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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끊거나, 잇거나' [thebell note]

양도웅 기자공개 2021-11-15 07:32:47

이 기사는 2021년 11월 11일 08:2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아버지의 두 번째 차는 검은색 '무쏘'였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차의 절반이 망가지기 전까지 10년 가까이 유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나 지금이나 차와 운전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몰았던 차 중에 무쏘에 대한 '느낌'은 남다르다고 말씀하신 건 또렷하다. 당신을 지켜주기도 했고.

차를 잘 몰랐던 탓인지 10대 시절을 무쏘와 함께했지만 특별한 기억이 많진 않다. 단 이 장면만은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데, 아버지가 무쏘로 바꿨을 무렵 내가 살던 동네의 많은 차가 무쏘로 바뀌었다는 것. 인구 16만명의 소도시, 직업이 대부분 비슷한 아버지들의 취향이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아니면 무쏘라는 차가 그저 예쁘고 좋았다거나. 오히려 이쪽이 더 설득력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차들은 하나 같이 차별화된 디자인과 부족하지 않은 성능을 자랑한다. 무쏘는 당시 국산 SUV 중에 이례적으로 외국(영국)에서 디자인했고 심장은 메르세데스-벤츠의 것이었다.

지금처럼 무쏘는 종종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쌍용차의 역사뿐 아니라 국산 SUV 차량의 발전사를 말할 때 꼭 한 자리를 차지한다. 곡선보다는 직선을 활용한 외관과 볼륨감, 거기서 나오는 마초적인 분위기는 여전히 매력적이라며 '무쏘의 귀환'을 기다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전 주인들에게 무쏘로 대변되는 쌍용차 과거는 무가치했던 듯싶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쌍용차의 '기술'이었지 쌍용차의 '역사'가 아니었다. 그렇게 쌍용차 역사는 분절됐고 정체성은 일관성을 잃어갔다. 이럴진대 브랜드 이미지가 만들어지긴 어려웠다. '쌍슬람(맹목적 지지자)'이 생길리도 만무했다.

"얼마나 팔리겠어요?" 예전 쌍용차 관계자와 대화에서 무쏘의 귀환 가능성을 물었을 때 돌아온 반문이었다. 회사는 그때도 흑자 전환에 사활을 걸 때였다. 수익성 확보가 필요한 때 몇백대를 더 팔자고 '복고'를 선택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무쏘와 상반된 부드러운 곡선의 티볼리가 판매량을 이끌 때이기도 했다.

현재 인수 협상을 벌이는 에디슨모터스도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강영권 회장은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위해 사명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쌍용차라고 말하면 적자를 떠올리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라고 덧붙였다. 변화를 알리는 상징적 행위이겠지만 쌍용차 역사의 '종지부'이기도 하다.

큰돈을 들여 인수한 입장에서 피인수 기업의 역사를 존중하는 건 내키지 않는 일이다. 특히 쌍용차처럼 적자가 오래된 곳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외려 전 주인들의 실패는 수십 년간 켜켜이 쌓인 쌍용차 역사와 유산에 '접속'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새로운 주인이 해야 할 건 '끊는 게' 아닌 '잇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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