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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M&A 전략을 묻다]'전장·반도체' 큰 그림 그린 삼성, 하만 인수 6년...여전히 성패 기로⑦"글로벌 전장 시장 보는 통찰 아쉽다" 의견도…반전 만들 삼성의 카드는

김혜란 기자공개 2022-11-15 13:13:28

[편집자주]

반도체 기업 간 인수·합병(M&A)은 다른 섹터에서 이뤄지는 딜에 비해 난이도가 높다. 장벽 높은 반독점심사, 조 단위에 이르는 위약금. 이런 특성 탓에 원매자가 인수 의지가 있어도 함부로 뛰어들기가 어렵다. 그러나 M&A가 취약한 국내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는 데 매우 유리한 전략임은 분명하다. 'K-반도체' 역시 해외 기업 인수를 통해 생태계를 넓혀왔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전쟁'이 심화되며 M&A 환경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선택할 전략과 성공 가능성을 가늠해 본다.

이 기사는 2022년 11월 10일 14:5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전자 M&A 역사상 미국 카오디오 전문 기업 하만(Harman) 인수만큼 사이즈나 임팩트가 큰 딜은 아직 없다. 물론 기업의 M&A 전략을 말할 때 딜 규모만 중요한 건 아니다. 장기적으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인수했느냐, 그리고 인수 후에는 처음 계획한 대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느냐를 따져봐야 한다.

사실 하만 M&A는 인수가 결정된 당시에도 삼성전자 내부에서조차 우려가 나왔었다. 인수한 지 6년이 흐른 지금도 성패를 두고 안팎에서 의견이 엇갈린다. M&A 전문가들은 삼성이 전장(자동차전자장비)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키우려는 큰 그림 속에서 하만을 인수했으나, 하만과 부품(반도체), 완성품(세트) 사업부를 묶어내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전략적 스케치를 여전히 완성하지 못한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하만의 사례는 앞으로 삼성 DS(반도체)가 먹거리로 점찍은 '미래차 반도체'를 키우기 위한 M&A를 단행할 때 어떤 점을 유념해야 할지 많은 시사점을 준다.

◇내부서도 '이견' 하만 인수 스토리

삼성이 하만을 인수한 시점은 전장 사업 진출이란 새 경영 비전을 제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삼성전자는 2015년 말 박종환 부사장을 팀으로 한 전장사업팀을 신설했다. 전장사업팀은 초기에 인포테인먼트, 자율주행 관련 사업을 검토하며 무선사업부, 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부 등과의 협력을 모색했다.

전장사업팀은 무선사업부의 V2X(Vehicle to Everything) 기술을 중심으로 당시 독일 한 완성차 업체와 협업하며 사업 방향성을 잡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V2X는 자동차가 운행 중에 모든 사물과 통신하면서 운전자에게 각종 정보를 제공한다는 개념이다.

하만 인수는 그 이듬해인 2016년 이뤄졌다. 전장 사업에 제대로 진출하려면 해당 분야 시장과 인재, 기술을 단번에 흡수할 수 있는 M&A가 필요하다는 데는 내부에서도 공감대가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하만 인수를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하만 M&A는 전장사업팀도 모르게 당시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이 비밀리에 진행했고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당시 삼성전자 임원이었던 한 인사는 "전장사업팀 수장도 모르게 미전실의 정현호 당시 부사장과 전략혁신센터(SSIC) 손영권 사장 주도로 단행돼 (주요 임원들도 딜이 진척되고 나서야 알고) 상당히 놀랐었다"며 "당시 임원들의 반대가 많았다"고 회고했다. 하만은 (완성차 업체에 직접 납품하는) 1차 벤더인데, 수많은 1차 벤더를 고객사로 끌어들여야 하는 삼성이 하만을 인수하면 득보다 실이 많을 거라는 우려였다.

삼성의 무선데이터 서비스인 텔레매틱스(Telematics) 기술 관련 사업은 2차 벤더로서 1차 벤더에 팔고, 최종적으로 자동차업체로 들어가는 구조를 기본으로 한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밸류체인 내 1차 벤더가 돼 버리면 이런 구상이 모두 어그러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태생 다른 삼성과 하만, 시너지 어려운 이유

삼성전자는 하만 인수 직후부터 3년 동안은 독립적으로 운영하게 둔다는 방침을 세운 대신 삼성 내부 사업부와의 협력 모델을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러나 큰 성과는 없었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임원은 "삼성이 하만을 인수할 때 다들 생각했던 게 추가적인 볼트온(유관기업인수) M&A나 DS사업부의 신사업 진출 등을 통해 전기차 시장에 쭉쭉 들어올 것으로 기대했었다"며 "하지만 이후 아무것도 없고 전략도 보이지 않는다는 게 시장이 실망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하만은 삼성전자와 M&A 협의 시작 전과 직후 커넥티드카(차량 내에 통신장치가 있어 차량 외부와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운전자에게 다양한 정보를 주는 차) 서비스 업체를 많이 인수해 몸값을 높였다. 협상 과정에서도 마케팅 포인트로 커넥티드 서비스 그룹이 삼성과 협업할 수 있는 좋은 모델이라는 점을 내세웠으나 인수 후 막상 들여다보니 기술이나 인재 면에서 활용가치가 낮았다고 한다.

13년간 하만을 이끌었던 디네시 팔리월(Dinesh Paliwal) 최고경영자(CEO)의 퇴임을 기점으로 영업 인력들이 대거 하만을 떠나면서 악재가 겹쳤다.

앞선 인사는 "하만은 삼성은 태생과 체질이 달라 잘 안 맞는다. 하만은 자동차 회사로부터 프로젝트를 받아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주는, 철저히 사람이 발로 뛰는 조직"이라며 "핵심 인력이 이탈하면서 실적 부진에 당면하자 내부에서도 인수를 안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컸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제시한 디지털 콕핏 그래픽. 엔터테인먼트뿐만 아니라 원격 업무를 위한 영상 회의부터 1인 미디어 영상 제작을 위한 촬영과 편집까지 이동 중에도 끊김 없이 회사 업무나 개인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게 핵심.
삼성은 하만의 포트폴리오를 보완하기 위해 미국 V2X 솔루션 스타트업 사바리와 독일 AR 헤드업디스플레이(HUD) 소프트웨어 전문 아포스테라를 볼트온했다. 아포스테라의 경우 인수가가 2000억원으로 규모가 꽤 큰 딜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포스테라 M&A를 성공모델로 만들기까지는 삼성이 예상치 못한 난관을 넘어야 할 수 있다.

삼성은 하만이 장악한 인포테인먼트 시장에서 독일 보쉬와 컨티넨탈 등이 영향력을 키우는 게 하만의 증강현실(AR) 기술 부족으로 경쟁력이 약화된 탓이라고 판단했다. 자동차 회사는 센서와 디스플레이, 소프트웨어 기술을 벤더 각각에서 받아 합쳐서 자사 시스템에 맞게 최적화시킨다. 아포스테라는 시스템 최적화로 지연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춘 회사다.

삼성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독일 3사(아우디, 벤츠, BMW)는 1차 벤더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아포스테라를 밀어줬다"며 "그런데 1차 벤더 하만이 아포스테라를 인수해버리니 하만에 일을 다 줘야 하는 꼴이 돼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하만이나 아포스테라 등 M&A를 보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전체 흐름을 깊이 읽지 못하고 단기적으로만 보고 딜을 단행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의 전장 밑그림은 여전히 미완성

시작과 과정이 어떻든 삼성이 이제는 자율주행 시대를 대비한 첨단 전장 신사업에서 폭발력을 보여줘야 한다. 독일 인피니언, 네덜란드 NXP 등 차량용 반도체 기업 인수설이 계속 나오는 것도 DS에 이런 시장의 기대와 우려가 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확실한 전장 사업 방향성이 잡힌 것도 아니고 아직 교통정리도 덜 된 것으로 보인다. 그룹의 큰 구상은 삼성SDI가 내놓을 전고체 배터리를 중심으로, DX와 하만은 디지털 콕핏(Digital Cockpit, 차량 내 멀티디스플레이)을, DS는 전고체 전지를 구동하게 하는 각종 파워IC 등 반도체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DS에선 경계현 대표이사 사장(DS부문장)이 작년 취임 후 구성한 전기자동차태스크포스(TF)를 중심으로 먹거리를 찾고 있다. 원래 DS에 있다가 종합기술원으로 이동한 자율주행용 칩 개발 전담팀, 최근 DX 직속으로 설치한 '신사업TF'도 있다.

삼성은 하만이 (DS와 종합기술원이 맡았던) 자율주행 기술 개발을 맡게 할지 등 내부 사업 조율 문제를 두고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앞으로 이재용 회장과 정현호 부회장 중심으로 이 부분에 대해 빨리 결정을 내려야 다음 스텝을 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 하만 멕시코공장을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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