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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note]한미 오너가 분쟁 그리고 라쇼몽

차지현 기자공개 2024-03-05 07:48:02

이 기사는 2024년 03월 04일 07:1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미 오너가의 법정 공방이 시작됐다. 장남과 차남이 모녀를 상대로 제기한 제3자 배정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 소송의 첫 법원 심문이 지난주 열리면서다. 가처분 인용 여부 그리고 결정 시점에 따라 OCI-한미의 통합 향배가 갈리는 만큼 업계의 관심이 큰 사안이었다.

양측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한 건 '이번 신주발행이 경영상 필요 요건을 충족하는지'였다. 장남과 차남은 신주발행이 모녀의 사익 추구 목적으로 추진된 데다 OCI-한미그룹 간 시너지를 찾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모녀는 자본 확충과 타 기업 전략적 제휴가 절실했기에 신주발행이 불가피했다고 반박했다.

이 과정에서 눈길을 끈 지점이 있다. 해당 사안을 두고 양측 입장은 확연하게 달랐지만 분쟁 목적을 '회사를 지키기 위함'이라고 피력한 건 같았다는 점이다. 모두 자신들이 다투는 이유를 경영권 확보 등 이기적인 마음이 아닌 회사 성장과 나머지 주주의 권익을 생각하는 이타적인 마음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이런 진정성을 알리고 싶은 이들의 행보는 나날이 과감해지는 모습이다. 양측은 각자 운영 중인 회사 보도자료를 통해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둘 다 고인을 끌어들였고 임종윤 사장은 을사늑약·추락·멸망 등 자극적 표현까지 썼다. 핵심은 여기서도 양측이 '창업자 고(故) 임성기 선대 회장의 유지를 잇는다'는 명분을 내세웠다는 점이다.

오너가의 갈등 양상을 보고 있자니 영화 라쇼몽이 떠올랐다.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1950년 만든 이 영화는 사무라이의 죽음이라는 한 가지 사실을 놓고 사무라이의 아내, 도적, 나무꾼, 사무라이 혼령 넷의 기억이 전혀 다른 상황을 묘사한다. 사건 관련자들이 서로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펼쳐진다.

영화의 초점은 사건의 진위에 있지 않다. 그보단 왜 인물마다 진술이 다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아키라 감독은 그 이유를 인간의 이기심에서 찾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실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윤색하고 싶은 이기적 욕구를 가졌고 이 욕구는 기억을 조작하기도 할 정도로 죽어서도 포기하지 못할 만큼 막강하다는 설명이다.

라쇼몽은 열린 결말로 끝난다. 누가 사실을 말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한미 오너가 싸움도 마찬가지다.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누가 진심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영화의 말마따나 거짓말이 인간 본성이라면 양측 모두 신약개발 따위는 애초부터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단지 법원이 국내 제약산업을 키울 역량을 가진 쪽의 손을 들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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