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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선의 그린오션]준비된 총수가 준비하는 HD현대의 '대전환'①조선업 암흑기 거치며 경험 축적… 조선회사 넘어 해상 밸류체인회사 발돋움 준비

강용규 기자공개 2023-07-13 07:17:40

[편집자주]

'회장님의 어떤 것'은 특별하다. 최고 경영자가 주목한 기술이나 제품이 곧 기업의 미래이자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거나 글로벌 시장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오너의 역할은 아니겠지만 의사결정권자의 무게감은 더없이 막중하다. 더벨이 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진들이 낙점한 기술·제품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전망해 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7월 11일 17:2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985년 일본의 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는 1983년의 선박 건조량을 기준으로 현대중공업을 글로벌 조선사 순위표의 최상단에 올려놓았다. 1972년 출범 이후 10여년만에 달성한 쾌거다. 1983년은 현대중공업이 연간 수주량 기준으로도 1위에 오른 해였다. 이후 현대중공업에는 '세계 1위 조선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기업집단의 이름이 HD현대로 바뀐 지금도 세계 1위 조선사의 수식어는 유효하다. 다만 과거만큼의 위상은 아니다. 국내에도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 등 강력한 경쟁자가 있는데다 중국의 CSSC(중국선박집단유한공사)에 2020년 잠시 수주잔고 기준 1위를 내준 적도 있다.

조선업은 핵심 생산공정인 용접을 위해 사람의 손을 필요로 하는 노동 집약적 산업이다. HD현대를 포함한 국내 조선사들이 결국에는 중국 등 저임금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경쟁국 조선사들에 역전을 허용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HD현대에게 바다는 결국 '레드오션'이 되어가는 것일까. 오너 3세 정기선 HD현대그룹 사장은 이처럼 그룹 조선산업의 변곡점이 필요한 상황에서 '바다의 대전환(Ocean Transformation)'이라는 그린오션의 화두를 내세우며 경영 전면에 나섰다.

정기선 HD현대 대표이사 사장이 2023년 1월4일 CES2023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발언하고 있다. (자료=HD현대)

◇ 정기선 사장은 왜 그린오션을 바라볼까

그린오션은 친환경 분야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시장을 뜻하는 경영 용어다. 경쟁이 치열해 수익성이 낮은 시장을 레드오션, 경쟁이 느슨한 시장을 블루오션이라고 일컫는 데에서 파생된 말이다. 블루오션이 단순히 신사업 발굴을 통해 개척한 시장을 의미한다면 그린오션은 여기에 친환경을 통한 지속가능성 확보의 가치가 더해진 개념이다.

바다에서의 그린오션 찾기는 해운업계뿐만 아니라 그 후방산업인 조선업계의 오래된 공통과제다. 국제해사기구(IMO)는 1973년 마르폴 협약(MARPOL, 해양오염 방지협약)을 통해 해상 환경기준의 지속 강화를 천명했으며 이후 협약 부속서를 통해 선박의 기름, 유해 액체물질, 오폐수, 해양 파편,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등 물질의 배출 기준이 차례로 강력해져 왔다.

최근에는 탄소가 국제해사기구의 주요 감축 대상이 되고 있다. 해운업은 글로벌 탄소배출량의 3%가 발생하는 산업으로 탄소중립을 지향하는 각국 정부들의 주요 타겟이다. 친환경성이 높은 선박을 향한 선주들의 갈증은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

정 사장이 HD현대그룹의 경영수업을 받은 주 무대는 영업 분야다. 현대중공업(현 HD한국조선해양)에서 경영기획팀 선박영업부 수석부장, 조선해양영업총괄부문장 전무, 그룹선박해양영업본부 대표 부사장 등 영업 분야의 주요 직책을 역임하며 그룹 최고의 영업 전문가인 가삼현 HD현대그룹 부회장과 함께 세계 각국의 선주들을 만났다.

정 사장은 친환경 선박에 대한 선주들의 갈증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린오션을 HD현대그룹의 경영 화두로 제시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인 셈이다.

2016년 9월3일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앞줄 오른쪽)가 러시아 국영석유회사 로스네프트의 파벨 표도르프 부사장(앞줄 왼쪽)과 양사 협력 합의서에 서명하는 모습. 이를 가삼현 부사장이 지켜보고 있다. (자료=HD현대)

◇ 고난의 경험으로 다듬은 그린오션 전략 '바다의 대전환'

정 사장이 처음 HD현대그룹에 발을 들인 것은 2009년 1월 현대중공업(현 HD한국조선해양)에 재무팀 대리로 입사하면서다. 그룹 오너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아들인 정 사장이 HD현대그룹에 발을 들인 그 순간부터 재계에서는 정 사장을 그룹의 차기 총수'로 여겼다.

정 사장은 2009년 8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뒤 크레디트스위스, 보스턴컨설팅그룹 등에서 회사생활을 하며 경영에 대한 감각을 키웠다. 그가 다시 현대중공업으로 돌아온 것은 2013년이다. 조 단위 영업이익을 내며 승승장구하던 현대중공업이 2014년 3조2740억원, 2015년 1조5849억원의 적자를 내며 흔들리기 직전이었다.

이후 정 사장은 2016년의 선박 발주 가뭄에서 시작해 2020년 코로나19까지 이어진 조선업의 암흑기를 거치며 HD현대그룹의 경쟁력 확보에 힘썼다.

주 전장인 수주영업에서의 성과뿐만 아니라 선박 엔지니어링 계열사 현대글로벌서비스의 설립을 주도했고 지주사 경영지원실장을 겸임하며 미래 신사업을 발굴하기 위한 '미래위원회'를 설립해 직접 위원장을 맡는 등 다방면에서 분투했다.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며 오너 경영인으로서 전면에 나설 채비를 갖춘 것이다.

정 사장은 2021년 말 HD현대그룹 임원인사를 통해 사장 승진과 함께 그룹 지주사 HD현대와 조선 중간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의 대표이사에 내정되면서 본격적으로 그룹 경영의 전면에 서게 됐다.

이후 그는 HD현대그룹을 이끌고 세계 최대 전자제품 박람회 CES에 2022년과 2023년 연속으로 참가했다. 두 번째 참가에서 정 사장은 '바다의 대전환(Ocean Transformation)'을 선도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며 HD현대그룹의 그린오션 전략을 구체화했다.

바다의 대전환은 본업인 조선업에서 친환경 선박 건조역량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스마트선박 플랫폼을 활용한 자율운항 시스템으로 선박을 관리하고 차세대 청정에너지원인 수소를 직접 생산하는 등 해상 에너지 운송 밸류체인의 모든 단계를 HD현대그룹이 이끌겠다는 청사진이다. 바다를 무대로 경험을 쌓아 온 정 사장의 경영적 야심이 녹아 있는 계획이다.


◇ 정기선 사장의 그린오션 전략, 성장 넘어 생존의 과제

정 사장이 바다의 대전환을 통해 HD현대그룹의 그린오션을 발굴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것은 단순히 친환경 선박을 잘 만드는 것만으로는 결국 따라잡힌다는 것은 위기의식에서 시작된 것으로 재계는 바라본다.

CSSC를 위시한 중국 조선사들의 맹추격에도 HD현대그룹을 포함한 한국 조선사들이 중국과 격차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LNG추진선을 비롯한 친환경 선박 분야에서 그들보다 앞선 건조역량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환경 선박의 앞선 건조역량은 정기선 사장에게 자신감의 원천인 동시에 과제이기도 하다. 선박은 공급능력이 제한된 시장이며 한국 조선사들이 미처 수주하지 못한 친환경 선박 일감을 추격자들이 역량을 축적하는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다.

LNG운반선이 좋은 사례로 꼽힌다. 2018년 중국 조선사가 건조한 LNG운반선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엔진 결함으로 운항을 멈추는 사고가 발생하자 국내 조선업계에서는 아직 고부가 선박에 대한 기술적 우위가 충분하다는 낙관론이 잠시 힘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중국 조선사들은 카타르의 대규모 LNG운반선 발주 프로그램에 국내 조선사들과 함께 참여해 물량을 따 가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중국 조선사들에 같은 수준을 허용하는 순간 HD현대그룹에는 임금 부담이 비교적 높다는 약점만이 남는다. HD현대그룹은 추격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갈수록 강력한 친환경성을 요구받는 조선업 패러다임의 전환에서 끊임없이 최선두에 서 있어야 한다. 정 사장이 제시한 바다의 대전환은 단순히 HD현대그룹의 성장을 위한 목표를 넘어 생존을 향한 목표이기도 한 셈이다.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한 200K급 LNG운반선. (자료=HD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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