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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기술공단, 신동수의 파란만장 창업기 [전환기 엔지니어링업]①공무원 접고 '국전' 합류…정주영과 인연, 현대건설 이직 후 복귀

이상균 기자공개 2018-01-04 08:34:09

[편집자주]

엔지니어링은 기술 기반의 설계 산업이다. 본격적인 건설 공사에 앞서 인프라를 구축하는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기술 인력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산업이지만 정작 건설업에 비해 인지도가 낮다. 주요 수익원이었던 사회간접자본(SOC) 발주가 줄어드는 등 전환기를 맞고 있다. 더벨이 베일에 가려졌던 엔지니어링 업체들의 현주소와 향후 행보 등을 점검한다.

이 기사는 2018년 01월 02일 16:2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동명기술공단(이하 동명)의 역사는 신동수 회장(사진)의 삶과 맞닿아 있다. 전도유망한 공무원이었던 신 회장은 갑작스런 퇴직 이후 자의반 타의반 설계사무소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능력과 열정으로 사업을 꾸려갔지만 쉽지 않았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엔지니어링은 제대로 된 산업으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악조건 속에 고전분투를 하던 중 시공사로 이직했다가 다시 동명으로 복직하는 등 부침을 겪었다.

◇명동서 서적 구해 지하철 연구에 몰두

크기변환_신동수 총회장님
신 회장은 충북 청원군에서 1930년 출생했다. 1950년 청주사범을 졸업한 뒤 잠시 교편을 잡았다. 6.25 전쟁 중인 1952년 서울대 토목과에 입학해 1956년 졸업했다. 첫 직장은 건설부의 전신인 내무부 서울지방건설국이었다. 전후 복구사업이 한창인 시기로 이때 신 회장은 한강교 복구, 충주 목행대교, 당진 당진교, 단양 상진대교 등의 현장을 뛰어다녔다.

탄탄대로를 걸을 것 같았던 신 회장의 인생이 삐걱대기 시작한 것은 1960년 4.19 민주 항쟁이 일어난 직후다. 공직기강 확립 차원에서 군 미필자는 병역기피 여부를 불문하고 전원 퇴직 처리했다. 작은 키에 왜소한 체구로 병역 면제를 받았던 신 회장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신체검사를 다시 받았지만 역시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퇴직 이후 실의에 빠져있던 신 회장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 낸 이는 신현주 국전설계사무소 사장이었다. 신 사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1961년 2월 신 회장은 국전설계사무소(이하 국전)에 입사했다.

국전 입사 뒤 상무 직함을 달고 전공분야인 도로 및 교량사업을 적극적으로 챙겼다. 강화교, 거제교, 왜관교 등이 대표적이다. 때마침 5.16 군사정변 이후 토목사업이 활기를 띠었다.

1964년 서울시에서 발주한 '지하철 1호선 타당성조사' 사업은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 중 하나다. 지하철을 타보기는커녕 구경해본 적도 없는 신 회장은 명동 일대 서점을 뒤져 지하철 관련 서적을 구해 연구에 몰두했다. 지하철 교통망은 서울시 담당자와 교통량 조사결과를 근거로 협의해 결정했고 장래 교통량까지 추정했다.

문제가 됐던 추정 공사비는 서울시 담당과장이 갖고 있던 일본 나고야 실시설계 도면을 참고해 해결했다. 이렇게 발로 뛴 결과 지하철 각 노선의 구조물 일반도를 작성하고 굴착 토량, 거푸집, 콘크리트 철근 등의 값을 구해 추정 공사비를 산출할 수 있었다.

◇정주영 고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인연

1960년대 엔지니어링 업계는 영세성을 면치 못했다. 업체들의 부실 경영으로 우수 인력들이 공직으로 복직하거나 시공사로 이탈하는 사례가 많았다. 신 회장이 속한 국전도 마찬가지다. 여러 어려움이 닥치면서 그는 시공사에서 경험을 쌓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1966년 2월 현대건설로 이직한다. 내무부 근무 시절, 상진대교 감독을 하면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인연을 맺은 덕분이었다. 신 회장은 1년간 본사 생활을 마친 뒤, 거제대교, 서울대교, 경부고속도로 현장 소장을 맡았다.

시공사 업무는 엔지니어링과는 차원이 달랐다. 신 회장은 서울대교 시절이 자신의 토목인생 중 가장 힘든 시기라고 회고한다. '불도저'로 불리는 김현옥 옛 서울시장은 진흙투성이 땅 위에서 단 5개월 만에 공사를 완료하라고 독촉했다. 콜레라가 창궐하던 한여름, 시커먼 개울에 들어가 측량을 했다. 김 시장이 현장소장 사무실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24시간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건설현장 분위기는 해병대 지옥훈련소를 방불케 했다고 한다.

경부고속도로 건설현장도 만만치 않았다. 서울~오산 구간을 맡은 신 회장은 공정이 늦어 퇴출된 선임소장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굴착, 거푸집 조립, 철근 조립, 콘크리트 타설 등을 거의 동시에 진행했다. 하도급 업체들에게 현상금을 걸어 작업을 독려했고 24시간 돌관공사를 강행한 끝에 임무를 완수했다.

1969년 현대건설 본사로 복귀한 신 회장에게 신현주 국전 사장이 찾아온다. 이제 자신도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잔하니 회사를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신 회장은 당시 현장 실무자보다는 기술인, 설계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기억한다.

현장소장으로 근무할 당시 터널에서의 발파사고, 암반붕괴로 인한 압사사고, 홍수로 인한 익사사고, 휘발유가 덜 마른 작업복을 입고 모닥불을 쬐다 일어난 소사사고, 야간공사 중 실족사고 등을 지켜보면서 심적 고통이 심했던 탓이다. 결국 신 회장은 1970년 2월 국전을 인수하고 같은 해 6월 회사명을 동명기술공단으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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