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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서면 꾸물대지 말라" 이건희式 정공법 협상 변곡점마다 지원 약속…삼성 본연의 의사결정속도 주문

박준식 기자공개 2011-11-09 17:29:22

이 기사는 2011년 11월 09일 17:2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미국 석유개발회사(E&P) 파라렐 페트롤리엄(Parallel Petroleum) 인수를 제의받았다. 삼성물산 실무진의 반응은 처음엔 회의적이었다. 거래 대상이 일개 유전이 아닌 복수의 유전 및 가스 자원을 가진 개발사(E&P)로 인수 부담이 있는 매물이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자원개발 분야에 10여 년 전부터 상당한 인력과 재원을 투자해왔지만 최근까지도 E&P 업체를 인수할 수준은 아니었다는 게 관계자들 평가다. 자원개발사가 가지는 투자 부담과 탐사 자원 실패 리스크를 무역상사가 본업인 삼성물산이 단독으로 지는 것은 확실한 부담이었다. 주력 사업을 바꾸려는 의지가 아니라면 계열사 차원에서 이를 단숨에 결정하기는 어려운 문제였던 것이다.

삼성물산은 이 딜을 두고 한국석유공사(KNOC)의 눈치를 봤다. KNOC은 공기업이지만 정부 자금을 지원받아 3년 전부터 과감한 해외 자원개발사 인수합병(M&A)에 나섰다. 2009년부터 △페루 사비아(SAVIA PERU, 9억 달러) △캐나다 하베스트(Harvest, 40억 달러) △카자흐스탄 숨베(Sumbe, 3억3500만 달러) △영국 다나(Dana, 30억 달러) △미국 아나다코(Anadarko, 15억5000만 달러) △카자흐스탄 알티우스(Altius, 5억 달러) 등을 이 기간 중 인수했다.

삼성물산은 과거 사례와 마찬가지로 KNOC을 앞세우고 자신들은 소수 지분 투자에 나서는 전략도 고민했다. 그러나 KNOC이 파라렐 인수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다.

사실 삼성물산은 지난 3월 아나다코 인수전에서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아나다코 역시 거래 초기엔 KNOC과 삼성물산이 공동으로 인수를 추진했지만 거래 도중 삼성이 빠르게 전개되는 프로세스를 따라잡지 못해 최종 계약에서는 배제된 것이다. 삼성은 아나다코가 비전통 셰일오일이라 인수 매력이 없는 매물이었다고 거래 포기를 합리화했지만 계약 후 유가가 급등하면서 내부적인 자성이 일기도 했다.

국내 민간기업 중 최고 조직이라는 삼성이 자원개발 분야에서 공기업에 자꾸만 종속되는 모습을 보이자 끝내 최고 경영층이 쇄신에 나섰다. 몇 가지 문제 사안을 보고받은 이건희 회장이 관련 문제의 개선에 나선 것이다.

이 회장은 올 초 공채 출신의 김신 씨를 삼성물산 무역상사 부문 대표에 임명하면서 자원개발 분야의 사업 확대를 강조했다. 이후 사장단 회의에서는 "30여 년 전 내 말대로 자원개발에 힘썼다면 지금쯤 삼성물산은 미쓰비시상사의 70% 수준은 돼 있을 것"이라며 "기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야 한다"고 일갈했다. 주문의 강도는 그 동안의 보수적 분위기를 강하게 질타하는 수준이었고 관련 사업에는 힘이 실렸다.

삼성물산이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던 파라렐 인수에 다시 관심을 보인 것도 이 당시와 맞물린다. 지난 7월을 전후로 삼성물산은 그룹의 지원을 버팀목 삼아 본격적인 거래를 시작했다. JP모간증권을 자문사로 선정하고 전담 커버리지 조직의 도움을 받아 파라렐 매각자인 미국의 대형 사모투자펀드(PEF)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Apollo Global Management)와 단독 협상을 시작한 것이다.

이 거래는 야심차게 시작됐지만 예상했던 것처럼 협상이 쉽게 이뤄지지는 않았다. 아폴로는 매각의사가 있었지만 투자 시기가 지난 2009년으로 2년 밖에 안된 상황이라 매각에 조급할 이유가 없었다. 여기에 리비아 사태 등이 발발하면서 유가가 급등하자 아폴로가 예상하는 매각 가격이 자신들의 매몰비용인 4000억 원보다 2배 이상 높은 1조원까지 상승했다.

삼성물산은 이건희 회장의 지원약속을 믿었지만 그렇다고 오버 프라이싱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실무자들은 유가의 등락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보였고 예상가격 대비 5% 미만의 협상 가격에도 매매양방 사이의 논의 진전이 이뤄지지 못했다. 협상이 석 달 넘게 진행되면서 삼성의 배타적 권한이 소멸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그러나 성패의 변곡점에서 다시 한 번 오너의 지원이 실무자들을 일으켜 세웠다. 협상이 교착상태에 놓이자 이 회장은 삼성물산 경영진을 통해 "유가 변동을 우려해 확신이 선 거래대상을 놓고 불필요한 시간낭비를 하는 것은 삼류 조직이나 하는 행동"이라며 "꾸물대지 말고 협상을 진행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실무진은 과감한 행보를 보였고 때마침 남유럽 재정난이 불거지고 리비아 사태가 종결되면서 삼성에 유리한 협상 분위기도 조성됐다.

삼성물산은 삼성생명 등 계열 금융사들의 지원을 약속받고 거래 사실이 알려지면서 외부 증권사들의 컨소시엄 참여제안도 받았다. 지난 협상에서 딱딱하게 굴었던 아폴로가 10% 가량의 가격 할인에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계약 조건도 사실상 완비되면서 협상은 반년 만에 9부 능선을 넘었다.

삼성물산이 파라렐을 인수하면 그룹이 공격적 M&A를 천명한 이후 첫 결실이 맺어지는 것이라고 의미부여할 수 있다. 삼성은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제일모직 등을 중심으로 과감한 해외 M&A를 계획하고 있다. 지난 성공에 안주해 국내에만 머물 경우 스마트폰 사례처럼 승부가 단숨에 뒤집히는 위기를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이 파라렐을 인수하면 단순 유전자산의 소수 지분 투자에만 집중되던 자원개발 사업전략도 획기적인 변화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파라렐은 미국 텍사스 지역권의 자원개발 노하우와 글로벌 탐사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으로 평가된다. 파라렐 같은 선진 플랫폼을 활용해 삼성물산 상사부문이 일본 스미토모나 미쓰비시 상사처럼 자원전문 개발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물론 우려도 적지 않다. 미국인 소유의 미국 자원기업을 한국 기업이 지배하게 되면 인수 후 통합(PMI)이 쉽지 않을 거란 지적이 나온다. 물적 자원이야 돈을 주면 확보할 수 있지만 수십 년의 탐사 노하우를 가진 직원들을 삼성물산이 인수한 이후에도 지킬 수 있겠냐는 의문이다. 삼성물산은 KNOC이나 과거 국경간 자원기업 M&A 사례를 확보해 시행착오를 줄이겠다는 의지다. 이런 평가는 계약이 확정되고 인수 후 최소 1~3년의 기간이 지난 후에 가능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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