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해운사 사이클 점검]고려해운, '40년만의 적자' 실망할 필요 없는 이유②지난해 320억 영업손실 봤지만…'든든한 곳간·무차입 경영'의 힘
허인혜 기자공개 2024-05-17 07:39:06
[편집자주]
외부의 파도에 흔들리지 않는 산업이 어디 있겠느냐만 해운업은 특히 파고에 크게 휩쓸리는 업종이다. 호황기와 불황기라는 거대한 사이클 속 유가 흐름과 국제 정세 등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까지 고려해야 한다. 결국 해운사의 명운은 호황기에 얼마나 곳간을 쌓고 불황기를 어떻게 잘 헤쳐나가느냐에 달렸다. 선제 대응은 기초 체력이 있어야 가능한 법, 중견 해운사들이 불황기 대응에 더 고심하는 이유다. 해운업 불황기 초입에 들어선 지금 더벨이 중견 해운사들의 현황과 사이클 대응 방안, 앞으로를 점검해 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5월 14일 16:4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고려해운은 근 40년간 단 한 번도 연간 적자를 낸 적 없이 탄탄한 성과를 자랑하던 선사다. 해운업 불황기가 길었던 2010년대에도 적자를 보지 않았다. 그랬던 고려해운이 지난해 연간 적자를 기록했다. 해운업계가 불황의 사이클에 재진입하면서다. 매출액이 절반 가깝게 하락해 영업손실을 피하기 어려웠다.하지만 눈여겨 봐야하는 건 몇년 만의 적자냐가 아니라 공동의 불황기에 상대적으로 얼마나 덜 손해를 봤고 그 손해를 메울 능력이 있는가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해 적자를 고려해운의 위기로 말하기는 섣부르다.
적자 규모는 매출액의 1%대에 그치고 재무 구조는 탄탄하다. 호황기 살뜰하게 비축한 현금량과 투자 수익, 긴 시간 이어온 무차입 구조가 고려해운을 받치는 힘이다.
◇불황기, 얼마나 선방했나
고려해운의 지난해 매출액은 2조6000억원으로 5조원을 기록했던 직전년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축소됐다. 영업이익은 1조7900억원에서 마이너스(-)318억원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고려해운을 포함해 선사가 지난해 직전년도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낸 건 당연한 결과다. 업황 자체가 불황기에 접어들었고 직전의 호황이 퍽 화려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그 와중에도 얼마나 선방했느냐다. 고려해운이 연간 영업이익으로 적자를 본 건 직전 해운업 불황기를 포함한 10년간 처음이다. 기간을 더 길게 보면 39년만의 연간 적자다. 해운업계의 직전 불황기에도 고려해운은 영업이익률의 변화가 있을지언정 마이너스 성과를 낸 적은 단 한해도 없었다. 그 사이 국내 선사들은 대형·중형사를 막론하고 적자의 긴 터널을 걸었다.
매출액은 줄어든 데 비해 매출원가율이 크게 늘어나면서 적자를 냈다. 선사는 매출액이 축소된다고 해서 매출원가를 쉽게 줄일 수 없는 구조다. 매출원가에는 재고자산평가손실과 선박 운영 고정비 등이 포함된다. 선박 리스료를 주로 달러로 지불해 원달러환율 상승도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매출액이 줄었다고 해도 보유·운용 선박의 수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운임비가 매출액을 좌우하기 때문에 매출액이 줄었더라도 그 비율만큼 선박 운용 자체가 축소됐다고 볼 수는 없다.
고려해운뿐 아니라 1위 선사 HMM도 매출액이 반토막 났고 영업이익은 90% 이상 줄었다. 지난해 4분기에는 글로벌 톱10 해운사 중 덴마크 머스크와 프랑스 CMA-CGM, 독일 하팍로이드, 일본 ONE, 대만 양밍, 이스라엘 짐라인이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매출액 1% 그치는 적자 규모, 든든하게 쌓은 현금
적자는 냈지만 규모를 따져보면 고려해운이 시장 환경 대비 부진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고려해운의 적자 규모는 전체 매출액의 1.22%에 그친다.
지난해 4분기에 국한한 실적이지만 머스크의 적자 규모는 매출액 대비 13%에 달했다. 다른 해운사들도 적자 규모가 상당하다. 덩치 차이로만 볼 수 없는 게 고려해운의 선복량은 글로벌 20위권 안에 든다.
고려해운의 금융 수익과 현금 보유량만 봐도 320억원대의 적자가 큰 악재라고 보기는 어렵다. 고려해운은 수백억 수준의 적자에는 위협을 받지 않을 만한 방어벽을 잘 쌓았다.
고려해운은 호황기 벌어들인 돈을 현금성자산으로 잘 모아뒀다. 현금성자산 규모는 2020년 말 3953억원에서 2021년 말 1조5750억원, 2022년 말 3조2458억원까지 늘었다. 순영업활동현금흐름(NCF)는 2021년 1조4178억원, 2022년 1조9600억원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부분의 자금을 단기금융상품에 비축해 뒀다. 고려해운의 연결기준 지난해 말 현금및현금성자산과 단기금융상품은 약 3조원에 달하는데 이중 2조8300억원이 단기금융상품에 들어가 있다. 영업외수익으로 잡히는 이자수익만 1296억원에 달한다.
현금은 늘었고 빚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증가한 현금은 차입금을 상환하는 데도 썼다. 총차입금 규모는 계속 축소되는 중이다. 2016년부터 현금성자산이 총차입금을 앞서는 사실상의 무차입 경영이 이어지고 있다.
연결기준 고려해운의 순차입금은 2016년 -174억원에서 시작해 코로나 특수가 끝나가던 지난해 말 -3조2242억원으로 변화했다.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도 -2조9982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best clicks
최신뉴스 in 인더스트리
-
- [한미 오너가 분쟁]임주현 "임종윤과 다른 길, 해외투자 유치는 곧 매각"
- [i-point]미래산업,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L-벨트 이전
- [한미 오너가 분쟁]소액주주 만난 임주현, 핵심은 'R&D' "한미정신 지킨다"
- '나형균호' 오하임앤컴퍼니, 사업 다각화 고삐
- [i-point]휴림로봇, 일반공모 유상증자 청약률 196.5% 기록
- [i-point]부스터즈,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자사몰 매출 전략 강화
- '탄소제로 대비' 대우건설, 환경 에너지 정조준
- [시큐리티 컴퍼니 리포트] 시큐아이, 빅3급 실적에도 '보안 거리 먼' 임원들 우려
- [i-point]엑스페릭스-퓨리오사AI, UAE 방문 '협력 강화'
- 성장 돌파구 모색 KT스카이라이프, AI·아마스포츠 공략
허인혜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 [뉴 비전 MRO]'친환경 개조' 한 계단 더 올라선 HD현대마린솔루션
- [뉴 비전 MRO]독자기술 확대에 활로 열린 대형 시장
- [IR Briefing]HD현대 조선3사, 적자선박 물량 얼마나 털었나
- [IR Briefing]HD현대마린 실적, 'AM 솔루션'이 끌고간다
- [게임체인저 SMR]걸음 빨랐던 한화오션, 폭 넓은 '동력 찾기'
- '선제투자' 나선 티웨이, 신기종 스페어 엔진 확보
- [게임체인저 SMR]컨테이너 크기 원자로 자신하는 삼성중·시보그 컨소시엄
- [게임체인저 SMR]'초소형·안전' 특화시장 노린 삼성중공업
- [게임체인저 SMR]인력·기술협업 병행하는 HD현대, '국제표준'의 기회
- [게임체인저 SMR]선박 만드는 HD현대, SMR 개발 뛰어든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