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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 조선업 구조조정 리뷰]손실 4조 끝에 마무리…10년여 걸친 굴곡의 역사①2000년대 호황기, 여신 전폭지원…부진 덫에 빠져 역대 첫 적자까지

김규희 기자공개 2021-04-09 08:09:58

[편집자주]

한국수출입은행이 대선조선을 매각하며 10년여에 걸친 중소형 조선사 구조조정의 대여정을 마무리했다. 돌이켜보면 조선업 구조조정 탓에 40년만에 첫 적자를 내는 아픔도 겪었고 청산이 유력했던 곳들의 구조조정에 성공하며 역할을 입증하는 성과도 냈다. 성공과 실패로 엇갈려 있는 조선사 구조조정 사례를 돌아보고 그동안의 성과와 남은 과제는 무엇일지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1년 04월 05일 14:11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산업은행과 함께 숱한 기업구조조정 업무를 도맡아 왔다. 대부분 산업은행이 주거래은행 역할을, 수출입은행은 최대 채권은행 역할을 맡았다. 부실기업에게 유동성을 지원하면서 강력한 재무구조 개선을 요구하고 엄중한 자구노력과 대주주 책임을 강조했다.

수출입은행은 대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산업은행과 달리 조선산업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기업의 자본재수출과 주요자원 수입, 해외투자 및 해외자원개발 등 대외경제협력에 필요한 금융을 제공한다는 설립 취지에 따라 수출입산업과 밀접한 조선 분야에서 국책금융기관 역할에 충실했다.

결국 오랜 기간 조선업계와 생사고락을 함께 했다. 호황기엔 함께 웃었고 불황 땐 아픔을 공유했다. 쇠락기에 접어든 시점에는 심폐소생에 온 힘을 다했다. 때론 SPP조선과 같은 파산 사례를, 때론 성동조선 매각 성공 성과를 냈다. 지난해엔 대선조선을 동일철강에 매각하며 10년여에 걸친 다사다난했던 조선산업 구조조정 행군의 종착지에 다가선 상황이다.

◇ 해운·조선 호황, 10년 못넘기고 '와르르'

수출입은행은 국가 수출입 지원이라는 목적에 따라 설립된 국책금융기관이다. 조선산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러다보니 수출입은행의 흥망성쇠는 조선산업과 궤를 같이할 수밖에 없다. 이 굴곡의 역사는 2000년대부터 이어져온 조선산업의 흐름과 맞닿아있다.

2000년대 전 세계적으로 해운산업과 함께 조선산업이 호황기에 접어들면서 조선산업에 무분별한 투자가 일어났다. 2007년 수주활동이 기록된 중소 조선소는 26개로 2004년보다 13개 늘었다. 3년만에 두 배 증가한 것이다. 같은기간 생산용량은 3배 이상 증가했다.


<출처=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2016년 2월 'Market Intelligence' 보고서>


중소조선사의 무분별한 난립은 2000년대 중반 벌크선의 공급 부족 영향이 컸다. 당시 기술적인 한계로 벌크선 이외의 선박을 수주할 수 없었던 신생 조선소들에게는 큰 기회가 됐다. 그만큼 우후죽순 중소조선소가 생겼다.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선박이 필요한 선주들은 기존 수주 물량으로 일정이 차있는 중견 조선소 대신 신생조선소에 발주를 맡겼다. 조선사 설립에 큰 비용이 들어가지만 당시 공급 부족으로 인해 벌크선 가격이 두 배 이상 올라 너나할 것 없이 조선업에 뛰어들었다.

호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듬해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전세계 업황이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애초에 벌크선은 건조가 쉬운 대신 선가가 낮아 인건비 등 고비용 구조인 한국조선소는 수지를 맞추기가 어려운 선박이었다. 때문에 2006년 이전에는 국내 중소조선소에서 거의 수주받지 않았던 선종이었다. 호황기 시절 중국과 과잉경쟁을 벌이다가 업황까지 부진하자 국내 조선업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조선업 부진은 2010년대까지 이어졌고 국내 조선산업은 시설설비 축소, 나아가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에 직면했다. 호황기 28개까지 늘어났던 중형 조선소는 2016년 7개사 정도로 줄었고 대형 조선소 역시 대규모 적자 이후 자율적으로 인원을 감축하고 재무구조 개선에 들어갔다.

<출처=한국수출입은행>
◇ 10년간 4조 상각, 창립 40년만에 첫 적자

2000년대 후반은 수출입은행의 ‘흑역사’로 꼽히는 기간이다. 조선산업 호황에 따른 대규모 지원이 ‘부실’이란 부메랑으로 이 시기 돌아왔기 때문이다. 당시 수출입은행은 급속도로 여신 규모를 늘렸다. 2008년 40조원에서 2009년 56조, 2010년 64조원을 공급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2009년 무렵 여신 규모 확대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 2009년은 산업은행이 정책금융공사와 분리되는 등 정책금융기관 재편이 이뤄진 시기다. 정책금융기관들은 살아남기 위해 덩치를 키워야 했고 여신지원 확대는 이를 보여주기 위한 좋은 수단이었다.

문제는 당시가 조선업황 부진이 막 시작되던 시기였다는 점이다. 성동·대선조선과 STX조선, SPP조선 등 중소 조선사들은 실적이 악화돼 줄줄이 자율협약을 신청했다. 시중은행은 부실 리스크를 떠안기 싫어 지원을 피했지만 덩치를 키우고 싶었던 수출입은행은 이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정부에 존재감을 드러내야 했던 욕구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여신 규모는 정책금융기관이 실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핵심 수치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출입은행은 국책금융 역할도 떠맡았다. 조선업황의 지속적인 악화로 인해 중소 조선사들이 도산 위기에 직면한 탓이다. 무너진 조선산업을 살리기 위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당수 지원이 수출입은행에게는 '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례로 SPP조선은 2010년 총 3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지원받았지만 2012년 586억원의 적자를 내며 부진을 면치 못했다. 심지어 2013년에는 1586억원으로 적자 폭이 늘었다. 2015년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은 4850억원의 자금을 추가 지원했다. 성동·대선조선, STX조선도 마찬가지다.

이로 인해 수출입은행은 2016년 설립 40년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내는 굴욕을 겪었다. 대형 조선사인 대우조선해양에까지 대규모 자금을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수출입은행은 대우조선에 약 9조원의 여신을 지원하고 있었다. 대우조선 여신 건전성이 ‘정상’에서 ‘요주의’로 한 단계 낮아지자 1조원이 넘는 금액을 충당금으로 쌓았다. 그만큼 적자 폭이 커졌다.

이후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수출입은행은 지난해 말 대선조선을 동일철강에 매각하는데 성공하며 10년에 걸친 조선업 주채권단 역할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 SPP조선은 안타깝게 파산했으나 성동조선은 네 번의 시도 끝에 지난해 5월 HSG 컨소시엄으로 매각에 성공하는 등 성과도 냈다.

다만 이런 사례들은 단편적인 수준이다. 수출입은행이 10여년간 겪은 조선업 구조조정 부담은 쉽게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무겁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수출입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수출입은행이 2010년 이후 구조조정을 실시한 기업은 총 388개다. 같은 기간 상각처리 한 부실여신 규모는 3조9532억원에 달한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부분의 중소조선사가 구조조정으로 사업을 전환하거나 가동을 중단한 상황에서 대선조선 M&A 성사로 성동조선에 이어 성공적인 중소조선사 M&A 사례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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