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1년 09월 06일 07시52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야구는 감독이 하는가, 선수가 하는가.’ 야구와 관련한 해묵은 논쟁이다. 애경그룹을 보면서 당연하면서도 명확한 답이 떠올랐다. 둘 다 하는 게 맞다.감독의 가장 큰 역할은 적재적소에 선수를 기용하는 일이다. 다음은 상황에 따라 그리고 감독의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선수의 판단에 모두 개입하는 감독이 없듯 모든 판단을 선수에게 맡기는 감독도 없다. 흐름을 바꿀 만한 전략적 판단이 필요할 때 감독이 등장한다. 물론 모든 경기에서 선수 개인의 역량이 중요하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는 얘기다.
애경그룹도 비슷해 보인다. 변신하는 과정에서 채형석 총괄부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의 판단이 절대적 역할을 했을 건 분명해 보인다. 애경그룹은 출범 이후 간판 사업을 몇 차례나 바꾸면서 시대의 흐름에 적응해왔다. 1950년대 생활용품으로 출발해 1970년대 화학 분야에 진출했고 1990년대엔 유통 분야에 발을 내디뎠다. 2000년대에는 국내 첫 저비용항공사(LCC)를 설립하며 항공업에 진출했다.
방향이 정해진 뒤엔 전문경영인들의 공(功)을 빼놓을 수 없다. 완전히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면서도 실패 없이 사세를 확장할 수 있었던 이유로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전문경영인들이 지목된다.
현재 애경그룹의 CEO(최고경영자)들만 봐도 채 총괄부회장의 용인술을 엿볼 수 있다. 애경 출신이건 아니건 나이가 적건 많건 중요하지 않다. 주력 계열사 대표 대부분이 외부에서 영입된 인물이다. AK플라자의 경우 국내 백화점업계 최초로 1970년대생이 대표이사에 오르기도 했다.
좋은 감독이 좋은 선수들로 좋은 전략을 짰으니 웬만해선 이기는 게 당연해 보인다. 화학사업에 칼을 뽑은 애경그룹의 행보에 기대가 생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애경그룹에서 합병을 위한 TF가 만들어진 건 1년도 더 된 것으로 전해진다. 애경유화, 에이케이켐텍, 애경화학 등 화학 3사가 안정적 실적을 내고 있었지만 현실에 안주하다가는 ‘끓는 물 속의 개구리’처럼 어느 순간 도태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고민의 시작이었다.
합병법인 출범이 두달 남짓 남은 지금 내부에선 여전히 고민이 많고 여전히 분주하다. 오랫 동안 준비했음에도 '빅게임'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설렘보다 긴장감이 클 수밖에 없어보인다.
애경그룹 화학 3사는 11월 통합법인 ‘애경케미칼’(가칭) 출범과 동시에 서울 구로동을 떠나 홍대 사옥으로 둥지를 옮긴다. 2018년 대부분 주력 계열사가 사옥을 옮겼지만 화학 3사는 남아있었다. 진정한 홍대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1954년 영등포 비누공장에서 시작한 애경그룹은 1976년 구로동 사옥으로 본사를 옮긴 뒤 사업영역을 넒히면서 40개가 훌쩍 넘는 계열사를 거느리는 그룹으로 성장했다. 구로동이 애경그룹의 ‘과거’라면 홍대는 ‘미래’다. 홍대에서 얼마만큼 성장할까, 어떤 그룹으로 변신할까,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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