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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소임 다했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1-01-22 08:22:23

이 기사는 2021년 01월 22일 08:21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 1월 18일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이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확정받았다. 파기환송심은 2019년 10월 대법원이 피고가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등을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회삿돈으로 뇌물 86억8000만원을 건넨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기 때문에 형량만 정하는 재판이었다. 그런데 무려 1년 이상이 소요된 이유는 재판부가 양형에 고려할 수 있다고 해서 삼성이 새로 설치한 준법감시위원회 때문이다.

재판부는 삼성에 준법감시위원회의 설치가 아니라 준법감시제도의 정비를 주문했다. 그리고 누가 듣더라도 그 주문을 잘 이행하면 양형에 반영하겠다는 것으로 들렸다. 시민단체들은 반발했다. 봐주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재판부가 염두에 둔 미국 판례와 양형제도는 기업 자체의 범죄가 양벌규정을 통해 경영진 개인의 책임으로 이어질 때 효과적인 준법감시제도의 존재와 운영을 책임 감면에 반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그대로 가져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고 취지를 참고해서 우리는 또 다르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에서 준법감시제도가 부각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좀 의외의 일이 일어났다. 삼성이 ‘준법감시위원회’라는 전혀 색다른 처방을 들고 나온 것이다. 겉보기에는 각 계열사의 준법감시시스템을 정비하는 것보다 훨씬 파격적으로 보였다. 스케일도 컸고 여론에 등장하는 형태도 색달랐다. 위원장으로 내정된 인사가 기자회견까지 하는 뜻밖의 모습이 연출되었다.

삼성은 준법감시를 강조하는 재판부의 메시지를 창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전례와 법률적 근거가 없는 새로운 ‘실험’이어서 그 실효성을 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재판부는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이 검증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진정성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양형에 반영하지 않았다. 피고로서는 가장 큰 기대를 걸었던 대목이 아쉽게 무산된 것이다.

돌이켜 보면 모험이었다. 준법감시위원회는 다수의 외부인들로 구성되고 회사 외부에서 활동하는 새로운 기구다. 주식회사의 준법을 감시하는 임무를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체법인 상법에 존립과 권한에 관한 근거가 없어서 삼성의 주요 계열사들과 계약을 체결했다. 단체법과 계약법의 위력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로스쿨 신입생들도 잘 안다.

나아가, 준법감시위원회는 그 위상이 대단히 높게 설정되었다. 각사와 계약을 체결하기는 했지만 총수를 감시하는 임무까지 띠었으니 거의 지존의 기구다. 그런데 우리 법체계에서 주식회사 이사회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조직은 없다. 그래서 위상이 애매하다. 나아가, 구시대적이라고 해서 폐지된 미래전략실과 기능은 다르지만 어딘가 닮았다. 미래의 삼성은 각 계열사가 경영이든 준법감시든 독립성을 가지고 각사 책임으로 이행해야 한다. 모두를 아우르는 상위 조직은 바람직하지 않다. 조율이 필요하면 조직적 방법이 아닌 유기적 협조가 맞다.

거수기 논란은 많지만 이사회는 인류가 만들어서 쓰기 시작한지 300년이 넘은 제도다.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검증을 통과했다는 의미다. 삼성의 이사회가 준법감시 의지를 다지고 보완하기 위한 노력을 하겠다고 했다면 재판부가 이사회라는 제도가 실효성이 있는지를 검증하겠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의지를 확인하고 실질적인 개선 사항을 점검하는 것으로 족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테스트는 상대적으로 통과하기 쉬웠을 것으로 본다.

삼성은 향후에도 준법감시위원회를 지속시키겠다고 한다. 지금 해산한다면 그야말로 총수의 양형용이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총수의 양형용으로 설치했다고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준법감시위원회가 이 부회장의 양형에 무관심했다면 오히려 상도의가 아니다. 준법감시위원회라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그를 운영하기 위해 애쓴 사람들에게도 아무런 허물이 없다. 최선을 다했고 준법감시위원회도 삼성의 이사회가 못다한 실적을 냈다.

정작 문제의 핵심은 준법감시위원회의 태생적 결함이다. 삼성그룹 각사의 이사회와 경영진이 이 부담스럽고 어색한 조직을 머리 위에 이고 갈 필요가 없다. 구성도 목적에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기능은 각사의 이사회로 흡수시키면 된다. 준법감시위원회가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존재감을 잃게 될 가능성도 크다. 스스로 가장 큰 준법관련 리스크라고 지적했던 4세 승계 문제도 문제 자체를 없애버리는 방법으로 해결했다.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는 해산하고 각사 이사회의 기능과 책임을 강화하면서 준법감시제도도 그 맥락에서 함께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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