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6년 11월 10일 08:1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나이 들어서도 보는 만화책이 두개 있다. 슬램덩크 작가인 타케히코 이노우에가 미야모토 무사시의 일대기를 그린 '배가본드(Vagabond)'. 다른 하나는 일본의 만화 대가 요코하마 미쓰데루가 18년에 걸쳐 만든 '전략 삼국지'. 배가본드는 현재 작가가 약 2년 동안 단행본을 내고 있지 않지만, 전략 삼국지의 경우 이미 오래전 완결돼 가끔 1권부터 60권까지 정주행을 한다. 최근에도 스트레스 해소 겸 읽었다. 수차례 봤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영웅들의 계책에 입을 떡 벌리기도 하고, 무릎을 치기도 했다. 만화치고는 구성이 치밀하고 대사가 깊은 고민 끝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느꼈다.전략 삼국지를 보면서 기업을 경영하는 것도 난세 속 영웅들의 행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최근 공격적으로 사세를 키워 건설업계에 자주 거론되는 세운건설이 불현듯 떠올랐다. 세운건설은 소규모업체에 불과한 '신흥세력'이지만, 그동안 거침없는 인수합병(M&A)을 통해 영토를 크게 확장했다.
올 9월 말에는 경남기업 매각 예비입찰에도 참여해 또 다시 관심을 모았다. 당시 업계에서는 세운건설의 완주 가능성을 높게 전망했다. 경남기업은 토목·건축을 주로 하고 있어 세운건설이 군침을 흘릴만 했기 때문이다. 건설 출입 기자로서 상당히 흥미롭게 상황을 지켜봤지만, 세운건설이 최종적으로 불참하기를 바랬다. 세운건설은 남광토건과 극동건설을 인수한지 채 1년이 되지 않았다. 임직원 구조조정 등으로 노조와의 갈등이 극심한 가운데, M&A를 또 추진하는 것은 약간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삼국지를 볼 때마다 되새기는 아주 단순한 법칙은 '체력 비축'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영웅들은 처음에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단 한개의 성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사활을 건다. 그 후 일정 수준에 이르렀을 때 무리하게 영토를 확장하기보다는 내실을 다진다. 내치에 주력해 식량 등 전쟁물자를 확보하고, 인재영입에 적극 나선다. 또 다시 영토를 넓히자는 유혹과 계략들이 넘쳐나지만, 철저히 실리적으로 판단하고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게 기다리다 때가 무르익으면 진지한 자세로 더 큰 도전에 나선다.
다행히 세운건설은 경남기업을 실사한 후 1500억 원에 달하는 인수대금 등 여러 우려스런 문제를 발견하고 지난달 본입찰에 불참했다. 세운건설로서는 규모를 키울 수 없어 아쉬웠을 수 있지만, 굉장히 의미 있는 '멈춤'이었다. 그리고 세운건설은 지난달 재개된 삼부건설공업 매각전에도 참여하지 않으며 속도 조절을 지속했다.
세운건설은 현재 남관우 전 대보건설 사장 영입을 추진하고 있는데, 실로 중요한 선택이라고 본다. 세운건설은 그동안 철저히 오너일가 중심으로 경영이 이뤄졌다. 봉명철 회장과 매제 조기붕 사장이 거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급격히 몸집을 불리면서 물리적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었다. 실제 조 사장은 최근 기자와 통화하며 "현재 관여하는 기업만 세개가 넘는다"며 시간 부족과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세운건설은 M&A를 통해 어엿한 중견건설사급으로 올라섰다. 이제 인수업체들의 경영 정상화를 이루는데 집중해야 한다. 남 전 사장 외에도 업계 실무 전문가들을 더 끌어와야 한다. 봉 회장은 올해 57살로 아직 경영 활동을 할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다. 아들 봉세운 씨도 경영수업을 착실히 받고 있어 후계 걱정도 없는 상황이다. 조급함을 버리고 장기 전략을 가다듬어야 한다. 세운건설이 향후 어떤 기업으로 커나갈지 머릿속에 그려볼 시점이다. 힘을 기른 후 제대로 된 출사표를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관련기사
best clicks
최신뉴스 in 전체기사
-
- [코스닥 CB 프리즘]서진시스템, 보통주 전환 물량에 30% 할증 풋옵션 '이례적'
- 에쓰씨엔지니어링 자회사 셀론텍, 태국에 ‘카티졸’ 공급
- 메트라이프생명, 잇단 사외이사 재선임...송영록 대표 체제도 유지될까
- [보험사 IFRS17 조기도입 명암]현대해상, 단순한 상품구조 '부채 감소' 효과는 컸다
- [저축은행 유동성 진단]NH저축, '안전자산' 투자가 이끈 유동성 개선
- [저축은행 유동성 진단]우리금융저축 '영업 확대'로 끌어올린 유동성
- [저축은행 유동성 진단]하나저축, 대출 영업 축소 대신 '예치금 확대'
- [외국계 보험사는 지금]한국시장 엇갈린 시선 '매력 감소 vs 전략 요충지'
- [닻오른 롯데손보 매각]금융지주와 사모펀드…관점별 이상적 인수자는
- [캐피탈사 글로벌 모니터]JB우리캐피탈, 미얀마 영업 제한 건전성 관리 만전
김경태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 하이닉스·LG전자의 선방…'삼성전자 디테일'에 쏠리는 눈
- [IR Briefing]LG전자, CFO 등판 빛바랜 '수익성 악화·EV 이슈'
- 'HPSP' 투자한 이준호 회장 개인회사, 침묵 깼다
- '벼랑 끝 격돌' 대유위니아 vs 홍원식, 전부 걸었다
- [한경협 파이낸셜 리포트]회원사 늘었는데… 고유목적사업 준비금 '정체'
- [한경협 파이낸셜 리포트]'돈 굴리기' 보수적 접근, '채권 투자' 집중
- [한경협 파이낸셜 리포트]'부동산 거부 단체' 시세 1.3조 여의도 전경련회관
- [한경협 파이낸셜 리포트]국정농단 이후 회원사 미공개, 자신감 회복 언제쯤
- SK스퀘어, 크래프톤 지분 매각…체면 살린 '잭팟'
- [한경협 파이낸셜 리포트]'숫자'가 보여준 위상 회복, '돈 잘버는' 단체 거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