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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시멘트 허기호의 '위기감', 판을 흔들다 ②LK투자 '맞손' 현대시멘트 전격 인수… 시장 재편 주도권 확보

정호창 기자/ 한형주 기자공개 2017-04-03 08:54:38

[편집자주]

현대시멘트 새 주인이 한일시멘트 컨소시엄으로 정해지면서 국내 시멘트 시장의 판도에 일대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2015년 동양시멘트 매각으로 촉발된 시멘트 산업 재편(consolidation) 과정을 복기하고, 향후 시장 변화와 2차 인수합병(M&A) 방향 등을 조망해 본다.

이 기사는 2017년 03월 27일 16:5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해 말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에 시멘트 업계 마지막 매물로 등장한 현대시멘트 인수전 승자는 LK투자파트너스라는 신생 PE에 돌아갔다.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물론이고 매각측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LK투자파트너스의 승리 원동력은 강력한 전략적 투자자(SI)와의 협력 덕분에 가능했다. 국내 시멘트 업계 4위권 업체이나, 현재 시장에 존재하는 토종 업체 중 가장 업력이 오래된 한일시멘트가 뒤를 든든히 받쳐줬기에 우선협상권을 따낼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동양그룹 계열사인 동양증권(현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 출신인 강성부 대표가 이끄는 LK투자파트너스는 신생 PE지만 국내 시멘트 시장에 대해 높은 이해도와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었다. 강 대표가 동양증권 시절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의 지시에 따라 '국내 시멘트산업 구조조정 방안' 수립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등 실무 경험을 통해 얻은 자산이다.

LK투자파트너스는 현대시멘트 인수전을 준비하며 강 대표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한일시멘트는 물론이고 성신양회와 아세아시멘트 등 현존하는 시장 SI 모두와 접촉해 연대방안을 모색했다. LK투자파트너스는 협력 파트너의 니즈와 강점을 면밀히 분석했고, 이해관계가 가장 맞아 떨어지는 한일시멘트를 파트너로 선택했다.

한일시멘트가 LK파트너스와 손을 잡았다는 사실은 현대시멘트 매각 본입찰을 통해 시장에 알려지기 전까지 시멘트 업계는 물론이고 M&A 시장 관계자들 대부분이 예상치 못했다. 현대시멘트가 업계 6위의 하위권 생산능력을 보유한데다 영월과 단양에 생산설비를 보유한 내륙 업체인 탓에 같은 내륙사로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기가 쉽지 않은 한일시멘트가 공격적인 베팅으로 인수에 나설 것이라 예측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기호의 '위기감+책임감', 시장 예상 깬 결과 도출

LK투자파트너스가 내민 공동인수 제안을 수락하기로 전격 결정한 주인공은 한일시멘트 창업주 고(故) 허채경 회장의 장손인 허기호 회장(사진)이다.

허기호 한일시멘트 회장
관련 업계에선 허 회장이 시장서 시너지 효과와 인수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은 현대시멘트 인수에 나서게 된 배경으로 오너 3세 경영자로서 갖게 된 '위기감'과 '책임감'을 꼽는다.

허 회장이 이끄는 한일시멘트는 지난 2년간 시장을 휩쓴 M&A 태풍의 한 가운데에 늘 서있었다. 2015년 진행된 동양시멘트와 쌍용양회 인수전에 모두 참여했고, 늘 전략적 투자자(SI) 1순위 후보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한일시멘트는 두 번의 인수전에서 모두 고배를 마셨다. 동양시멘트 인수전에선 레미콘 시장 경쟁사인 삼표그룹에 밀렸고, 업계 1위 쌍용양회는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인 한앤컴퍼니에 내줬다.

두 업체 인수전 패배는 오랜 업력의 토종 사업자로서 시장 1·2위 기업을 비(非) 시멘트사에 빼앗겨 자존심을 구긴데다, 가장 인수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해안사 매물을 놓쳤다는 점에서 특히 한일시멘트에 뼈아픈 결과였다.

두 번의 패배를 추스르기도 전에 다시 한 번 일격을 받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쌍용양회 인수전이 마무리되자마자 마지막 해안사인 라파즈한라시멘트(현 한라시멘트) 경영권이 글랜우드-베어링PEA에 넘어가 버린 것이다.

허 회장과 한일시멘트 경영진은 전까지 느끼지 못한 큰 위기감에 휩싸였다. 한일시멘트 뿐 아니라 30여 년간 이어진 업계 '7강 구도'에 안주하고 있던 토종 시멘트 업체들 모두가 동시에 느낀 위기감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시장 재편 주도권을 외부에서 진입한 사업자들에게 모두 내주고 끌려가게 된다'는 절박감이 허 회장을 비롯한 토종 시멘트 업체 경영진들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지난해 3월 한일시멘트 회장 자리에 올라 명실공히 3세 경영시대를 열게 된 허 회장 입장에선 오너 일가는 물론이고 회사 안팎으로 확실한 성과를 보여줄 필요도 있었다. '더 이상 밀려선 안된다'는 압박감을 적지 않게 느끼고 있었단 후문이다.

LK투자파트너스의 손을 잡기로 했지만 허 회장과 한일시멘트는 이전과 달리 매우 신중하고 기민한 인수전략을 세웠다. 본입찰 뚜껑을 열기 전까지 LK투자파트너스의 뒤에 숨어 정체를 철저히 감춘 채 공격적인 베팅으로 경쟁 후보들의 허를 찔렀다.

M&A업계에 따르면 LK투자파트너스와 한일시멘트 컨소시엄이 현대시멘트 본입찰에서 제시한 인수가격은 6400억 원 내외로, 시장에서 당초 예상한 거래가격보다 1000억 원 이상 높았다.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 '한일시멘트가 그만큼 절박했던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하지만 본입찰에서 경쟁한 2~3위 입찰자들의 제시 가격이 '위닝 프라이스'와 불과 100억~200억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LK투자파트너스-한일시멘트 컨소시엄의 입찰 전략에 대한 평가는 긍정론으로 바뀌고 있다.

◇시장 재편 2라운드 대응 전략적 교두보 확보

시멘트 업계 관계자들은 한일시멘트가 현대시멘트 인수를 통해 PE에게 넘어갈 뻔한 시장 재편 주도권을 되찾아 올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현재 국내 시멘트 시장 1위는 약 20% 수준의 점유율을 갖고 있는 한앤컴퍼니 소유의 쌍용양회이다. 한일시멘트는 12.3% 점유율로 4위에 올라있다. 쌍용양회처럼 PEF 운용사인 글랜우드-베어링PEA 컨소시엄이 대주주인 한라시멘트의 점유율은 11%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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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쌍용양회와 한라시멘트를 한 업체가 모두 인수할 경우 30% 이상의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보유한 시장 1위 사업자가 탄생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번 현대시멘트 인수를 통해 한일시멘트는 쌍용양회를 능가하는 22%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업계 1위로 올라설 수 있게 됐다. 향후 쌍용양회나 한라시멘트를 인수할 경우 30~40%의 점유율을 가진 확고부동한 시장 지배적 사업자 등극이 가능하다.

쌍용양회와 한라시멘트를 인수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2위 사업자로서 안정적인 수익성 확보와 시장 지위 수성이 가능하다. 시장 재편 대응력은 물론이고 향후 시멘트 시장 M&A 2라운드가 펼쳐질 경우 매각자에 밀리지 않는 대등한 협상력을 보유하게 된 셈이다.

관련 전문가들이 한일시멘트의 이번 현대시멘트 인수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는 이유다.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쌍용양회와 동양시멘트 중 한 곳을 인수하는 것이 베스트였으나, 조금 늦긴 했지만 업계 재편 흐름을 놓치지 않고 현대시멘트를 인수한 것은 매우 적절한 판단이라 할 만하다"며 "향후 이어질 시장 변화와 PE 엑시트를 위한 M&A 2라운드에서 한일시멘트가 주도권을 잃지 않고 시장 흐름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지위를 확보하게 된 셈"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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