장기 후원 파트너십을 체결한 후 '현대'란 이름으로 커미션 전시를 진행하는 식이다. 커미션(commission)은 누군가의 요청을 받고, 특정 공간에서 작가가 작업활동을 한 결과물을 뜻하는 단어다.

현대차가 테이트모던과 관계를 맺은 건 2014년부터다. 11년간 장기 후원 협약을 맺었으며 매년 테이트모던의 정중앙 '터바인홀'에서는 '현대커미션'이라는 이름의 전시 프로젝트가 이어져오고 있다. 2019년에는 이곳에 아예 연구소를 지어주기도 했다. '현대 테이트 리서치 센터: 트랜스내셔널'다. 미술관의 세미나, 심포지엄, 워크숍 등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 테이트모던의 현대커미션 전시 작가로는 1988년생 한국작가 이미래 씨가 선정됐다. 지난해에는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평생 공로상을 수상한 가나 출신 예술가 '엘 아나추이(El Anatsui)'가 선정됐다.

2015년 테이트모던에서 진행된 '현대커미션 2015' 사진. 왼쪽부터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작가 아브라함 크루즈비예가스, 전 테이트모던 관장 크리스 더컨. <사진제공= 테이트모던>
뉴욕의 휘트니미술관과 최근 10년 장기 후원 협약을 맺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대차는 휘트니비엔날레의 공식 후원자로서 2032년까지 다섯 차례 비엔날레를 지원하기로 했다. 야외전시장 중 가장 큰 규모인 '테스트 플랫폼'에서 매년 '현대 테라스 커미션'도 이어가게 된다. 테스트플랫폼은 예술가, 큐레이터들에게 실험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LA 카운티 미술관과는 2015년부터 '더 현대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지지하는 전시 프로젝트이며 한국 미술사 연구 활동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2022년에는 LA카운티에서 '사이의 공간: 한국 미술의 근대'전을 개최했다.

국내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관계가 끈끈하다. 2014년부터 'MMCA 현대차 시리즈'를 통해 매년 국내 중진 작가 1인의 대규모 개인전, 세미나, 출판을 후원하고 있다. 2019년부터는 '프로젝트 해시태그'를 후원하며 매년 2팀을 선발해 창작 지원금 3000만원과 레지던시(작업 공간), 전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미술관이나 어떤 예술 작업을 후원하는 것 뿐 아니라 큐레이터를 양성하는 등 미술계의 다양한 인재 발굴에도 힘쓰고 있다. 중국 베이징에서 '현대모터스튜디오 베이징'이라는 문화복합공간을 만들고 신진 큐레이터 양성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Hyundai Commission: Cecilia Vicuña: Brain Forest Quipu © Cecilia Vicuña, Installation View at Tate Modern 2022. Photo © Tate (Ben Fisher)

◇ 현대카드 예술 실험 공간 제시, 현대백화점은 갤러리 운영

현대차가 굵직한 후원들로 자리를 잡았다면 현대카드, 현대백화점 등 다른 계열사들도 또다른 영역에서 후원자로 든든히 서나가고 있다. 테이트모던 뒤에 현대차가 있다면 현대카드는 미국 뉴욕현대미술관(모마)을 타깃했다. 현대카드와 모마의 파트너십 덕에 현대카드를 소지하고 있으면 이곳 무료로 입장도 가능하다. 2019년에는 모마 재개관에 맞춰 한국 대표 작가인 양혜규의 첫 개인전을 후원하기도 했다.

현대카드는 한발짝 더 나아가 문화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아트 라이브러리, 디자인 라이브러리, 뮤직 라이브러리, 현대카드 스토리지를 통해 새로운 예술적 감각들을 대중에게 선보이는 전초기지를 만들었다. 또 '슈퍼콘서트' 같은 대형 공연을 기획하며 대중들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히고 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2004년부터 '슈퍼콘서트'를 통해 해외 슈퍼스타들을 한국으로 불러들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까지 27차례 대규모 공연의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콜드플레이, 폴 매카트니, 퀸, 레이디가가, 비욘세, 스티비 원더, 브루노 마스 등 가수를 섭외한 것도 정태영 부회장이다.

현대백화점은 다른 계열사들과는 또 다른 성격으로 직접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유통업의 특성을 살려 마케팅 적인 측면에서 미술 분야에 접근하고 있다. 16개 백화점과 8개 아울렛에서 예술 작품을 전시, 판매하고 국내외 미술관, 화랑과 협업을 통해 전시회를 여는 방식의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더현대 대구에서는 제프 쿤스의 대표작이 전시, 판매 중이며 판매가도 약 52억원으로 공개했다.

현대백화점이 더현대 대구에서 전시한 작품 제프 쿤스 ‘켄타우루스와 라피테스 처녀’.

◇ 현대차 아트랩 조직, 글로벌 파트너십 본격화…후원규모 비공개

현대 계열 내 각 기업별로 예술 관련 사업부가 독자적으로 운영 중이다. 현대차에서 미술 후원을 담당하는 부서는 브랜드마케팅본부 산하의 아트랩이다. 2014년부터 아트랩이 조직돼 본격적인 문화사업이 시작됐다.

현재 아트랩은 최두은 상무가 총괄하고 있다. 최 상무는 홍익대에서 석사를 전공, SK 산하 미술관 아트센터나비 총 큐레이터를 거친 전시기획 전문가다. 2년 반 전 현대차에 아트랩장으로 영입됐다.

문화예술에 대한 후원의 수치상 규모는 공개하고 있지 않다. 지난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과 10년 후원 파트너십을 맺으면서 10년간의 후원액이 총 120억원으로 알려졌으나 이후로 다른 해외 미술관 후원의 규모는 비공개다.

테이트모던과 장기 협약을 맺을 당시 외신 보도에 따르면 현대차는 터빈홀 운영기금으로 90억원 규모의 스폰서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시기 테이트모던이 백남준 작가의 비디오 아트 작업 9점을 구매하는 데에도 현대차의 자금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차 관계자는 "미술계에 대한 후원은 순수하게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진행하는 사업이며 금액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며 "문화사업이 마케팅으로 인식되는 것을 피하고 있으며 금액 등 부수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것으로 여겨질까봐 조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술업계 관계자는 "현대계열의 그룹은 미술관이 필요없다고 할만큼 가장 분업화돼서 미술계에서 후원 등 긍정적인 기여를 많이 하는 곳 중 하나"라며 "세계 최정상급 미술관의 중심부에 한국 작가들의 전시가 열리게 하는 굵직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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