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9년 04월 16일 07:4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 기업이 무너지고 있다. 앞으로 10년 내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들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이건희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2010년 3월 24일 삼성전자 회장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경영 복귀와 함께 이건희 회장은 사내 게시판을 통해 '위기론'을 화두로 던졌다. 10년 뒤 삼성을 대표할 제품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시 시작하자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CEO들은 해마다 위기를 말한다. 올해가 위기라고 임직원들을 독려한다. 전등을 끄게 하고 이면지를 쓰게 한다. 예산도 깎는다. 실제 아끼는 금액은 얼마 안되지만 그게 중요하지 않다. 경각심을 주는 게 목적이다.
시간이 지난 뒤 위기 상황이 닥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땐 미리 대비를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위기를 말할 땐 위기가 오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이건희 회장은 매년 위기론을 주창했다. 하지만 2010년 경영 복귀 메시지는 좀 더 무거웠다. 당시 삼성을 둘러싼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유로존에서 촉발한 금융 위기로 글로벌 경기 침체가 우려되던 시기였다. 소위 PIGS라 불리는 남유럽 국가의 재정 위기가 불거졌다. 글로벌 강자였던 모토롤라나 노키아가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실제로 몇해 안 있어 모토롤라와 노키아는 구조조정을 했고 회사를 쪼개 팔았다. 삼성보다 몸집이 몇배는 더 크고 기업가치가 더 높던 회사들이었다. 10년이 아니라 1~2년을 내다보기 힘들었다.
우여 곡절도 있었고 삼성이 휘청거릴 일도 많았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현 시점에 삼성은 건재하다.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이 사라진다고 했지만 반도체와 TV, 스마트폰은 여전히 삼성을 대표하고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다시 10년 뒤를 내다보면 어떨까. 현재 삼성의 대표 사업과 10년 뒤 대표 제품은 비슷할 것 같다. 스마트폰이나 반도체는 삼성을 따라올 경쟁상대가 눈에 띄지 않는다. 일부에선 자동차 전장 부품을 얘기하고 바이오 산업을 얘기한다. 이런 사업이 성장할 수 있겠지만 지금 삼성의 투자는 반도체에 쏠려 있다. 180조원 투자 계획을 내세웠는 데 대부분 반도체에 쓰인다.
반도체 산업이 앞으로도 계속 잘되면 된다. 잘하면 '위기'는 안 올 수 있다. 하지만 반도체가 휘청거리면 대안이 없다. 올해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자 삼성의 실적이 급전 직하했다. 한국의 수출 성적표까지 휘청거리고 있다. 10년 뒤 무슨일이 일어날진 아무도 모른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앞만 보고 가자'고 다그치는 메시지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대내외 악재를 겪으면서 조용한 리더십을 보이고 있다. 이 부회장이 직원들과 셀카를 찍고 공식 석상에 나서는 모습은 종종 목격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경영 구상에 대한 메시지를 아직 들리지 않는다. 내부에선 임원들을 다그치는 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조심스럽고, 여전히 조용하다.
구심점이 사라진 삼성에서 주요 CEO들은 '각자도생'하고 있다. 자신이 맡은 사업부에선 최선을 다하고 실적을 낸다. 계열사별로, 사업부문별로 경쟁력을 갖추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그 뿐이다.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을 뒤집고 '다시 시작하자'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위기를 말할 땐 위기가 오지 않는다. 반대로 위기를 말하지 않는 지금 진짜 위기가 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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