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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그룹 문화사업 A to Z]젊은 CEO의 야심, '문화보국'으로 꽃 피우다①이병철의 사업보국, 이재현의 경영철학으로 대물림…문화사업으로 '온리원' 도약

이지혜 기자공개 2024-01-18 09:20:22

[편집자주]

예술가 개인은 가난했을지라도 예술을 키운 건 자본이었다. 유럽의 메디치 가문이 대표적이다. 르네상스 시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메디치 가문의 자본은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등 미술사에 남는 거장을 키워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식품, 건설, 전자 등 영위한 사업은 저마다 달랐어도 이들이 축적한 자본 덕분에 개인의 창의성이 작품으로, 예술로, 문화로, 산업으로 꽃 피울 수 있었다. 한국의 문화산업을 이끈 기업은 어디일까. 이들은 왜 문화에 관심을 뒀을까. 더벨이 한국 문화산업을 키워낸 기업들을 톺아봤다.

이 기사는 2024년 01월 16일 08:3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문화를 만드는 일은 CJ가 가장 잘 하는 일입니다.”

CJ그룹을 검색했을 때 가장 먼저 뜨는 문장이다. 그도 그럴 것이 CJ그룹은 영화, 드라마, 예능, 음악, 뮤지컬, 식음료 등 대중문화의 모든 분야에 걸쳐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CJ그룹을 빼놓고 한국 대중문화사를 논할 수 없을 정도다.

이는 ‘문화보국(文化保國)’의 신념에서 비롯됐다. 말 그대로 문화로 나라를 지켜낸다는 의미의 이 말은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평소 가르침이기도 했다. “문화가 없으면 나라도 없다”, “문화는 창조되고 수용되어 모든 국민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닌 고 이 회장의 가르침을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받아들여 발전시켰다.

덕분에 CJ그룹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칸 영화제 진출작품을 배출했다. CJ그룹이 투자, 배급한 영화가 칸 영화제의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2020년 선보인 '기생충'은 아카데미 4관왕은 물론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까지 타며 문화강국으로서 한국의 면모를 전세계에 과시했다.

CJ그룹이 문화산업에 관심을 둔 건 언제일까. 등 외국계 콘텐츠 기업의 공세에도 꿋꿋하게 버티고 선 CJ그룹의 저력은 무엇일까. 역사를 시작으로 CJ그룹 문화사업의 비전을 더벨이 펼쳐봤다.



◇이병철 회장의 ‘사업보국’, 이재현의 문화사업 야심으로

1990년대. 30대의 젊은 경영인이었던 이 회장은 제일제당만으로 야심을 채울 수 없었다. 삼성그룹에서 제일제당이 본격적으로 계열분리하며 독립을 선언하던 때였다. 1987년 고 이병철 회장이 세상을 떠나고 후계 경영이 본격화하던 시기, 이 회장은 그 누구보다 기업과 사업을 크게 키우고 싶었다.


1953년 제일제당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해 한국 최초로 설탕을 생산, 이후 제분사업과 조미료사업, 사료사업, 식용유, 육가공사업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한국 최고의 종합 식품회사로 성장했지만 젊은 CEO의 포부는 그보다 더 컸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은 아래 세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새 먹거리를 발굴하고자 고민했다. △’최초·최고·차별화 등 온리원정신에 부합하는가?’ △‘제일제당의 창업이념인 사업보국·인재제일·합리추구와 맞닿아 있는가?’ △‘글로벌 사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가?’ 등이다.

문화사업은 이 기준에 딱 들어 맞았다. 할아버지의 가르침 ‘사업보국’을 실현해 나라를 지키면서도 이익을 낼 수 있었고 해외 진출도 노릴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1995년 CJ그룹이 ‘독립경영’과 함께 그룹의 비전을 ‘생활문화기업’으로 선포한 배경이다. 기존에 영위하던 △식품&식품서비스 외에 △생명공학 △물류&신유통 △엔터테인먼트&미디어 등 4대 사업군으로 CJ그룹의 핵심축을 넓혔다.

◇드림웍스와 손잡고 영화업계 ‘최초, 최고’의 온리원으로 도약

CJ그룹이 ‘생활문화기업’을 비전으로 선포하며 가장 먼저 주목한 사업은 바로 영화였다. 문화 사랑은 이병철 회장 때부터 대를 이어온 것이었지만 선대와 결은 달랐다. 이병철 회장은 30대부터 미술에 심취했지만 책, 회화, 불상, 도자기 등에 주로 관심을 뒀다. 반면 이 회장은 대중문화에 뜻을 뒀다.

CJ그룹이 대중문화의 대표 격인 영화사업에 주목한 것도 이런 맥락일 수 있다. 이 회장이 영화사업에 뛰어든 자세도 여느 재벌 후계자와 달랐다. 그는 운동화에 청바지, 티셔츠를 입고 피자와 콜라를 주문해 먹으며 드림웍스 관계자와 투자 협상을 진행했다. 동양의 경영자는 권위적이라는 할리우드의 선입견을 깨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제일제당은 1995년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별’이었던 드림웍스에 투자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월트디즈니 영화사의 대표인 제프리 카젠버그, 음반업계의 마술사라 불렸던 데이비드 게펜이 뭉쳐 ‘드림웍스SKG’를 설립했다. 덕분에 CJ그룹은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의 드림웍스 작품 판권을 보유하게 됐다.

물론 반대도 만만찮았다. 종합식품기업으로서 안정적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던 제일제당이었기에 굳이 영화사업에 거액을 투자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구심이 임직원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투자규모도 이런 의구심을 키우는 데 한 몫했다. CJ그룹, 당시 제일제당은 총 드림웍스SKG의 투자금 10억 달러 가운데 30% 지분을 투자해 2대 주주로 경영에 참여했다. 3억 달러(한화 3300억원)라는 투자규모도 당시 제일제당에게 버거운 수준이었다. 연간 매출의 20%가 넘었다.

그러나 이 회장은 ‘문화가 미래’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투자를 강행했다. 더욱이 영화사업은 신사업 투자 기준에 부합했다. 영화 시장은 CJ그룹이 단숨에 ‘최초, 최고, 차별화’ 등 온리원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실상 당시 영화산업 인프라는 참담한 수준이었다. 1969년까지만 해도 한 해 제작되는 영화가 229편에 달했지만 1995년 들어 한국에서 제작되는 영화는 65편으로 줄었다. 영화 한 편의 평균 제작비도 5억원 정도로 외국의 일급영화 제작비인 780억원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의 영화산업 진출은 막대한 자금이 산업으로 유입되며 생기를 불어넣는 효과를 일으켰다. 물론 이로 인해 독과점 논란이 불거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논란은 시장이 성장한 뒤에 불거진 후유증으로 시장진출을 원천적으로 막을 근거가 되진 않았다.


◇영화에서 음악, 방송으로 확장…글로벌 IP 파워하우스로 도약

CJ그룹의 문화사업 행보는 드림웍스와 협력에 그치지 않았다. 당시 제일제당은 1998년 영화관 사업에 진출했다. 함께 일했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한 마디가 주효했다.

스필버그 감독은 1995년 10월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당시 영화 인프라를 놓고 "한국 극장의 음향 시설, 영사 상태, 객석은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레스토랑·쇼핑센터 등이 함께 있는 멀티플렉스 등으로의 변화도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당시 국내 영화관은 좌석 간 간격이 좁은 데다 극장마다 영화를 한 편씩만 상영하는 등 시설이 열악했다. 선진국과 정반대였다. 선진국은 일찌감치 영화관 한 곳에서 여러 편의 영화를 보여주는 멀티플렉스 시스템을 도입해 관객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였다. 옆나라 일본도 영화관과 함께 게임, 쇼핑 등 다른 문화와 연계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CJ그룹은 선진국의 멀티플렉스 극장 시스템을 국내에 도입했다. 부지 매입과 건물 설립까지 막대한 자금을 들여 1998년 4월 4일 서울 구의동에 ‘CGV강변11’이 공식 개관했다. 1996년 6월 제일제당 멀티미디어사업부가 극장팀을 신설,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 설립 계획을 밝힌 이래 약 2년 만이었다.

선진국 전략을 발빠르게 벤치마킹한 전략은 통했다. CGV강변11는 개관 첫 해 관객 수가 350만명에 이르렀다. 미국 연예 전문지 버라이어티에 실릴 정도였다. 2000년대 ‘주5일 근무제’가 확산되면서 CJ CGV로 대변되는 멀티플렉스는 국민의 대표적 여가 공간으로 자리잡았고 CJ CGV는 거침없이 성장했다.

CJ그룹이 손을 댄 문화사업은 영화뿐만이 아니다. 1997년에는 본격적으로 미디어사업에 진출, 음악 전문 방송인 Mnet(엠넷)을 인수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채널 tvN을 개국, 이밖에 글로벌 음악 시상식을 시작하며 대중음악 시장에서도 강력한 존재감을 보였다.

1997년 IMF 경제위기로 힘들었을 때도 있었지만 CJ그룹의 문화사업 굴기는 흔들리지 않았고 이는 결실로 돌아왔다. CJ ENM은 국내에서 칸 영화제에 가장 많은 작품을 진출시킨 배급사가 됐고 CJ ENM이 투자, 배급한 영화는 다수의 천만관객을 동원했으며 [기생충]은 아카데미 4관왕은 물론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도 받았다.

문화콘텐츠와 산업이 융합된 글로벌 한류 콘벤션 KCON은 세계 최대 K컬쳐 페스티벌로서 위상을 입증했다. 이후 CJ그룹이 글로벌 IP 파워하우스로 도약하겠다며 생산한 콘텐츠는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통해 전세계에 확산, 한국 콘텐츠의 위상을 높였다.

이재현 회장은 늘 임직원에게 “역사적으로 경제강국의 전제조건은 문화강국이다. 우리나라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문화상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며 당부한다고 한다. 선대로부터 이어진 경영 철학이 오늘 날 한국 문화산업이자 CJ그룹 문화산업의 기틀을 다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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