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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 M&A]'조건' 붙인 공정위, 국익 반하는 결정 '우려'이윤철 교수 "LCC 운수권 활용 어려워, 향후 협상서 불리"…'실리 없는 명분' 해석도

유수진 기자공개 2022-01-04 07:32:31

이 기사는 2021년 12월 30일 14:2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으로 잠정 결론 내렸다. 독과점 노선의 운수권과 주요시간대 슬롯을 반납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기업의 영업권 침해 논란에도 조건을 달아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대한항공과의 추가 협의, 해외 경쟁당국의 심사 상황 등을 반영해 내년 초 전원회의에서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이를 두고 항공 전문가들 사이에선 국익에 반하는 결정이란 지적이 나온다. 건전한 경쟁유발과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해 독과점 심사를 했는데 되레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소비자 부담이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오게 생겼다는 우려다. 항공업계 특수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공정위는 29일 양사가 보유한 국내공항 슬롯 중 경쟁제한성이 추정되는 것들을 반납하고 중복 노선의 운수권을 일부 재배분하는 방식의 시정조치를 예고했다. 운수권과 슬롯은 항공사가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무형자산이다. 이 같은 조치가 이행되기 전까진 항공료 인상을 제한하고 공급과 서비스 축소도 금지키로 했다.

심사보고서 내용이 비공개여서 구체적인 노선을 거론하진 않았다. 하지만 양사 결합 이후 인천-로스앤젤레스(LA), 뉴욕, 시애틀, 바르셀로나, 장자제, 프놈펜, 팔라우, 시드니 등 8개와 부산-나고야, 칭다오 등 2개 노선이 독점체제가 될 걸로 보고 있다. 이 중 유럽과 중국, 동남아 등 일부 항공비자유화 노선에서 운수권 반납이 예상된다.

공정위는 현행법상 반납된 운수권은 국내 항공사에만 재배분이 가능해 외항사로 넘어갈 가능성이 없다고 강조한다. 맞는 말이지만 전문가들은 저비용항공사(LCC)들이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 지에 주목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운수권을 제대로 활용하기가 만만치 않을 거란 점 때문이다. 운수권이 있다고 슬롯 확보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이윤철 항국항공대 교수는 "LCC가 투자 등 미래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기면 모를까 지금은 지원을 받아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라며 "운수권을 받더라도 실제 비행기를 띄우기까지 과정은 험난할 것이고 그동안 통합항공사의 경쟁력만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항공대에서 근무하지만 한국전략경영학회장과 산업정책연구원 이사장을 지낸 기업 M&A 전문가다.

운수권은 항공사가 아닌 각국 정부 소유다. 국토교통부 등 당국은 항공회담 등을 할 때 운수권 확보에 사활을 건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을 선점하기 위해 신경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국 국민 권익 증진 차원이다. 그렇게 어렵게 확보한 정부의 자산이 자칫 제대로 사용되지 못할 경우 향후 협상시 불리한 입장에 놓일 수 있다.

이 교수는 "국내에 대형항공사(FSC)가 더 있어 서로 운수권을 주고 받으면 국가적 차원에서 손실이 없지만 그게 아니니 결과적으로 외항사들에 줘버리는 격이 될 수 있다"며 "미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역할을 고려해 국내에서 독과점 관련 규제를 하지 않는 것처럼 국익을 우선으로 따져야 하는 이슈"라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목소리가 작아질 경우 피해가 고스란히 국내 소비자에게 돌아올 수 있다. 국적사의 몫이 줄어든 상황에서 소비자의 권익이 높아질 거라 기대하긴 어렵다. 공정위의 결정이 독과점 측면에서 엄격하게 판단했단 명분을 확보할진 몰라도 국가적 실리 차원에선 최선이 아니었을 수 있단 의미다.

공정위가 좀 더 신중하게 행동했어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아직 심사를 진행 중인 해외 경쟁당국이 여럿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이 조건을 걸면 비슷한 수준의 조치는 'OK'라는 시그널처럼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대한 국익을 위한 선택을 하고 해외 당국을 설득해야 하는데 오히려 시정조치를 줘도 된다는 빌미만 준 격"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대한항공이 자칫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단 우려도 내놓는다. 항공업계 재편을 이끌고자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결정했는데 시장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으며 경쟁력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매분기 흑자를 내고 있지만 순환휴업 등으로 인한 인건비 감소 등의 영향이 크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 인력 구조조정은 없을 거라고 밝혔다. 하지만 합병 시너지는커녕 당장 운수권과 슬롯이 줄어 영업에 지장이 생긴다면 잉여인력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변이바이러스 창궐로 여객 반등 시점이 불투명 상황에서 대한항공의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대한항공 측은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하게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정리해 공정위와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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