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3월 26일 10:4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일단 상장하는 것이 급선무이니까요. 기업가치가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래야 금감원에서 별 말 없으니 어쩔 수 없죠."최근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있는 기업의 기자간담회에서 한 CFO로부터 들은 말이다. 기업가치가 만족스러운지 물어본 질문에 돌아온 대답이다. 비교기업으로 점찍었던 곳들의 주가가 상승하자 어쩔 수 없이 리스트에서 제외해 몸집을 줄였다고 전해왔다.
IPO 시장은 공리주의 철학에서 말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논리가 지배한다. 지난해 파두 사태 이후 금융당국은 기업가치를 좋게 평가 받기 위한 일부 기업들의 관행이 투자자 다수의 이익을 훼손하고 있음을 목도했다. 이에 따라 엄격하고 보수적인 밸류에이션 책정을 최대 행복을 위한 선결 조건으로 지정했다.
동시에 증시 안착을 위한 협조가 하나의 규범으로 정착했다. 증권사와 회사에 밸류에이션에 관해 질문하면 "안정적인 상장을 위해 시장 친화적인 기업가치에 합의했다"는 답변을 일관적으로 듣는다. 재무적 투자자(FI)들도 자발적으로 리픽싱 권리를 포기하고 엑시트를 미뤄 성공적인 상장을 함께 바란다.
그러나 협조는 과도한 희생으로 변질되면서 다수가 누릴 행복은 '최소'로 줄어들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금감원과 거래소의 입김에 울며 겨자 먹기로 기업가치를 낮게 설정했다"고 토로했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도 "공모가가 계속 낮게 유지되면 기업들이 상장을 포기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FI들이 감당해야 할 희생도 만만치 않다. 최근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한 기업의 FI는 리픽싱 권리를 그대로 들고 있기로 했다. 공모가가 예상보다 훨씬 낮아 리픽싱 조항이 발동돼도 손해를 보는 구조였다. 한때 FI에게 최소한의 이익을 보장해주기 위해 부여된 장치였지만 정반대의 효과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절대 다수의 소액 투자자들은 행복할까? 과도한 희생이 빚은 IPO 시장은 일반 투자자에게도 우호적이지 않다. 단타 이익을 추종하는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가져갈 수 있는 파이는 더욱 작아졌다. 상반기 최대어였던 에이피알의 경우 1주라도 받기 위해서는 최소 2억원의 증거금을 넣어야 했다.
트롤리 문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선택에 가려진, 어딘가 모를 찝찝함을 드러낸다. 증시 상장은 기업 생애주기에서 한 번뿐인 중요한 의사결정이다. 이해관계자들의 협조도 당연히 요구된다. 다만 어느 순간 협조가 찝찝한 희생으로 느껴진다면 최대 행복을 향한 길이 '최소 행복'을 가리키진 않는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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