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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 입찰전략]'딜 종결자' 국토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⑧항공업 구조조정 염두…평가시 재무여력 눈여겨 볼 듯

유수진 기자공개 2019-11-04 10:02:00

이 기사는 2019년 10월 30일 15:3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적 대형항공사(FSC)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을 찾는 딜에는 '히든 매도자'가 있다. 국토교통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국토부는 국내 항공산업을 관할하는 정부부처로서 이번 딜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사실상 공식 매도자인 금호산업(금호그룹), 산업은행과 함께 최종 인수자를 결정하는 세 번째 주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국토교통부
실제로 국토부는 금호산업과 산업은행이 입찰 후보를 평가하기 위해 '채점표'를 만드는 작업에도 함께 참여했다. 해당 채점표에는 인수가격으로 대표되는 정량적 요소와 항공업에 대한 전문성 등 정성적 요소가 골고루 담겼다. 이들의 요구사항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이 채점표에서 최고점을 받는 후보가 이번 딜의 최종 승자가 될 전망이다. 즉 원매자들은 금호산업과 산업은행뿐 아니라 국토부까지 균형있게 만족시킬 수 있는 입찰 전략을 마련해야 승리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매도자의 의중을 파악해 맞춤형 전략을 짜는 건 인수전 승리를 위한 기본 상식이다. 때문에 그동안 시장에서는 금호산업과 산업은행의 속내를 파악하려는 시도가 끊이질 않아왔다. 이 과정에서 최대한 구주 가격을 높게 받아 훗날을 도모하려는 금호그룹의 의도와 신주 가격을 높여 아시아나항공의 조기 경영정상화를 이끌려는 산업은행의 계획이 외부에 드러났다. 입찰 후보들은 사실상의 가이드라인인 이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양측 모두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전략을 짜는 데 주력해왔다. 하지만 히든 매도자인 국토부의 속내는 여전히 꽁꽁 숨겨진 채로 남아있다.

국토부의 복심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일단 이번 딜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은 일반적인 민간기업 M&A와 달리 이례적으로 정부가 깊게 개입하고 있다.항공업이 국민의 생명과 국가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기간산업으로서 당국의 엄격한 관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항공법은 국적 항공사의 대표나 대주주가 변경되는 경우를 경영상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다고 간주, 해당 사실을 국토부에 즉시 알리도록 하고 있다. 사실상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딜이 완성되는 구조인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딜 초반부터 일찌감치 관계기관 회의 등에 참석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키워 올 수 있었다. 이번 딜에서 국토부는 입찰 후보들이 국적 항공사를 운영할 자격이 있는지 심사하는 일을 맡았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국토부의 역할이 단순히 그 정도 선에서 끝날 것으로 보지 않고 있다. 실제로 국토부는 딜 진행 과정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단 국토부는 입찰 후보들이 현행법상 결격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지 살펴본다는 게 기본 방침이다. 이를 위해 후보들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적격성 여부를 따져보고 있다. 현행 항공법은 외국인이나 외국 법인의 항공사 소유 및 운영, 외국인 임원 선임 등을 금지하고 있다. 이는 딜 초반부터 외국 자본의 입찰 참여를 철저히 제한해 온 배경이기도 하다. 앞서 국토부는 외국인이 등기임원으로 재직한 진에어의 면허취소를 검토하는 등 해당 내용에 강경한 입장을 보여 왔다.

국토부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매각 관련 관계기관 회의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며 "입찰 후보가 외국인이거나 범죄경력이 있는지 등 항공법에 명시된 여러 가지 결격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지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국토부가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이 갖추길 바라는 조건이 따로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후보들을 평가하는 입장이여서 대놓고 티를 내진 못하지만 내심 항공업계 전체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는 '강력한' 후보를 원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추후 항공업계가 구조조정 되거나 재편되는 과정을 겪을 때 선두에서 이를 주도할 수 있는 후보가 아시아나항공을 가져가길 은근히 바라는 눈치다. 이는 최근 국내 항공사들이 일제히 실적 부진을 겪으며 항공업 구조조정 얘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요즘 국토부의 최대 고민거리는 항공업계의 공급 과잉이다. 국내 항공사들이 수년간 과열 경쟁으로 노선 확대에 열을 올리더니 올해 들어 일제히 침체의 늪에 빠졌기 때문이다. 성장 가도를 달리던 저비용항공사(LCC)들이 올 2분기 일제히 적자로 돌아서며 항공업의 위기를 알리는 신호탄을 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보이콧 재팬' 움직임이 확산되며 성수기인 3분기 실적 전망도 어두운 상태다.

업계 분위기가 악화되자 이스타항공 등 일부 LCC의 매각설이 도는 등 항공사 구조조정에 대한 목소리가 하나 둘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매각설은 당사자의 즉각적인 부인과 해명에도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으며 이미 시장에서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토부는 이같은 분위기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분별하게 면허를 내줘 지금과 같은 상황을 자초했다는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스타항공 재무지표

심지어 국토부는 올 초 플라이강원과 에어로케이, 에어프레미아 등 3개사에 신규 항공면허를 내주기도 했다. 많아야 1~2개사가 시장에 진입할 거란 업계의 예상을 뛰어넘는 결정이었다. 당시 국토부는 항공운임 인하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해 시장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여객수요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거란 장밋빛 전망으로 맞섰다. 그러나 이들이 첫 비행기를 띄우기도 전에 공급 과잉 논란을 겪으며 상당히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LCC 구조조정이 현실화될 경우 국토부가 이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업계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무엇보다도 국토부는 직접 나서 구조조정 작업을 지휘해야 하는 관리·감독 기관이기도 하다. 국토부 역시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항공업계 재편이 불가피하다면 대응책을 마련하는 게 그나마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내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국토부가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에게 바라는 조건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국토부의 관점에서는 충분한 재무여력이 입찰 후보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매력적인 요소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야 추후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항공업계 재편 작업에서 일정한 역할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매물로 나온 다른 LCC들을 추가로 끌어안아 혼란스러운 상황을 빠르게 정리할 수 있는 후보를 적임자로 점찍을 가능성이 높다. 국토부와 함께 능동적으로 개편 작업을 이끌 수 있는 후보도 가점 대상일 것으로 보인다. 이는 새 주인의 재무력이 단순히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을 정상화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공급 과잉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국토부로서는 자신의 고충을 함께 해결해 줄 수 있는 후보에 마음이 갈 수 밖에 없는 셈이다.

KCGI
이같은 이유로 업계 일각에서는 국토부가 아직 대기업의 딜 참여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았다는 얘기도 나온다. 본입찰 도전 의사를 밝힌 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와 애경그룹-스톤브릿지캐피탈 외에 다른 강력한 후보의 딜 참여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두고 있다는 것. 특히 이 부분에서 국토부와 아직 전략적 투자자(SI)를 공개하지 않은 KCGI간 접점이 생기기도 한다. 강성부 KCGI 대표는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해 국내 항공업계를 구조조정 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고, 현재도 계속 대기업 등과 만나 공동 인수를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면허를 내준 국토부가 최근 항공사들이 부진을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해 매우 난처해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국토부로서는 항공업 구조조정 상황에 대비해 재무여력이 충분한 후보에게 눈길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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