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3월 25일 07시38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나이듦을 위안하는 말이지만 아름다운 마무리를 보여주는 이들에게도 쓰인다. 장인화 회장이 돌아왔다. 33년의 포스코 생활을 마치고 고문으로 물러난 지 3년 만이다.최종 후보로 선임된 이후 취임하기까지 현장에서 느낀 장 회장의 모습은 '베테랑' 그 자체였다. 그는 지난 한달간 두문불출했다. 하루에도 수십통씩 쏟아지는 기자들의 전화를 모두 받지 않았다. 집 앞이나 회사로 찾아간 기자 역시 그의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하고 싶은 말이야 많았겠지만 어떤 말을 하든 쉽사리 곡해될 수 있던 시기 몸과 마음을 삼가고 최대한 자신을 숨겼다. 전임 회장이 떠나고 무사히 취임한 직후엔 기다렸다는 듯 바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소감과 함께 미래 계획을 정돈된 언어로 털어놨다. 모든 질문에 피하지 않고 대답했는데 사실 너무 베테랑인지라 알맹이는 없었다. 그럼에도 차분한 모습은 눈길을 끌었다.
첫 공식석상인 만큼 주주총회장이나 간담회에서의 깍듯한 인사야 당연하다 치더라도 한 명의 기자라도 더 만나 악수를 나누려는 모습 역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를 바로 옆에서 보좌하는 실무진이 느끼는 모습은 어떨까. 3년의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어느 관계자의 말이다. 다소 많은 나이? 역시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되려 한참 어린 실무진이 그의 아이디어에 귀가 솔깃해지는 일도 있었다는 전언이다.
재계의 시선이 3년 만에 돌아온 올드보이에 쏠려있다. 대체로 호의적이지만 일각에선 다소 많은 나이, 철강에만 치우친 경력 등을 문제삼기도 한다. 30년 이상을 몸담은 회사, 회장으로 커리어를 마무리하고 싶은 개인적 욕심을 빼놓을 수 없겠지만 어찌 그것뿐일까. 국민에게 신뢰와 사랑을 받았던 자랑스러운 포스코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는 취임사에선 진심도 엿보였다.
흔히 '무언가를 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고들 말하지만 가끔은 '무언가를 하기에 늦은 나이가 좋은 나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큰일을 하기에 적합한 시기는 체력과 열정이 넘치고 하나하나 뜨겁게 반응하는 젊은 시절이 아니라 지혜와 연륜이 쌓이고 하나하나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을 때가 아닐까.
노년의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로마군 사령관의 임무를 맡아 그의 지혜와 판단력을 과시했다. 이탈리아를 침공한 당대 최고의 전략가 한니발에 맞서 전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임기는 3년이다. 놓인 과제야 당연히 많다. 철강 경쟁력 회복, 신사업 역량 강화, 안팎으로 훼손된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까지. 사실 개인에게는 긴 시간이지만 회사를 바꾸기엔 턱없이 짧을 듯도 하다. 돌아온 '장인화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갈까, 느리게 흘러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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