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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주 수요예측 어디로]재량권 부족한 인수주선인에 책임만 '잔뜩'④ 규제에 막힌 주관사 물량배정권, 2018년 계획 온데간데 없어

최윤신 기자공개 2023-01-30 13:28:54

이 기사는 2023년 01월 26일 16:4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금융당국이 허수 청약을 근절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가운데, 상장주선인인 증권사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허수성 청약과 관련한 책임이 모두 IPO 주관사의 몫으로 남겨져서다.

불만은 단순히 과도한 책임때문만은 아니다. 수년전부터 문제로 지적된 ‘시장 자율성 제고’와 관련해선 제대로 된 해결책이 나오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수요예측 제도의 부작용이 상당부분 당국의 과도한 개입에 따른 것인데,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는 데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이 제기된다.

증권업계에선 상장주선인에 높은 자율성을 부여해 시장 중심의 제도를 안착시킬 게 아니라면 현재 추진하는 방안과 같은 과도한 책임을 부여하는 건 무리수라고 입을 모은다.

◇ 주관사 재량으로 배정가능한 물량 40% 불과

금융당국은 최근 발표한 IPO 시장 건전성 제고방안에서 허수청약을 근절하기 위한 방안으로 상장주관사가 주금납입능력을 확인할 것을 의무화 하기로 했다. 이런 의무를 게을리 한 주관사는 업무 정지 등 제재하겠다는 으름장도 놨다. 오는 4월 금융투자업 규정 등을 개정하는 등 도입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당국의 이런 방침에 증권사 IPO 담당자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현행 제도에서도 각 주관사는 각 기관의 주금 납입 능력을 검토하고 있는데, 공공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분명하다. 각 기관이 제출하는 서류만으로 각 기관의 현황을 파악하는 게 고작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앞서 2년간의 공모주 호황기에 공모주 투자기관이 우후죽순 만들어져 수요예측을 진행하면 2000개 이상의 기관투자자가 들어온다”며 “현실적으로 이를 모두 세밀히 검증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증권업계가 불만을 갖는 건 단순히 업무가 복잡해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상장주관사의 자율성을 높이지 않고 책임만을 키우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지면 수요예측의 프라이싱 기능을 되살린다는 정책 목표 실현이 불가능할 것이란 우려가 기저에 있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수요예측 제도가 프라이싱 기능을 잃은 건 결국 관 주도로 도입·운영됐기 때문”이라며 “시장기능을 이용해 프라이싱을 되살리려면 플레이어들에게 자율성과 책임을 동시에 줘야 하는데, 관이 주도권을 놓지 않고 책임만을 전가하려 하고 있어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내 IPO 시장에서 주관사의 물량 배분에 대한 재량권은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한된 상태다. 주관사가 배정할 수 있는 물량만 봐도 수요예측과 배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주관사의 재량권이 떨어진다는 게 확연히 드러난다.

‘증권인수업무 등에 대한 규정’에 따르면 IPO 공모에서 기관이 아닌 개인투자자들에게 25% 이상의 물량을 배정해야 한다. 이와 함께 하이일드 펀드(고위험고수익투자신탁)에 5%의 물량을 배정해야 한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유가증권시장의 경우 우리사주조합에 공모주식 수의 20%를 의무배정해야 하며, 코스닥 시장에선 벤처펀드(벤처기업투자신탁)에 공모주식의 30%를 배정하는 게 의무다. 이를 고려하면 실제 주관사가 배정을 결정할 수 있는 물량은 공모주식 수의 40~50% 안팎에 불과하다. 공모물량 대부분을 주관사가 자율적으로 배정하는 미국 등과 차이가 크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진작부터 제기돼 왔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앞서 ‘한국 신규공모시장의 구조분석’ 보고서를 통해 “인수인이 공모주 물량 배정에 대해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는 수요예측 제도의 효율성 달성에 핵심적인 조건”이라며 “하지만 국내 수요예측 제도에서는 인수인의 물량배정권이 규제에 의해 상당부분 제한되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국 역시 이런 문제에 대해 인식을 같이했지만 관련 제도 개선에서는 이같은 방향성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은 앞서 2018년 11월 발표한 자본시장 혁신과제에서 신주배정과 관련한 공적 규제를 단계적으로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은 바 있다. 특히 하이일드펀드 등 공모주 배정에 있어 주관사 자율배분 물량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놔 증권업계에선 기대감이 컸다.

당시 공모주식의 10%였던 하이일드 펀드에 대한 공모주 우선배정 혜택이 2020년 말 일몰 예정이었던 만큼, 적어도 10% 이상의 물량만큼이라도 주관사의 배정 재량권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글로벌 양적완화로 공모주 시장에 투자수요가 몰리며 이같은 정책 방향성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었다. 하이일드펀드에 대한 우선배정은 5%로 축소된 채 유지됐고, 줄어든 5%는 일반투자자 몫으로 넘어갔다. 수요예측과 관련한 주관사의 재량권은 전혀 늘어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으로 개인투자자들의 공모주 투자수요가 늘어나자 정치권에서 일반청약 배정 확대를 요구했고, 이에 당국의 근시안적 정책이 영합했다”며 “결과적으로 추진하던 자본시장 혁신방안은 방향성을 상실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 "제대로된 '프라이싱 기능' 능력갖춘 기관투자자 선별에서 비롯"

남은 절반의 배정물량에도 주관사의 재량권이 제대로 반영된다고 보기 어렵다. 수요예측 참여자격을 갖춘 모든 기관으로부터 수요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형평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관련 규정에서 ‘공평하고 합리적인 배정원칙’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 IPO 시장에서 주관사가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맺은 기관투자가만을 수요예측에 참여시킬 수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당국은 이번에 내놓은 방안에서 주관사로 하여금 불성실 수요예측기관에 대해 수요예측 참여를 제한하거나 허수성 청약기관에 배정물량을 대폭 축소하는 등 페널티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업계에선 이 정도로는 자율성을 제고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기업을 제대로 분석해 가격을 분석할 수 있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기관투자자 풀을 갖춰야만 수요예측이 제 기능을 할 수 있고 주관사의 역량도 발전한다"며 "향후 코너스톤 제도 도입을 위한 징검다리 차원에서라도 수요예측과 배정에 대한 주관사의 자율성을 크게 열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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