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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샐러드 100억 투자한 현대차그룹의 포석은 오픈 디지털 플랫폼 '디벨로퍼스' 경쟁력 강화···모빌리티 기업으로의 변신 '속도'

양도웅 기자공개 2021-08-12 07:08:11

이 기사는 2021년 08월 10일 14:0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개인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뱅크샐러드에 100억원을 투자했다. 현대차그룹이 영업활동으로만 분기마다 약 1조원(현대차 기준)의 현금을 창출하고, 수천억원의 지분투자도 하는 점을 고려하면 눈에 띄지 않는 투자 건일 수 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의 국내 벤처·스타트업 투자 사례 가운데 100억원이라는 규모는 전혀 작지 않다. 무엇보다 적극적으로 뱅크샐러드에 대한 투자 건을 알린 점은 이번 투자 목적이 시세/평가차익을 노린 '단순 투자'가 아니라는 점을 가리킨다. 실제 현대차그룹은 보도자료에 '전략적 사업 파트너 관계'라고 적시했다.

그럼 이제 시선은 베일에 가려진 양사의 협력 모델로 옮겨간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투자자인 현대차그룹이 뱅크샐러드의 어떤 기술에 '꽂혔는지'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핀테크 업체 가운데 뱅크샐러드는 데이터 소싱(수집·가공) 능력이 매우 뛰어난 곳"이라고 전했다.

매년 수백만대의 자동차를 제조해 판매하는 완성차 업체에 데이터 가공 능력이 대체 왜 필요할까. 이는 현재 현대차그룹이 구축한 오픈 데이터 플랫폼인 '디벨로퍼스'와 관련해서 답을 찾아야 할 질문이다.
재무상태와 손익계산서는 모두 2020년 기준이며 다른 항목은 8월10일자 법인등기 기준. (출처=뱅크샐러드 법인등기 및 사업보고서)
◇ 한국판 '오토노모'를 꿈꾼다···현대차그룹, 오픈 디지털 플랫폼 '디벨로퍼스' 론칭

완성차 업계가 '이동수단의 발전'을 넘어 '이동성의 혁신'에 주목하고 있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소위 말하는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2020년 기준)로 많은 600만여대의 자동차를 판매하는 현대차그룹도 마찬가지다.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진화를 위해 현대차그룹이 공들이는 부문 중 하나는 데이터 사업이다. 자동차가 이동수단이 아닌 하나의 생활공간으로 변모할수록 자동차엔 탑승자와 관련한 수많은 데이터가 축적될 수밖에 없다. 이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해 맞춤형 서비스와 제품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19년 10월 현대차를 시작으로 이듬해에 기아와 제네시스까지 오픈 데이터 플랫폼인 '디벨로퍼스'를 출범시켰다. 이 디벨로퍼스라는 생태계에서 현대차그룹은 고객 동의를 전제로 고객 자동차에 쌓인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자동차 관련 서비스를 개발하는 벤처·스타트업과 금융회사 등에 제공한다.

데이터를 제공받은 기업들은 이를 토대로 맞춤형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디벨로퍼스 생태계에 있는 현대차그룹 고객들에게 공급한다. 현대차그룹은 이 과정에서 데이터 제공에 대한 대가(일종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고 고객들에게 더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이점을 갖는다.

이러한 오픈 데이터 플랫폼은 글로벌 영역에서는 '오토노모(Otonomo)'가 먼저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2015년 이스라엘에서 설립돼 현재 미국에서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오토노모는 일종의 중개인으로서 자동차 데이터를 가진 완성차업체와 고객, 그리고 데이터를 받아 서비스를 개발하는 기업들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현대차그룹과 달리 완성차 업체는 아니다.

흥미로운 점은 오토노모가 구축한 생태계에 참여하는 완성차 업체 가운데 현대차그룹(기아)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현대차그룹이 오토노모의 플랫폼을 벤치마킹해 '디벨로퍼스'를 구축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현대자동차 오픈 데이터 플랫폼인 '디벨로퍼스'에 참여하는 주요 기업과 사업 영역. (출처=현대자동차 지속가능경영보고서)
◇ 플랫폼 구축자(者)의 과제, '얼마나 잘 가공된 데이터를 전달하느냐'

오픈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한 사업자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최대한 많은 회사가 활용할 수 있도록 원천 데이터를 잘 가공해 전달하는 것이다.

수백만대의 자동차에서 헤아리기 힘든 규모의 데이터가 현대차그룹에 유입된다. 이 데이터들은 아직 기준에 맞춰 분류가 되지 않은 데이터들이다. 분류가 되지 않은 데이터는 기계(컴퓨터)가 인식해 스스로 학습하고 분석한 뒤 특이점을 찾기 어렵다. 데이터 분석이 안 되는데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데이터를 최초에 받는 현대차그룹은 여러 기업의 기계가 빠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분류하고 가공하는 라벨링(labeling) 작업을 잘 수행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현대차그룹이 뱅크샐러드에 100억원의 투자를 단행한 이유를 유추해볼 수 있다.

2017년 데이터 기반의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명의 애플리케이션(앱)을 출시한 뱅크샐러드는 '가계부' 서비스로 잘 알려져 있다. 이 가계부는 단순히 사용자의 수입과 지출만을 자동으로 입력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사용자의 수입과 지출 내역을 분석해 맞춤형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자동으로 추천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원천이 된다.

여기서 촘촘하게 여러 항목으로 나뉜 가계부에 수많은 사람의 수입과 지출 데이터가 분류돼 쌓이는 과정은 곧 자동차의 수많은 정보가 기준에 맞춰 분류돼 축적되는 과정과 유사하다. 현대차그룹은 이 과정을 수행하는 기술을 고도화하기 위해 뱅크샐러드와 전략적 관계를 맺은 것으로 분석된다.

앞선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라벨링 기술이 탁월한 곳을 찾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이 부문에서 뱅크샐러드는 머신러닝급 엔진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미래 사업 확보를 위해 최근 지분투자한 주요 기업들. 이제 여기에 뱅크샐러드가 포함된다. (출처=기아 지속가능경영보고서)
◇ 현대차그룹 '보험 서비스 강화' 예고···중고차 사업서 '차계부' 활용도 또한 주목

뱅크샐러드와의 전략적 관계 구축은 상품과 서비스 개발도 염두에 두고 있다. 특히 보험 서비스를 콕 집어 자동차 생활 전반에서 혁신 서비스를 공동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디지털 손해보험사인 캐롯손해보험이 디벨로퍼스에 참여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현대차그룹의 보험 서비스 강화에 대한 관심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완성차 업체들이 자사가 확보한 데이터에 기반해 온라인(모바일) 보험 서비스를 강화하는 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은 상황이다. 예컨대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 1위 업체인 테슬라는 회사의 두 번째 '캐시카우'로 보험업을 꼽고 있다. 지난해 3분기 실적 발표 현장에서 일론 머스크 CEO는 "보험업의 미래가 밝다"라고 말했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기술만 제대로 보유하고 있다면, 그리고 뱅크샐러드와 같은 핀테크 업체들의 일부 도움만 받을 수 있다면 완성차 업체들은 자동차의 주행거리와 연비, 정비 횟수, 운전자의 습관 등과 관련한 데이터를 중간 과정 없이 직접 모을 수 있기 때문에 더 정확한 보험료를 산정하고 관련 상품을 추천할 수 있다.

아울러 보험 서비스 강화 과정에서 차곡차곡 쌓이는 자동차 사용 이력(일명 '차계부')은 현대차그룹이 현재 준비하는 인증 중고차 사업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것으로 전망된다. 차계부가 잘 정리된 차량은 상대적으로 더 높은 가격에 매매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또한 고객의 운전 습관 등을 더 자세히 아는 만큼 더 정확한 중고차 추천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플랫폼을 구축하는 역할뿐 아니라 플랫폼에서 적극적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도 맡을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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