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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이치씨 MBO에 기대감을 갖는 이유

배장호 기자공개 2018-11-14 10:38:36

이 기사는 2018년 11월 13일 08:5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제법 오래 국내 사모펀드(PE) 업계와 교류하면서 갖게 된 의문점이 있다. "우리나라 노조는 왜 유독 사모펀드에 적대적인가". 서슬퍼런(?) 재벌 그룹 계열사로 있던 기업도 사모펀드가 바이아웃하면 없던 노조가 생겨난다. 가맹사업도 판박이다. 사모펀드가 인수한 가맹사업체의 가맹업주들이 유독 더 적대적이다. 평소 사모펀드의 미덕을 굳게 믿는 기자로선 쉽사리 수긍 안가는 대목이다.

"사모펀드의 미덕이라니…"라며 어이없어 할 일부 독자를 위해 부연하자면 이런 거다. 기업을 인수한 사모펀드가 돈을 벌기 위해선 기업이 잘 되게 하는 방법 외엔 딱히 뾰족한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을 두고 사모펀드 세계에선 '이해합일'(Alignment of Interests)이라 부르는데, 한 배에 탄 공동운명체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펀드가 바이아웃이 아닌 일부 지분을 인수하고, 투자 회수에 관한 별도 약정을 경영권자와 맺는 경우도 우리나라에선 흔하다. 이 때도 기본적으론 이해합일이지만, 회수 시점에 기업가치가 오히려 낮으면 '이해충돌'이 종종 생긴다. 다만 이런 경우는 여기선 일단 논외로 친다. 재벌기업이 경영권을 유지한 채 사모펀드 투자를 받았다고 없던 노조가 생기는 경우를 아직 못봤다.

사모펀드가 기업을 일단 바이아웃하면 회사를 잘되게 하려고 여러 노력을 기울일텐데 노조는 왜 반기를 들까. 기업이 잘 되면 노조 구성원인 직원들도 좋은 것 아닌가. 혹여 구조조정이나 대량해고를 두려워해서라면 그건 사모펀드에 대한 몰이해다. 요즘 사모펀드가 바이아웃하는 기업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는 경우를 찾기 쉽지 않다. 심지어 부실기업 경우도 인적 구조조정이 된 곳을 사면 모를까 인수해서 인적 구조정을 단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국내 사모펀드가 인수한 기업들에 대한 최근 몇년간의 고용 통계를 보면 퇴직자보다 신규 고용자 수가 오히려 더 많았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몇년 전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동반파업 당시 사모펀드가 주인인 한 케이블방송의 파업은 여타 재벌 계열보다 상대적으로 강도가 더 셌다. 여론도 더 주목했는데, 이 케이블방송사는 결과적으로 파견업체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과 사회공헌기금 출연 등 명목으로 재벌계열 방송사보다 많은 비용을 부담했다.

가장 최근엔 사모펀드가 주인인 치킨프랜차이즈업체 가맹점주들이 단체를 만들어 가맹본사를 압박하는 일이 있었다. 이 때문에 본사는 수십억원의 현금을 점주들에게 지급했는데, 이 지급의 명확한 법적 근거가 있는 것 같진 않다. 가맹본사의 이익률이 업계 평균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가 가맹점에 대한 착취 때문이라면 본사와 가맹점주간 제반 가맹계약 관계가 타 경쟁 치킨프랜차이즈들에 비해 불공정하거나 불리하다는 점이 명백해야 할텐데, 그런 사실에 대한 입증은 없었다.

재벌이 주인인 기업에 비해 사모펀드가 주인인 기업이 노조의 핍박(?)을 더 받는 이유를 미시적 관점에서 굳이 찾자면 아마도 '한시성(限時性)'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모펀드든 재벌이든 주인이 영원히 바뀌지 않는 기업이 어디 있겠냐마는, 명시적으로 유효기간이 붙었단 사실이 노조든 언론이든 이들로부터 사모펀드를 '만만히 보게 만드는' 모종의 기제가 되는 것 같다.

사모펀드에 투자기한이 있기에 기업의 비효율을 찾아없애고 가치를 제고하는 일을 한시도 게을리 할 수 없는데, 이게 실은 노조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종래의 방식이 적폐이자 청산의 대상으로 몰리기 쉽고, 회사의 협상 상대방으로서 누려왔던 기존의 '경제적 지대'가 무시될 수 있다. 순환출자 고리로 지배권을 장악한 오너 일가든, 전문 경영인이든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가 적당히 있어야 노조든 언론이든 협상과 공생의 여지가 생기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사모펀드의 이해합일 매카니즘은 꽤나 불편한 기제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싶다.

외국 사모펀드가 주인인 국내 2위 치킨프랜차이즈 비에이치씨의 전문경영인이 기존 사모펀드 키맨과 힘을 합쳐 경영자인수(MBO)를 시도하고 있어 화제다. 가맹본사와 점주간 갈등이 끊이지 않던 곳인데, MBO란 새로운 접근법을 통해 그 '한시성'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과연 한계를 넘어서 진정한 이해합일의 미덕을 발현하는 사모투자 모델이 탄생할 수 있을 지 국내 사모펀드업계 전체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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